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왕산 계곡에서 생포된 北 특수부대원 김신조 “신사적으로 대해 달라”
2025년 4월 9일 83세

1968년 1월 22일 새벽 1시 30분쯤 북한 정찰국 대남 공작 특수부대인 124군 부대 소위 김신조(1942~2025)는 서울 인왕산 계곡에 숨어들었다. 수색 나온 ○사단 군인들을 피해 외딴 판잣집 앞 풀더미 속에 은신했다가 손을 들고 생포됐다. 무장한 북 정예 특수부대원을 사로잡는 데 수훈을 세운 이들은 ○사단 주희준 소령, 박원조 소위, 하용 하사, 차장석 이병이었다.
김신조 생포 과정은 비밀에 붙여졌다가 1·21 사건 6일이 지난 1월 27일 공개됐다.

“이들이 개울가 외딴 판잣집 앞에 이르렀을 때 풀더미 속에서 반짝이는 눈동자가 플래시에 들어왔다. 박 소위는 부하들에게 좌우 5m 정도로 김을 포위하도록 지시하고 김의 뒤로 돌아갔다. 생포할 생각으로 “손 들고 나오라”고 소리쳤으나 그는 움직이지 않았다. 3, 4분간 긴장된 순간이 지났을 때 참다 못한 하 하사가 20여 발의 위협 사격을 했으나 그는 죽은 듯 꼼작도 않았다. 총소리를 듣고 달려온 주 소령이 찝의 헤드라이트를 얼굴에 비추자, 비로소 김은 손을 반쯤 든 채 엉거주춤 걸어나왔다. “쏜다, 수류탄을 버리라”는 주 소령의 고함에 그는 왼손에 들었던 수류탄을 앞의 바위로 내던졌다.”(1968년 1월 28일 자 7면)
김신조는 생포된 직후 “나는 황해도 연산에 있는 124군 부대원이다”라고 신분을 밝히고 “신사적으로 대해 달라”고 말했다.
김신조를 포함한 북 특수부대원 31명은 1월 16일 오후 2시 황해북도 연산 기지를 출발했다. 이튿날 개성을 거쳐 연천 매현리 인민군 초소에서 휴전선을 넘었다. 이때까지 아무에게도 발각되지 않았다. 임진강이 얼어 있어 쉽게 건널 수 있었다. 18일 파주 법원리 초리골 뒷산에서 나무를 하던 우씨 4형제와 맞닥뜨렸다. 살해 여부를 놓고 부대원끼리 논쟁을 벌이다가 얼어붙은 땅에 시신을 묻기 어렵다는 이유로 죽이지 않기로 했다. “신고하지 않겠다”는 다짐을 받고 방면했다. 우씨 형제들은 곧바로 경찰에 신고했으나 우리 군경은 북 특수부대원의 서울 진입을 막지 못했다.

김신조는 생포 당일인 22일 오후 7시부터 30분간 육군 방첩부대 회의실에 마련된 기자회견에 참석했다. 두 손을 뒤로 묶인 채 단상에 마련된 마이크 앞 의자에 앉았다. 기자 100여 명이 모인 가운데 질문에 상세히 답했다.
“-이번 임무는?
김=박정희의 ×××를 떼고 수하 간부들을 총살하는 것입니다.
-결사대의 구성은?
김=우리 부대인 제124군 부대는 남조선의 요인 암살과 주요 시설 파괴를 목적으로 편성되어 있읍니다. 병력은 2천4백명인데 현역 복무를 한 북한 출신으로 신체가 건강하고 가정환경이 좋은 열성당원 가운데서 선발하여 2년동안 특수훈련을 받은 자들입니다. 이번에 내려온 것은 그중에서 제일 용감한 자들입니다.
-청와대 습격 작전 계획은?
김=31명이 5명 내지7명씩 6개조로 나뉘어 1조에서 5조까지는 청와대의 1층, 2층, 경호실, 비서실, 정문 위병소의 격파를 분담하고 나머지 1개조는 습격이 성공했을때 청와대 수송부의 자동차를 탈취, 문산까지 나가 임진강으로 도강하는 것입니다.”(1968년 1월 23일 자 1면)

김신조 일당은 2월 3일까지 북악산·비봉·파주 등지에서 우리 군경과 교전을 벌이다 29명이 사살됐다. 1명은 북한으로 도주했다. 이때 살아서 돌아간 박재경은 인민군 대장까지 진급하고 총정치국 부총국장, 인민무력부 부부장 등을 지냈다. 김대중 정부 때인 2000년 김정일이 선물한 송이버섯 3톤을 가지고 서울을 찾기도 했다. 박재경이 1·21 사건의 생존 대원이었다는 사실은 2004년 김신조의 증언으로 밝혀졌다.

김신조의 청와대 습격 사건으로 한국의 안보 체계는 완전히 바뀌었다. 1968년 4월 향토예비군이 창설됐다. 고교·대학에서 교련 교육이 실시되고, 전 국민에게 주민등록번호가 부여됐다.
김신조는 1996년 목사 안수를 받고 목회 활동을 했다. 별세 후 장례식장에는 1·21 사건 당시 신고했던 우씨 형제의 막내 우성제씨도 찾아와 조문했다. 김신조는 목사가 된 후 몇 년에 한 번씩 초리골을 방문해 우씨 형제를 만났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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