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주 출신 이제민·김경수 연구팀, 백악기 식물 생태계 새롭게 규명 거대 산맥 막혀 '비그늘'효과…학술지 ‘백악기 연구’ 최신호 게재
1억 1000만 년 전 백악기 시대, 한반도 남부는 안데스 산맥 같은 거대한 산맥에 가로막혀 비가 적게 내리는 메마른 '사바나' 환경이었음이 식물 화석을 통해 새롭게 밝혀졌다.
이제민(UC 버클리), 김경수(진주교대) 교수 등으로 구성된 국제 공동 연구팀은 진주시 정촌면과 사천시 서포면에 위치한 진주층(약 1억 1200만~1억 600만 년 전)에서 발굴된 400여 점의 식물 화석을 분석한 결과, 당시 이 지역이 '온대 산간 사바나(Temperate Intermontane Savanna)' 생태계였음을 규명했다고 8일 밝혔다.
이번 연구 결과는 백악기 식물 생태계가 단순히 위도에 따라 '아열대-건조' 또는 '온대-습윤'으로만 나뉜다는 기존 학계의 이분법적 정설을 뒤집는 것으로, 백악기 연구 분야 국제 저명 학술지인 '백악기 연구(Cretaceous Research)'에 게재됐다.
연구진에 따르면, 당시 경상분지(경상남북도 일대의 거대한 퇴적 분지) 동쪽의 아시아 대륙 가장자리에는 안데스 산맥과 유사한 해발 2500m가 넘는 거대한 산맥이 자리 잡고 있었다.
이 높은 산맥들이 바다에서 불어오는 비구름을 가로막는 이른바 '비 그늘(Rain shadow)' 효과가 발생해 산맥 뒤편에 위치한 진주 일대에는 건조한 기후가 형성됐다.
실제로 연구진이 발굴한 식물 화석의 대부분은 가뭄을 견디기 위해 잎을 뾰족한 비늘이나 바늘 모양으로 진화시킨 건조 적응형 침엽수(체이로레피드과, Cheirolepidiaceae 등)를 포함한다. 이는 마치 오늘날의 아프리카 사바나 지역처럼 듬성듬성 나무가 자라는 건조한 초원 및 숲의 모습을 띠었음을 의미한다.
놀라운 점은 이렇게 척박하고 건조한 기후 속에서도 물을 많이 필요로 하는 북방계 온대성 식물 화석(Krassilovia, 도일목 등)이 함께 발견되었다는 것이다. 이 식물들은 주로 캐나다, 러시아, 몽골 등 비가 많이 오는 고위도 습윤 지역에서만 발견되던 종들이다.
연구팀은 진주 일대에 넓게 퍼져있던 강과 호수 시스템이 가뭄 속에서도 수분을 공급하는 '수문학적 피난처(오아시스)' 역할을 한 것으로 분석했다. 비록 지역 전체는 메말랐지만, 호숫가 주변의 습지에는 생명수가 유지되어 북방의 온대성 식물들이 건조한 환경을 피해 살아남을 수 있었던 것이다.
이러한 온대성 습윤 식물들은 다른 고위도 지역에서도 늪지대와 같이 생태적 스트레스가 높은 환경에서 자랐던 종들로, 환경적 스트레스에 적응된 식물들이 산간 지역의 경상분지에 서식했다는 해석을 뒷받침한다.
건조 기후, 특히 사막 환경은 아열대 고기압 벨트 근처에 주로 나타나지만, 온대성 건조 식생은 지금도 고지대 산간 지역에서 찾아볼 수 있다. 예를 들어, 미국 남서부의 소노라 사막은 아열대성 사막으로 사구아로 선인장과 같이 높은 온도에 적응된 식물이 서식하는 반면, 보다 북쪽에 분포한 그레이트 베이신 사막은 온대성 사막으로 현저히 다른 식물상이 발견된다.
또한, 이번 연구는 왜 백악기 중기에 전 세계적으로 번성하기 시작한 '속씨식물(꽃피는 식물)'이 한반도(경상분지)에서는 유독 늦게 등장했는지에 대한 해답을 제시한다.
꽃피는 식물은 전기 백악기에 최초로 나타났으며, 이들의 화석 기록은 중국, 러시아 등지의 진주층보다 오래된 암석에서 종종 발견되지만 경상분지에는 훨씬 늦게 등장한다. 초기 꽃피는 식물들은 척박한 환경을 견디는 능력이 부족했는데, 사방이 거대한 산맥으로 둘러싸여 있고 극심한 가뭄이 반복되는 경상분지의 혹독한 환경이 꽃피는 식물들의 유입을 막는 거대한 장벽으로 작용했을 가능성이 크며, 이에 대한 추가적인 분석이 진행되고 있다.
연구팀은 "이번 진주층 식물 화석 연구는 1억 1000만 년 전 한반도의 지형과 기후가 어떻게 생태계를 독창적으로 변화시켰는지를 보여주는 매우 중요한 성과"라며, "공룡 발자국 화석으로 유명한 진주층이 식물 진화와 고기후를 이해하는 데에도 세계적인 가치가 있음을 다시 한번 증명했다"고 연구 의의를 밝혔다.
이번 연구의 제1저자인 이제민씨는 진주 출신의 진화생태학자로, UC 버클리에서 박사 과정을 마치고 스미스소니언 자연사박물관에서 포스트닥터 펠로우로 현화식물(꽃피는 식물) 진화와 관련된 생태계 변화에 대한 연구를 이어나갈 예정이다.
임명진기자 sunpower@gnnews.co.kr
건조기후에 적응된 소엽침엽수 (카이로레피드과 [Cheirolepidiaceae] 등)의 대표 사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