맞춤형 반도체 시대… 플랫폼 설계 대전환

이계풍 2026. 4. 9. 05: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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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성형 AI 확산에 범용 GPU 한계

연산 속도보다‘효율성’ 핵심 변수

CPUㆍ가속기ㆍ메모리 통합설계 부상

글로벌 빅테크, 전략 수정 잇따라

디자인하우스 기업들 역할 커져

[대한경제=이계풍 기자]인공지능(AI) 반도체 시장의 패권 다툼이 개별 ‘칩’의 성능 대결을 넘어 ‘플랫폼’ 단위의 시스템 경쟁으로 빠르게 전환되고 있다. 생성형 AI가 산업 전반으로 확산됨에 따라 단일 반도체의 연산 속도보다 전체 시스템을 얼마나 효율적으로 설계하고 최적화하느냐가 승부를 가르는 핵심 변수로 부상했기 때문이다.

8일 관련 업계에 따르면 오는 2030년 글로벌 AI 인프라 및 소버린(주권) AI 시장 규모는 약 1500조원에 이를 것으로 전망된다. 온디바이스 AI, 자율주행, 로봇 등 AI 적용 분야가 전방위로 확대되면서 관련 인프라 투자 수요가 폭발적으로 증가하는 추세다.

이러한 흐름 속에서 반도체 수요의 중심축은 엔비디아로 대표되는 범용 그래픽처리장치(GPU)에서 특정 목적에 특화된 맞춤형 반도체(ASIC)로 이동하고 있다. 산업별로 요구되는 데이터 처리 구조가 제각각인 상황에서 하나의 범용 칩으로는 다양한 AI 수요를 정밀하게 대응하기 어려워졌기 때문이다. 특히 각국이 데이터 주권을 지키기 위해 독자적인 인프라를 구축하는 ‘소버린 AI’ 열풍은 국가별 환경에 최적화된 맞춤형 설계 수요를 더욱 부채질하고 있다.

반도체 패러다임 변화의 이면에는 전력 소비와 데이터 이동 효율성 문제가 자리 잡고 있다. AI 학습량이 방대해질수록 데이터센터 운영 비용이 천문학적으로 치솟으면서, 이제는 단순 성능보다 ‘전력 대비 성능(전성비)’이 반도체 경쟁의 새로운 척도가 됐다.

이에 따라 반도체 구조도 바뀌고 있다. 과거에는 GPU 하나의 성능이 중요했다면, 이제는 중앙처리장치(CPU), AI 가속기, 메모리, 네트워크를 어떻게 묶어 설계하느냐가 성능을 좌우한다. 칩을 여러 개로 나눠 연결하는 구조와 고대역폭 메모리, 첨단 패키징 기술을 활용해 데이터 이동을 줄이는 것이 핵심 경쟁력으로 떠오르고 있다.

글로벌 빅테크 기업들도 이러한 흐름에 맞춰 전략을 바꾸고 있다. 아마존, 마이크로소프트 등 빅테크 기업들은 Arm 설계자산(IP) 기반 CPU를 활용해 자체 AI 칩을 개발하고 있으며, 엔비디아 역시 CPU와 GPU를 결합한 플랫폼 전략을 강화하고 있다. 다양한 AI 작업을 효율적으로 처리하기 위해 반도체를 ‘단일 제품’이 아닌 ‘시스템 단위’로 설계하려는 움직임이다.

이 과정에서 반도체 설계 산업의 역할도 달라지고 있다. 기존 디자인하우스는 고객이 설계한 칩을 실제 생산 가능한 형태로 구현하는 역할에 머물렀지만, 최근에는 시스템 구조를 함께 설계하는 단계까지 역할이 확대되고 있다. 고객이 설계한 칩을 구현하는 데 그치지 않고, 어떤 구조로 칩을 만들지부터 함께 설계하는 역할로 바뀌고 있는 셈이다.

국내에서도 에이디테크놀로지, 세미파이브, 가온칩스, 에이직랜드 등 디자인하우스 기업들이 이러한 변화에 맞춰 역할을 넓히고 있다. 삼성 파운드리 생태계를 기반으로 AI·고성능컴퓨팅(HPC) 중심 프로젝트 비중이 빠르게 늘어나면서, 단순 설계를 대신해주는 수준을 넘어 어떤 구조로 칩을 만들지까지 함께 결정하는 역할로 바뀌고 있다.

업계 관계자는 “AI 반도체 경쟁의 핵심은 더 이상 좋은 칩을 만드는 것이 아니라 어떻게 효율적으로 연결하고 설계하느냐”라며 “앞으로는 칩이 아닌 플랫폼 단위에서 경쟁이 이뤄질 것”이라고 말했다.

이계풍 기자 kple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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