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호 사건’ 고심하는 헌재… 헌법적 기본권 침해 여부에 방점 [심층기획-재판소원·법왜곡죄 시행 한 달]
한 달간 322건 중 194건 각하
장영하·구제역 등 사건도 퇴짜
제도 엄격 ‘대만식 모델’에 주목
독일·스페인 등 해외 사례서도
법원의 ‘기계적 법 해석’ 정조준
헌재, 4심 논란 차단 묘수 고심
“제도 안착까지 4∼5년 걸릴 것”

헌재는 6일 헌법재판관 3명으로 구성된 각 지정재판부 평의 결과 총 120건의 재판소원 사건을 각하했다고 밝혔다. 지난달 24일과 31일에도 각각 26건, 48건을 각하했다. 지난달 12일 재판소원 제도 시행 이후 6일까지 접수된 재판소원 사건 총 322건 가운데 194건이 각하된 것이다.
헌재는 사건이 접수되면 지정재판부에서 법적 요건을 갖췄는지 판단하고 청구가 부적법하면 본안 심리 없이 각하하는데, 아직 단 한 건도 이 ‘첫 관문’을 통과하지 못한 셈이다.
이재명 대통령에 대한 허위사실 공표로 유죄가 확정된 장영하 국민의힘 성남시 수정구 당협위원장, 유튜버 쯔양에게 수천만원을 뜯어내 실형이 확정된 유튜버 구제역(본명 이준희)이 낸 재판소원 사건도 “청구 사유에 해당하지 않는다”는 이유로 이번에 각하됐다.

헌재 안팎에선 해외 국가 중 가장 최근인 2022년에 재판소원 제도를 도입한 ‘대만식 모델’이 주목받고 있다.
헌재는 재판소원 도입을 위한 헌재법 개정 논의때 독일과 달리 ‘확정 판결’만을 대상으로 하는 대만의 법 조문을 참고한 것으로 알려졌다. 원칙적으로 대법원 상고심까지 거친 사건만을 재판소원 대상으로 삼겠다는 것이 헌재 방침이다.
‘명백한 기본권 침해’만을 대상으로 하는 것도 대만과 우리 제도의 공통점이다. 헌재법 68조 3항 3호는 재판소원 청구사유 규정인 ‘법원의 재판이 헌법과 법률을 위반함으로써 기본권을 침해한 것이 명백한 경우’로 한정했다. 독일은 재판소원 청구사유에 ‘명백한 헌법·법률 위반’이란 표현은 두고 있지 않다.
대만은 이러한 제도를 토대로 재판소원 제도를 엄격하게 운용하고 있다는 평가를 받는다. 대만의 최근 재판소원 인용 건수는 2022년 1건, 2023년 4건, 2024년 22건뿐이다. 지난해는 재판관 정원 미달로 인한 심판정족수 부족 등 여파로 0건이었다.
현재 헌재의 인적, 물적 여건을 감안했을 때 헌재 역시 대만과 같이 소수 사건만 본안에 회부해 심리할 가능성이 높다는 분석이다.
재판소원을 도입한 독일과 스페인, 대만에서는 공통적으로 법원이 법률을 기계적으로 적용하느라 놓친 헌법상 기본권에 주목했다. 헌법상 보장받아야 할 ‘방어권’과 ‘표현의 자유’ 등 권리를 간과했다는 점을 들어 법원의 판결을 취소했다.
독일에선 1958년 ‘뤼트 결정’이 상징적 사건으로 평가되고 있다.
당시 독일 법원은 나치 부역 이력이 있는 영화감독 베이트 할란에 대한 보이콧을 주도한 공직자이자 언론인 에리히 뤼트에게 불매운동 금지 명령을 내렸다. 그러나 연방헌법재판소는 민사 판결이라고 하더라도 헌법상 표현의 자유를 침해해선 안 된다는 이유를 들어 법원의 판결은 위헌이라 판단하고 취소했다. 헌법이 단순히 국가와 개인 사이 규칙에 불과하지 않고 민사 재판에도 직접적인 영향을 미친다는 ‘기본권의 방사효(빛이 사방으로 뻗어 나가는 효과)’ 이론을 정립한 것이다.
스페인 헌재의 1호 인용 사건은 행정 처분을 받은 청구인이 법원에 소를 제기했지만 법원이 소송 수행인 선임 등 절차적 요건이 미비하단 이유로 아예 심리하지 않고 각하한 사건이었다. 스페인 헌재는 1981년 재판 과정에서 헌법이 보장하는 ‘효과적인 사법적 보호’ 권리가 침해됐다고 판단하고 법원의 결정을 취소했다. 법원이 지나치게 형식적인 법 해석으로 당사자가 법정에 서서 재판받을 기회 자체를 원천 봉쇄한 것은 위헌이라는 지적이었다.

우리나라의 경우에도 법리와 사실관계를 다시 따지는 ‘제4심’ 논란을 피하면서, 헌법상 기본권을 법원이 침해하지 않았는지 여부에 방점이 찍힐 전망이다.
서 변호사는 “법원의 주관적 해석이 들어갈 수 있는 요건들에 대한 판단들이 재판소원의 첫 대상이 되지 않을까 싶다”며 “설명 없이 불충분하게 기각된 사례들은 재판청구권 침해로 헌재의 판단을 받아볼 수 있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가령 점거농성으로 기소된 노조원의 퇴거불응이나 업무방해 사건에서 정당행위 여부에 대해 헌법의 기준에서 살필 수도 있다”고 부연했다.
한 법무법인의 재판소원 담당 변호사는 “헌재는 법원의 전권인 ‘사실인정’은 건드리지 않으면서도, 법관이 헌법적 가치를 외면한 ‘해석의 오류’를 잡아내는 상징적 사건을 고를 것”이라고 내다봤다.
심리불속행 기각 사건 역시 주요 재판소원 대상으로 거론된다.
법조계 관계자는 “아무래도 대법원 판결보다는 대법원에서 심리불속행으로 2심 판결을 그대로 확정한 사건들에서 문제점이 발견될 가능성이 더 높지 않겠느냐”고 예측했다.
헌법연구관 출신 변호사는 “헌재도 재판소원이 이렇게 빠르게 도입될 줄은 예상 못하고 최근 부랴부랴 연구에 착수했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백지 상태인 제도가 예측 가능성을 갖추려면 결정례가 충분히 쌓이고 헌재 심판규칙도 손질해야 한다”며 “제도 안착까지 4, 5년은 걸릴 것”이라고 예상했다.
홍윤지·윤준호·최경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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