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사일언] 마법사가 나오면 소설이 아닌가요?
중학교 1학년 국어 교과서의 두 번째 소단원은 언제나 소설이다. 학원에서 국어를 가르치다 보면 첫 번째 소단원인 시 수업은 편하게 듣던 학생이 소설은 조금 어려워하는 것을 보게 된다. 시는 언제나 ‘시’였지만, 소설은 초등학교 교과서에서 ‘이야기’로 불리니까.
교과서는 소설의 개념을 다음과 같이 가르친다. 현실에 있을 법한 일을 작가가 상상하여 꾸며 낸 허구의 이야기. 중학교 1학년에게 ‘허구’는 조금 어려운 단어다. 그것이 한자어여서도 있겠지만, 이제부터는 이야기를 읽으며 그것이 거짓임을 인지해야 하는 것이 어려운지도 모른다. 현실과 상상을 명료하게 구별해야 하는 나이가 오는 것이다.
하지만 20여 년 전 나를 가르친 국어 선생님은 ‘허구’를 강조하지 않았다. 선생님은 소설의 정의에서 가장 중요한 부분은 ‘있을 법한’이라고 말씀하셨다. 그 이유가 무엇인지는 기억하지 못하면서, 나는 그저 선생님께 배운 대로 학생들에게 소설의 정의를 가르친다. 대부분의 학생은 20년 전의 나처럼 그러려니 하고 고개를 주억거리지만, 허구를 너무 일찍 분별해버린 학생에게 예상치 못한 질문을 받기도 한다. “그럼 마법사나 용이 등장하는 이야기는 소설이 아니에요?”
처음에는 명쾌하게 답하지 못하고 넘어갔었지만, 지금이라면 이렇게 설명할 수 있을 것 같다. 교과서가 말하는 ‘있을 법한’은 ‘사실적인’이나 ‘실현 가능한’과 같지 않고, 작품 속 세계가 작동하는 방식에서의 있을 법함, 즉 개연성을 가리킨다고. 중학생 수준으로 설명하자면, 마법을 부리는 세계관 안에서 있을 법한 일은 마법사를 양성하는 학교가 있고 거기서 빗자루를 타고 날아다니는 구기 스포츠 경기가 진행되는 것이다.
하지만 소설을 쓰는 입장에서 가장 골치 아픈 것이 개연성이다. 세계관에 빈틈이 생기고 인과관계가 느슨해져서 개연성이 떨어지기라도 하면 소설 전체의 가치와 완성도마저 하락하는 것만 같다. 애당초 내가 그 개연성의 잣대로 다른 작품을 평가해 왔으니 그것은 내 업보이기도 하다.
그래서 한 번씩은 중학생들에게 소설을 다른 방식으로 알려주고 싶어진다. 소설은 딱히 있을 법하지 않을 때도 있고, 허구든 현실이든 그런 구별은 중요하지 않다고. 소설은 여전히 너희가 배워 온 그 ‘이야기’라고.
/김선준·2026 조선일보 신춘문예 소설 당선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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