갈고닦은 ‘기본기’ 증명…“연주하는 순간만큼은 더 즐겼으면”

첼로 등 7개 부문…1000여명 참가
“얘기하듯 부드러운 음악 하고 싶어”
“박자·음정·정확성 중요하지만
지나치게 집착하는 모습 아쉬워”
경연 무대에 오르기 전, 밀폐된 연습실에서 2분30초가량 손을 풀었다. 그래도 긴장감은 여전하다. 공연장 밖 대기실에서 번호가 불린 참가자는 무대 뒤로 들어간다. 커튼 하나를 사이에 두고 앞 번호 참가자의 연주가 들린다. 순간의 틈도 가만히 있을 수가 없다. 첼로의 현을 손가락으로 짚으며 그간의 연습을 머릿속으로 복기한다. 자신의 번호가 다시 불리면 첼로를 들고 심사위원 앞으로 걸어간다.
지난 3일 서울 이화여고 백주년기념관에서 열린 제75회 이화경향음악콩쿠르 첼로 고등부 예선 현장이다. 참가자 42명에게 주어진 지정곡은 피아티가 쓴 ‘첼로 독주를 위한 12개의 카프리스’ 중 7번. 2분 남짓한 길이의 이 곡을 표현하기 위해 지난 몇달간을 연습에 쏟아부었을 참가자들은 팽팽한 긴장감 속에서 저마다 갈고닦은 기량을 펼쳤다. 연습곡(에튀드)인 이 작품은 첼리스트의 왼손 테크닉과 음정의 정확성을 평가할 수 있는 곡이다. 연주를 마치고 나온 참가자들의 표정에는 아쉬움과 후련함이 교차했다.
서울예고 3학년 정하은양은 “이번 지정곡은 국제 콩쿠르에도 많이 나오는 곡인데 반복되는 구간이 많아 이를 다양하게 변주하면서 표현하는 것이 어렵다”고 말했다. 지난해 3등에 입상했던 김태희양(서울예고 3학년)은 “다시 도전했는데 연주를 마친 뒤에는 늘 아쉬움이 남는다”고 했다. 경북 청도 이서고 2학년 김리나양은 “연주자의 기본기가 잘 드러나는 곡이라 음정을 정확하게 표현하는 데 초점을 두고 연습했다”며 “음악적으로도, 인간적으로도 감동을 주는 첼리스트 지안 왕 같은 연주자가 되고 싶다”고 포부를 밝혔다. 첼리스트 문태국을 존경한다는 계원예고 3학년 차승호군은 “악기 하나로 협주곡 같은 입체감과 방향성을 드러내야 하는 어려운 곡”이라면서 “힘주지 않고 이야기하듯 쉽고 부드럽게 음악을 들려주며 즐기는 연주자가 되고 싶다”고 했다.
심사에 참여한 송희송 대구가톨릭대 교수는 “학생들의 수준이 전반적으로 향상되었다”면서도 “지나치게 어려운 곡, 기교와 화려함을 과시하는 곡을 어려서부터 연습하고 연주하는 추세가 강하다보니 그 나이대에 꼭 필요한 공부가 뒷전으로 밀리는 경향이 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이어 “이 때문에 인내심을 갖고 충실하고 탄탄한 기본기를 닦으며 공부할 수 있는 곡을 지정곡으로 선정했다”고 설명했다. 김지훈 동덕여대 교수는 “초등부는 박자, 중등부는 음정, 고등부는 정확성에 초점을 둔 곡을 지정곡으로 제시했는데, 지나치게 이 포인트에 집착하는 모습이 좀 아쉬웠다”면서 “연주하는 즐거움이 드러나는 참가자는 많지 않았던 것 같다”고 말했다. 또 “연습하는 과정은 고될 수밖에 없지만 연주하는 순간만큼은 즐길 수 있어야 연주자로서 꾸준히 발전할 수 있다”고 덧붙였다.
이화경향음악콩쿠르는 1952년 한국전쟁으로 고통받는 민족에게 꿈과 희망을 심어주자는 취지로 처음 열린 뒤, 올해로 75회째를 맞이한 국내 최고 권위와 역사를 지닌 콩쿠르다. 1회 피아노 부문 수상자 신수정을 비롯해 피아니스트 한동일·이경숙·김대진·김선욱·손열음·조성진·선우예권·박재홍, 바이올리니스트 정경화·강동석·김봄소리·양인모, 첼리스트 송영훈·장한나·김두민·문태국·한재민 등 수많은 연주자를 배출했다.
올해는 바이올린, 비올라, 피아노, 첼로, 플루트, 클라리넷, 성악 등 7개 부문에 1000여명이 참여했다.
파가니니 국제 바이올린 콩쿠르 위원장 지오반니 파네비앙코는 “이화경향음악콩쿠르는 한국을 넘어 세계적인 수준의 음악적 완성도를 판단하는 기준점으로 자리매김해왔고 탁월한 재능을 지닌 젊은 예술가들이 전문 음악가로서의 여정을 시작하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해왔다”고 축하 인사를 전해왔다.
75회 이화경향음악콩쿠르 본선은 9~16일 부문별로 열린다.
박경은 선임기자 king@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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