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를 통해 삶을 묻다] 유한한 삶 앞에 선 우리의 선택
끝을 가정할 때 달라지는 태도
생각 넘어 실천으로 향하는 삶
이번에 소개하는 시는 시인이 작자 미상이다. 작품의 원작자가 누구인지 알 수 없다.
작자 미상의 시 '만약 내가 스물네 시간만 살 수 있다면'을 소개한다.
구체적인 행동이 우리의 삶이다. 구체적인 것들을 추상적으로 압축해서 표현하지만 추상으로 잡히지 않는 세계가 있다. 우리는 발을 땅에 딛고, 먹고, 자고, 웃고, 나누며 살아간다. 그것 외에도 물론 많다. 꿈을 꾸고 꿈을 실현하기 위해 공부하고 또 공부한다. 실현되면 되는대로, 안되면 안되는 대로 그 속에서 허우적거리며 살아간다. 성공하고 싶고, 부자가 되고 싶고, 꿈꾸는 욕망이 그대로 되길 빌면서 산다. 제발 이것만은 이뤄달라고 기도한다.
그러나 이 시의 제목처럼 '만약 내가 스물네 시간만 살 수 있다면', 그런 상황이 온다면 삶의 물음도 달라지고, 물음이 달라지는 만큼 행동 역시도 달라질 것이다. 우리는 시간 안에서 움직인다. 필멸하는 인간이다. 아무도 피해 갈 수 없는 운명이다. 지금 열심히 살든, 남을 괴롭히며 살든, 남을 착취하고 살든 그것에 상관없이 시간이 지나면 흔적 없이 사라질 것이다.
그런 운명을 가정하고 사는 사람과 영원히 살 것처럼 살아가는 사람의 태도는 다르다. 내게 주어진 시간을 한정하고 인생을 바라본다면 열심히 산다고 놓쳤던 것들을, 그래도 어느 정도는 볼 수 있고, 알곡 같은 삶이 되려고 행동을 수정할 것이다. 행동하는 곳에 생각도 어느 정도 따라간다. 생각이 바뀌면 행동이 바뀌게 된다. 생각이 곧 행동이 되는 사람도 있지만, 늘 생각을 붙잡고 생각 속에서 허우적거리는 사람도 많다.
'옥수수 익어가는 들판에 맨몸으로 누워보겠어.', '행려병자를 등에 업고 응급실까지 달려가겠어.' 이 시구들이 마음을 친다. 시적화자의 온몸으로 세상을 느끼고 싶은 마음과 행동으로 약자를 위한 마음을 기꺼이 내보겠다는 결심이 파란 보리밭에 일렁이는 바람을 타고 오는 것 같다.
'돈을 많이 버는 법을 궁리하지도 않을 거야.' 이 시적 발상이 좋다. 우리는 늘 돈을 어떻게 하면 많이 벌까를 연구한다. 너무 연구를 많이해서 벌기는커녕 까먹기만 할 경우가 더 많으면서, 심혈을 기울여서 궁리한다. 돈을 많이 버는데 정신이 쏠린 나머지, 내것을 챙기고, 내것을 채우고, 심지어 남의 것까지 뺏고 주지 않는 경우도 있다. 그럴 때는 '정신차려, 땡땡아'를 불러야 한다. 소리 높여 나의 이름을 부르며, 정신차려라고 경고해야 한다. 주변도 경고해야 한다.
딱 하루라는 시간만 당신에게 남아 있다면 당신은 어떻게 할 것인가? 인생무상을 느끼며 고요히 저물어 갈 것인가. 아니면 뭔가 의미있는 행동들을 해보고 소멸할 것인가는 선택이다. '만약'이라는 가정이 있는 삶이 풍요롭다. 긴 편지를 쓸 수도 있고, 화해하는 시간을 가질 수 있고. 나 자신의 달리는 속도를 조절할 수도 있다.
만약 내가 스물네 시간만 살 수 있다면
-작자 미상
만약 내가 스물 네 시간만 살 수 있다면
나는 텔레비전을 보지는 않을 거야.
컴퓨터 앞에 앉아 있지도 않을 거야.
밀리는 차 속에서 몇 시간씩 죽치고 있지도 않을 거야.
의견이 다른 사람과 싸우지도 않을 거야.
쇼핑을 가지도 않을 거야.
돈 많이 버는 법을 궁리하지도 않을 거야.
거실의 쇼파에 앉아 졸지도 않을 거야.
만약 내가 스물 네 시간만 살 수 있다면
우리나라의 제일 아름다운 곳으로 여행을 떠나겠어.
싸우고 헤어진 사람들과 화해하겠어.
옥수수 익어가는 들판에 맨몸으로 누워보겠어.
나를 쫒아낸 직장 상사를 용서하겠어.
모르는 사람의 결혼식에 참석해 축하해주겠어.
행려병자를 등에 업고 병원 응급실까지 달려가겠어.
그러고도 시간이 남는다면,
나를 만드시고 회수해가시는 그분께
죄 많은 몸이지만 받아달라고 기도하겠어.
-「당신의 그림자 안에서 빛나게 하소서」(이문재 엮음, 2024, 달 출판사) 54-55 쪽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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