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육부는 성교육을 포기했나 [한채윤의 비 온 뒤 무지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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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부 누리집에서 '성교육'이란 단어가 사라졌다.
그간 성교육은 학생건강정책과에서 맡았지만, 2019년 교육부는 양성평등정책담당관을 신설하며 "학교 성교육 및 성인지 교육 정책을 총괄하겠다"고 대대적으로 공표했다.
교육부가 침묵하는 사이 학교 현장의 성교육자들은 사투를 벌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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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채윤 | 한국성적소수자문화인권센터 활동가
교육부 누리집에서 ‘성교육’이란 단어가 사라졌다. 그간 성교육은 학생건강정책과에서 맡았지만, 2019년 교육부는 양성평등정책담당관을 신설하며 “학교 성교육 및 성인지 교육 정책을 총괄하겠다”고 대대적으로 공표했다. 그러나 정작 해당 부서의 업무 소개란에서 ‘성교육’은 찾아볼 수 없다. 학생건강정책과에도 ‘보건교육’이란 무미건조한 글귀만 남았다. 어떻게 해야 민원이 들어오지 않을지 고심하며 일부러 성교육을 감춰둔 모양새다.
성교육은 학교보건법과 교육기본법 사이에서도 길을 잃었다. 학교보건법은 흡연, 음주, 마약류 오남용 등과 성교육을 나열하며 ‘관리해야 할 보건 문제’로 취급한다. 교육기본법은 성인지 및 성폭력 예방 교육과 묶어 ‘양성평등 교육’ 안에 모호하게 귀속시켰다. 자신과 타인의 몸과 삶을 오롯이 이해하고 책임지는 주체를 기르기 위한 독립된 교육적 언어로서의 성교육은 없다.
교육부가 침묵하는 사이 학교 현장의 성교육자들은 사투를 벌이고 있다. “머리가 짧으면 여자인 걸 모르니 긴 머리에 치마를 입은 그림으로 바꿔달라”거나 교안 속 평범한 무지개도 “동성애 지지로 보일 수 있으니 빼달라”는 황당한 사전 검열이 일상적이다. 동성애자 인권을 옹호한 적이 있다는 이유로 예정된 수업이 취소되는 일도 비일비재하다. 사춘기 교육인데도 생식기 명칭 언급을 금지할 뿐 아니라, 근래엔 ‘장애인 차별 금지’나 ‘서로 다름에 대한 존중’이라는 보편적 인권의 가치조차 언급하지 말라는 요청도 들어온다. 보수적인 교사가 자기 마음에 들지 않는 설명을 한다는 이유로 성교육자를 향해 물컵을 집어 던지는 일도 있었으니 당사자에게 직접 듣지 않았다면 믿지 못했을 현실이다.
교육 현장이 성적 편견과 금욕, 순결 중심으로 엉망이 된 것은 교육부가 교육의 질이 아니라 오로지 ‘민원’만 신경 쓰기 때문이다. 2015년 성교육 표준안을 발표하며 교육부는 동성애에 관해 “학부모들이 반대한다”는 이유로 다루지 않았다고 밝혔다. 이런 가치관으로 만들어진 표준안은 ‘여자는 무드에 약하고 남자는 누드에 약하다’는 식의 성별 고정관념으로 가득했다. 엄청난 비판을 받고 표준안을 수정하겠다고 밝혔지만 폐기를 공식화하진 않은 탓에 지금도 표준안대로 수업하라고 요구하는 학교도 있다.
퇴행은 멈추지 않았다. 2022년 교육과정 개정 과정에서는 보건 교육과정에 명시되어 있던 ‘성소수자’, ‘성평등’, ‘재생산권’, ‘섹슈얼리티’를 굳이 삭제했다. 이는 국제 사회가 우려할 만큼 심각한 퇴행이라 유엔 인권이사회까지 나서 지적했지만 교육부는 또 ‘사회적 합의’를 핑계 댔다. 이런 방치는 어떤 결과를 낳을까. 최근 국가인권위원회 발표에 따르면, 성소수자 청소년의 71.1%가 교사로부터, 87.0%는 또래 친구에게 혐오 표현을 들었다고 답했다. 이들이 견디다 못해 택한 자퇴율은 일반 청소년의 9배에 달하는 17.4%다.
성교육은 타인과 건강한 관계를 맺고, 스스로 보호하며, 자신의 삶을 주체적으로 결정하는 힘을 길러주는 교육이다. 교육부의 직무유기를 지적할라치면 교육자치법을 끌어와 구체적 지침을 내릴 권한은 없다며 또 법 뒤로 숨는다. 교육부는 정녕 성교육을 포기했는가. 특정 종교 세력이 밀어붙이는 대로 어디까지 떠밀려 갈 참인가. 교육의 본질은 민원을 잠재우는 것이 아니라, 모든 인간은 존중받을 가치가 있음을 배우는 데 있음을 교육부는 기억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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