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포]반도체 웨이퍼에 ‘빛을 먹이는 약’ 포토레지스트… 동진쎄미켐 ‘AX황금 공장’의 비밀 [AX골든이어]

홍석희 2026. 4. 9. 06: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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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진쎄미켐 발안공장의 제조소 내부 사진. 클린룸 내부엔 노란색 조명만이 사용된다. 제조 물질이 빛에 예민하게 반응할 수 있기 때문이다. [동진쎄미켐]
별명 ‘AI 회장님’ 이준혁 회장… ‘동진 AI 애스크’ 구축
연구 시약비 수십억 절감, 디지털트윈도 준비 착수
韓 ‘포토레지스트’ 최강… 대한민국 ‘강소기업’ 1번

[헤럴드경제=홍석희 기자] 경기도 화성시 소재 동진쎄미켐 발안공장의 포토레지스트(PR) 공장(제조소)의 가장 강렬한 인상은 ‘정중동(靜中動)’의 공간이라는 점이었다. 아무것도 움직이는 것이 없는, 심지어 드나드는 사람조차 극히 드문 곳이었다. 지금까지 가봤던 공장들은 거대한 기계 설비가 움직이는 공간(제지), 쉼없이 화장품이 담기는 공장(화장품 ODM), 로봇팔이 세부공정에 투입되는 공장(보일러)들이었다. 이에 비해 동진쎄미켐 PR 공장은 아무런 움직임이 없다는 점이 되레 인상적이었다.

그러나 이곳은 ‘황금색 전쟁터’다. 전세계를 대상으로 반도체 ‘패권전쟁’을 벌이는 대한민국 최고의 반도체 회사들도 이 조용한 공장이 없다면 제대로 역할을 수행키 어렵다. 이곳에서 제조되는 PR은 삼성전자 낸드플래시에 새겨지는 수 나노미터(㎚) 단위 회로와 그 회로를 빛으로 깎아내는 데 사용되는 반도체 핵심 소재다. SK하이닉스와 LG디스플레이도 주 고객사다. 움직임 없는 공장. 그래서인지 회사는 이곳을 ‘공장’ 대신 ‘제조소’라 불렀다.

연구동은 또 다른 세계였다. 흰 가운을 입은 연구원들이 각자의 작업대에 앉아 조용히 실험에 몰두하고 있었다. 이곳에서는 고객사 삼성전자, SK하이닉스 등의 요구 스펙을 맞추기 위한 개발 작업이 이뤄진다. 소재 기업의 연구개발은 단독으로 이뤄지지 않는다. 고객사가 어떤 종류의 소재를 만들어 달라고 요구하면, 동진쎄미켐이 시도하고 최종 테스트는 고객사가 함께 한다. 테스트는 고객사 라인에서 직접 이뤄진다. 고객사라기 보다 사실상 공동 개발 파트너라고 볼 수 있다고 회사 관계자는 설명했다.

발안 공장 부지는 넓다. 전체 부지 18만㎡에는 30여개동에 이르는 건물들이 들어서 있고, 특히 2020년 완공된 제조소(공장)는 이 회사의 ‘심장부’로 불린다. 모두 3층인 공장은 꼭대기 층인 3층에서 원재료를 혼합하고, 2층에서 모터를 통해 압력을 높이는 공정을 거친 뒤, 1층에서 초정밀 필터링을 마치면 완제품이 돼 포장용기에 담긴다. 외부 고객이 오더라도 ‘눈으로는 보되 사진은 찍을 수 없는’ 곳이다.

동진쎄미켐 연혁

클린룸 내부는 온통 황금빛이다. 포토레지스트는 빛에 민감하게 반응하는 감광액이다. 일반 백색광 대신 노란빛 조명만이 사용된다. 수십개의 스테인리스 탱크가 열지어 서 있고, 그 사이로 배관과 밸브가 빼곡하게 연결돼 있다. 방호복을 갖춰 입은 작업자가 모니터 앞에 서서 공정 데이터를 들여다보는 장면도 보였다.

이 곳에서 제조 되는 포토레지스트는 극히 휘발성이 강한 물질이다. 외부 공기에 노출되는 순간 기화된다. 생산 공정 전체가 밀폐계 안에서 이뤄지고, 저장 물질은 모두 눈에 보이지 않는 배관과 탱크 속에 갇혀 있다. 가만히 멈춘 것 같지만 설비 내부에선 쉬지 않고 생산량이 쌓인다. 2톤짜리부터 5톤, 10톤 규모까지 다양하게 제작되며, 길게는 10일 가까이 소요되는 공정도 있다. 동진쎄미켐 화물을 실은 대형 카고 트럭들도 드나들었는데, 차량 한 대에 실린 화물은 종류에 따라 수억원을 호가하기도 한다고 현장관계자는 설명했다. 반도체 필수 소재이기에 가능한 몸값이다.

동진쎄미켐 소속 한 연구원이 내부 제어시스템을 지켜보고 있다. 동진쎄미켐은 AX 전환을 위해 내부에서 측정된 자료를 모두 디지털화해 ‘디지털 트윈’을 구축할 계획이다. 시스템이 완비되면 인공지능을 통해 연구개발 과정을 진행할 수 있게되고, 이럴 경우 수십억원대 비용 절감을 할 수 있다고 회사측은 설명했다. [동진쎄미켐]

이 회사가 세상에 널리 알려진 것은 2019년 7월이었다. 일본 정부가 전격적으로 대한국 반도체 소재 수출규제를 선언하면서였다. 당시 일본정부는 반도체와 디스플레이 공정에 필요한 불화수소, 포토레지스트, 불화폴리이미드 등 3개 핵심 소재의 수출을 금지했다. 한국 산업계는 충격을 받았다. 그즈음 한국의 포토레지스트 수입 가운데 일본 의존도는 90%를 넘었다. 대한민국을 먹여 살리는 반도체의 공급망이 하루아침에 흔들릴 수 있다는 공포가 산업계를 흔들었다.

문재인 정부는 ‘소부장 국산화’ 기치를 내걸었다. 당시 민주당 인사들이 동진쎄미켐 발안공장으로 직접 내려와 현장에서 최고위원회의를 개최하기도 했다. 동진쎄미켐은 1989년 세계에서 네 번째, 국내에서는 최초로 반도체용 포토레지스트를 제조한 국내 대표 소부장 업체다. 3차원(3D) 낸드플래시에 포토레지스트를 주력으로 생산하며 이 분야 세계 시장 점유율 1위를 기록 중이다. 위기는 역설적으로 동진쎄미켐에게 기회가 됐다.

국내 반도체 업계가 국산화에 시동을 걸면서, 국내에서 유일하게 포토레지스트를 생산해온 동진쎄미켐이 주목받았다. 삼성전자 3D 낸드용 포토레지스트는 동진쎄미켐이 독점 공급한다. 수출규제 이후 포토레지스트 국산화에 속도를 내며 2020년 말에는 불화아르곤 이머전(ArFi) 포토레지스트까지 삼성전자 공급망에 진입했다. 동진쎄미켐은 지난해 말 EUV(극자외선) 포토레지스트 양산에도 성공해 반도체 고부가 소재 국산화의 선두에 서 있다.

회사 관계자는 포토레지스트(PR)의 용도에 대해 “웨이퍼 위에 PR을 도포한 뒤 패턴이 그려진 마스크를 통해 자외선을 쏘면 빛에 노출된 부분만 화학반응을 일으켜 현상액으로 씻겨 나간다. 그 자리에 전기가 통하는 물질을 채우고 쌓아가는 게 반도체 공정이다. 반도체 회로가 점점 미세화되면서 PR이 반응해야 하는 파장도 점점 짧아지고 있다”고 설명했다. 감광액이라는 이름 그대로, 빛을 받아 반도체의 설계도를 새기는 잉크인 셈이다.

실적은 이 모든 과정의 결과물이다. 동진쎄미켐의 2025년 연결기준 매출액은 1조1941억원, 영업이익 1724억원, 당기순이익 941억원을 기록했다. 국내 정규직 직원 1522명의 중견기업이 반도체 슈퍼사이클을 발판으로 조용히, 그러나 꾸준히 몸집을 키워왔다. 발안 공장에만 800~900명이 근무하며, 해외 법인까지 포함한 전체 정규직은 1600명에 이른다.

동진쎄미켐 발안공장 제조소 공정 과정 [동진쎄미켐]

이 회사를 이끄는 건 이준혁 회장이다. 이부섭 창업주 회장의 차남으로, 미국 매사추세츠공과대(MIT)에서 화학공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 2025년 2월 이부섭 선대 회장이 별세한 뒤 지난해 회장직에 올랐다. 이 회장은 AI 도입에 적극적이다. 핵심 사업부문장들도 매주 월요일 아침마다 디스플레이·반도체 메모리 등 시황 관련 자료와 IT 뉴스를 관리자급 이상 직원들과 공유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 회장이 AX(AI 전환)에 강한 의지를 보이는 가장 현실적인 이유는 비용이다. 동진쎄미켐 연구소에서는 새로운 소재를 개발하기 위해 수십 종의 화학 시약을 직접 구매하고, 배합하고, 테스트하는 과정을 수백 번 반복한다. 이 과정에서 쓰이는 시약 구매 비용만 한 해 수십억원에 달하는 것으로 알려진다. 회사관계자는 “‘고객사가 이런 스펙의 소재를 만들어 달라’고 요구하면, 어떤 물질을 얼마나 투입해야 하는지를 실제로 섞어보며 찾아가야 한다. 틀린 배합으로 시약을 구매하면 그대로 폐기다. 시간도, 장비도, 인력도 동시에 소진된다”고 말했다.

그런데 AI를 활용하면 관련 비용을 줄일 수 있다. 회사 관계자는 “이 물질을 써볼까, 저 물질을 써볼까 고민하는 시간, 직접 실험실에서 섞고 테스트 장비에서 검증하는 시간이 엄청나게 걸린다. AI가 ‘이 조건으로 제조하면 이런 성능이 나올 것 같다’는 예측만 해줘도 비용이 획기적으로 줄어들 것”이라고 말했다.

동진쎄미켐이 가장 처음 구축한 것은 ‘동진 AI 애스크(Ask)’다. 외부 GPT 서비스 대신 자체 내부망 전용 대형언어모델(LLM)을 구축했다. 구축 비용은 수억원대였다. 외부 설루션을 도입해 내부망에 이식하는 방식이다. 외부망과 단절한 이유는 보안이다. 회사 관계자는 “직원이 GPT에 질문을 입력하다 보면 내부 화학물질 정보나 공정 데이터가 빠져나갈 수 있다. 질문한 내용도, 답변도 모두 내부망 안에서만 돌아가도록 구축했다”고 말했다.

동진쎄미켐 최근 5년 실적

현재 ‘동진 AI 애스크’가 특화돼 운용 중인 분야는 새로운 소재를 개발하거나 특허를 출원하기 전, 이미 유사 특허가 있는지 방대한 데이터베이스를 뒤지는 작업이다. 회사 관계자는 “우리가 원하는 소재에 대해 물어보면 관련 논문과 특허를 찾아준다. 사람이 일일이 뒤적이던 작업이 대폭 줄어들었다”고 말했다. 회사는 향후 연구개발(R&D) 전 분야에 AI를 접목토록 프로세스를 확장할 계획이다.

AX와 별개로 DX(디지털 전환) 인프라는 이미 상당한 수준이다. 동진쎄미켐은 2022년부터 중소벤처기업부 산하 중소기업기술정보진흥원(기정원)의 ‘K-스마트 등대공장 사업’에 참여해 3년간 4억원씩 모두 12억원의 지원을 받았다. 덕분에 공장 내 모든 설비의 센서 데이터를 통합 저장소에 수집하는 체계를 구축했다.

스마트 공장 성숙도 평가에서도 ‘중간2단계’ 판정을 받았다. 전체 4단계(기초·중간1·중간2·고도화) 중 상위권에 해당하는 수준이다. 회사 관계자는 “화학 공장들은 자동화가 쉽지 않다. 자동차 공장처럼 로봇이 조립하는 방식이 아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대신 전산화가 안 된 상태에서 AI를 도입하는 것은 별다른 의미가 없다. 데이터가 있어야 학습이 가능하고, 학습이 있어야 예측이 가능하다. 그 선행 작업을 지난 수년동안에 걸쳐 쌓아온 셈이다.

동진쎄미켐 발안공장 내부 사진. 내부 저장탱크와 필터 등이 가지런히 설비돼 있다. 이 곳에서 생산되는 포토레지스트(PR)는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등 주요 반도체 회사로 공급된다. [동진쎄미켐]

다음 단계로 이 회사가 준비하는 것이 디지털트윈이다. 디지털트윈은 물리적 공장과 동일한 환경을 디지털 세계에 구현해, 실제 설비를 가동하지 않고도 공정을 가상으로 돌려보는 기술이다. 어떤 조건을 갖추면 어떤 품질의 제품이 나오는지, 공정 이상은 없는지를 미리 시뮬레이션할 수 있다. 동진쎄미켐은 현재 디지털트윈 도입을 위한 인프라를 갖춘 상태이며, 정부의 ‘자율형공장 구축사업’ 공모에도 도전 중이다. 이 사업은 디지털트윈·AI·AAS(서비스형 자산)를 결합한 자율 공장 구현이 조건이다.

현장 공정에서 여전히 사람의 손이 불가결한 지점도 있다. 원재료를 투입할 때엔 소수점 다섯째 자리까지 정밀하게 계량해야 하는 물질들이 있다. 회사 관계자는 “공정 특성 상 로봇이 아직 그런 초정밀 계량·투입까지는 어렵다. 아직은 사람의 작업영역을 모두 배제하긴 어렵다”고 설명했다. DX 도입 이후에는 저울 측량값이 즉시 시스템으로 전송돼 기준치 이탈 시 자동으로 경보가 울리는 방식으로 사람에 의한 착오를 차단한다. 이미 제품 라벨 부착 자동화, 품질 분석장비 연동, 데이터 자동 수집 등을 통해 실질적인 생산성 향상 효과가 나타나고 있다고 회사 측은 밝혔다.

동진쎄미켐이 경쟁해야 할 상대는 만만치 않다. 국내에서는 솔브레인, ENF테크놀로지가 있고, 해외에는 JSR, TOK(도쿄오카공업) 같은 일본 강자들이 버티고 있다. 포토레지스트 세계 시장은 일본 기업인 JSR코퍼레이션과 도쿄오카공업이 각각 27%, 26%를 차지하는 과점 구조이며 일본 기업 전체 점유율이 90%를 넘는다. 그 틈을 비집고 동진쎄미켐이 세계 1위를 일군 부문이 3D 낸드용 소재다. 그리고 지금은 EUV까지 영역을 넓히고 있다.

동진쎄미켐 이준혁 회장 [동진쎄미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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