봄을 이겼다는 사람을 본 적이 있니? [새로 나온 책]

모든 흔들리는 눈망울 위에
김주대 지음, 걷는사람 펴냄
“아직까지/봄을 이겼다는 사람을 본 적이 없다.”
김주대 시인은 1991년 〈창작과비평〉으로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그의 시는 언제나 흔들리는 존재들 곁에 서 있다. 가난한 사람들, 노동하는 사람들, 병든 아이와 그 곁을 지키는 보호자 그리고 역사 속에서 이름 없이 사라진 사람들까지. 우리가 쉽게 지나쳐온 삶의 장면을 시로 조망한다. 한 개인의 기억에서 시작된 이야기는 가족과 마을, 시대와 역사로 시야를 넓힌다. 어린 시절의 가난과 가족의 기억, 전쟁과 분단의 상처, 평범한 사람들의 노동과 삶이 얽힌다. 12·3 내란을 다룬 연작을 통해서는 부조리한 세계에 저항하는 유일한 힘이 ‘흔들리는 눈망울’을 가진 시민들의 연대임을 이야기한다. 고향의 상처부터 광장의 함성까지 인간의 연약함과 존엄을 동시에 비춘다.

불빛 없는 밤의 도시
정해연 지음, 엘릭시르 펴냄
“장편과 단편 어느 쪽이든 언제나 ‘이 책’을 선택한 당신이 즐겁기를 기도한다.”
지은이는 한국 스릴러 소설의 한 브랜드가 되었다. 〈홍학의 자리〉는 놀라운 반전으로 베스트셀러가 되었고, 〈유괴의 날〉은 드라마로 만들어졌다. 작가는 “사람의 저열한 속내나, 진실을 가장한 말 뒤에 도사리는 악의에 대해 상상하는 것을 좋아한다”라고 말한다. 그가 즐겨 쓰는 지명 ‘영인시’ 같은 ‘정해연 월드’ 속의 범죄는 평범하다고 속단해버린 이웃이 저지르는 경우가 많다. 범죄는 그 평범함에서 촉발되고, 무의미한 듯 흩뿌려진 장치들은 반전을 위한 포석이 된다. 독자들의 읽는 즐거움을 가장 중요하게 여긴다는 그의 말처럼 이번 소설집에 수록된 단편 네 편도 예상치 못한 진실을 향해 질주한다. 흡입력이 뛰어난 ‘페이지 터너’라는 단어가 적합하다.

데이터의 온도 36.5
최정묵 지음, 푸른나무 펴냄
“다수의 민원도 중요하지만 목소리조차 내지 못하는 한 사람의 고통을 발견하는 것이 진정한 소명이다.”
골목마다 24시간 불이 꺼지지 않는 편의점. 이곳을 재난의 초기 대응 허브로 사용할 수 있지 않을까. 휴대폰을 분실한 사람이나 위기 청소년에게 도움을 줄 공간이 될 수는 없을까. 매일 밤 소주와 컵라면을 사가는 독거노인의 모습을 기록하는 공적 공간으로서 편의점을 바꿀 수는 없을까. 인공지능과 빅데이터가 모든 문제를 해결할 것처럼 말하는 시대지만, 정작 우리 곁의 노인은 고독사하고 골목의 가로등은 사흘째 꺼져 있는 현실이 반복된다. 기술이 고도화할수록 오히려 파편화되는 인간의 삶을 복원하기 위해 저자는 ‘마을 CDO(최고 데이터 책임자)’라는 새로운 개념을 제안한다. 여러 공직을 두루 경험한 그의 제안은 현실에서 실현 가능해 보인다.

자유와 평등
대니얼 챈들러 지음, 홍기빈 옮김, 교양인 펴냄
“사실상 롤스는 오늘날 ‘사전 분배’라고 불리는 개념을 주장한 셈이다.”
자유민주주의는 세계적 범위에서 위기에 처한 상태다. 심지어 ‘자유의 적’들이 ‘자유’를 참칭하며 체제의 기반을 공격하고 있다. 경제학자이자 정치철학자인 저자는 롤스의 ‘정의론’을 다시 불러내 해석하며, 개인의 자유를 포기하지 않으면서 최대한의 평등을 이뤄내고 미래 세대의 생존권까지 지키는 ‘현실적 유토피아’의 로드맵을 펼친다. 평평한 운동장을 만드는 ‘기초 자산제’와 ‘보편적 기본소득’, 특권의 대물림을 끊어낼 교육과정 개편, 금권정치를 견제하는 ‘민주주의 바우처’, 일터의 권력구조를 바꾸는 ‘공동 경영제’, 그리고 미래 세대의 생존권을 지킬 ‘지속 가능한 경제법’까지 사회적 제안들이 통계자료와 최신 연구를 토대로 설득력 있게 제기된다.

문제적 사랑
김지용 지음, 디플롯 펴냄
“연애는 상대방을 실망시키지 않으려고 하는 게 아니라, 나 자신의 행복을 위해 하는 것이니까.”
채널을 돌리면 온통 ‘연프(연애 리얼리티 프로그램)’뿐이다. 사랑과 연애가 그만큼 우리 삶의 ‘문제적’ 주제이기 때문일 테다. 사랑은 언제나 만만찮은 숙제를 던지며 삶을 휘젓는다. “사랑이라는 모험에는 과거의 상처와 상실뿐 아니라, 앞으로의 상처와 상실 가능성도 포함된다.” 사랑은 꽤 자주 ‘운명’이라는 예감 속에서 시작하지만, 뇌과학은 그 압도적 감정이 중독 상태에 가깝다고 밝혀낸다. 정신건강의학 전문의인 저자는 사랑을 둘러싼 마음의 풍경을 하나씩 짚어가며 ‘새로운 이야기’를 써 내려갈 힘을 북돋운다. 치료는 진료실에서만 이뤄지지 않는다. 저자는 “사람을 변화시키는 대표적 경험”으로 사랑과 독서를 꼽는다.

엄마가 된 걸 후회한다고 말했다
다카하시 아이·요다 마유미 지음, 박소영 옮김, 후마니타스 펴냄
“아이를 사랑한다. 그럼에도 엄마가 아닌 삶을 꿈꾼다.”
아이 셋을 키우는 미호 씨는 어느 날 엄마를 그만두기로 했다. 주위에서 요구하는 엄마의 역할과 엄마가 되기 전 상상했던 모습이 너무 달랐다. 아이 때문에 불려간 학교에서는 ‘이런 애가 나중에 범죄자가 된다’는 말을 들었다. 아이가 아직 자폐스펙트럼장애 진단을 받기 전이었다. ‘엄마니까’ 그런 말을 쉽게 하는 사람들을 보며 스스로를 지키기 위해 엄마 말고 그저 우연히 같은 시대를 살아가는 아이들의 ‘팬’이 되기로 했다. ‘엄마가 된다는 건 고되지만 후회하진 않는다’는 흔한 결말들, NHK 기자와 디렉터인 저자는 의문을 가졌다. 왜 유독 엄마라는 일에 대해서만 후회를 말하지 않는 걸까. ‘후회하는 여성들’을 만났다. 엄마가 된 걸 슬퍼해도, 후회해도 괜찮다고 말하는 데서 새로운 세계가 열리는 것 같다.
시사IN 편집국 edito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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