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쓰기 레시피 6] 글이 짧은 아이, 할 말이 없는 게 아닙니다

김현주 기자 2026. 4. 8. 19: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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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냐하면" 한 마디가 바꾸는 글쓰기의 세계
[글쓰기 레시피 6] 글이 짧은 아이, 할 말이 없는 게 아닙니다. 사진=생성형AI이미지

[한국독서교육신문 김현주 기자]

아이의 일기장을 들여다본 적 있으신가요. 대개 세 줄입니다. "오늘 학교 갔다. 급식이 맛있었다. 집에 왔다." 줄과 줄 사이 여백이 넓고, 마지막 마침표 뒤로 텅 빈 공간이 이어지죠. 부모는 안타까워 말합니다. "좀 더 써봐." 아이는 고개를 듭니다. "더 쓸 게 없어요."

이 짧은 대화 안에, 오늘날 아이들의 글쓰기 교육이 놓친 핵심이 담겨 있습니다.

'쓸 게 없다'는 말의 진짜 의미

아이가 "쓸 게 없어요"라고 말할 때, 그건 경험이 부족해서가 아닙니다. 생각이 짧아서도 아니고요. 그 아이의 머릿속에는 이미 태평양만 한 감정과 기억이 출렁이고 있습니다. 문제는 단 하나, '어떤 문을 열어야 그것들이 쏟아져 나오는지' 모른다는 겁니다.

흔히 이런 처방이 내려지죠. "접속사를 써라." "형용사를 넣어라." "육하원칙을 지켜라." 틀린 말은 아닙니다. 하지만 이런 조언들은 글을 이미 쓸 줄 아는 사람에게나 유효합니다. 빈 원고지 앞에서 굳어버린 아이에게 "형용사를 써봐"라는 말은, 수영을 못하는 아이에게 "팔을 저어봐"라고 말하는 것과 다르지 않습니다.

아이에게 필요한 건 문법이 아닙니다. 생각을 꺼내는 방법입니다.

첫 번째 열쇠: '그리고' 대신 '왜냐하면'

아이들의 글에는 공통된 구조가 있습니다. 시간의 흐름입니다. "일어났다. 밥 먹었다. 학교 갔다. 집에 왔다. 잤다." 이 문장들은 모두 '그 다음(And)' 으로만 연결됩니다. 사건이 열차처럼 줄지어 지나갈 뿐, 어디에도 멈춰 생각할 이유가 없는 거죠.

여기에 단 하나의 단어를 심어주면 모든 것이 달라집니다.

"왜냐하면."

이 단어는 단순한 접속어가 아닙니다. 앞 문장에 '이유와 책임'을 요청하는 신호예요. "나는 오늘 기분이 나빴다"라는 문장 뒤에 '왜냐하면'을 붙이는 순간, 아이는 멈춰 서야 합니다. 왜 나빴지? 진짜 이유가 뭐지? 그 이유를 찾는 과정에서, 아이는 자기 감정의 뿌리를 처음으로 들여다보게 됩니다.

: "나는 오늘 기분이 나빴다. 
:"나는 오늘 기분이 나빴다. 왜냐하면 쉬는 시간에 필통을 꺼내다가 일본 여행에서 엄마가 사주신 샤프펜슬을 바닥에 떨어뜨렸는데, 클립이 부러져버렸기 때문이다. 너무 예뻐서 꺼내 쓰지도 못하고 필통 안에서만 아껴두었던 것인데, 그냥 집에 두고 올걸 그랬다."

두 번째 '왜냐하면'을 또 붙이면, 세 번째 문장이 스스로 태어납니다. 글은 이렇게 꼬리에 꼬리를 물고 자랍니다.

이건 단지 글쓰기 기술이 아닙니다. 심리학에서는 이를 '원인 귀인(Causal Attribution)' 이라고 부릅니다. 자신의 감정과 행동에 이유를 붙이는 훈련이 반복될수록, 아이는 더 높은 자기 이해력과 공감 능력을 갖게 됩니다. 좋은 글쓰기와 건강한 정서 발달이 같은 뿌리에서 자라는 이유가 바로 여기 있습니다.

부모가 해줄 수 있는 가장 쉬운 개입은, 아이의 짧은 문장 뒤에 조용히 묻는 겁니다.

"왜?"

그것으로 충분합니다.

두 번째 열쇠: 돋보기를 들이대세요

"강아지가 귀엽다." 대부분의 아이는 여기서 멈춥니다. 문장이 틀리지 않으니까요. 하지만 이 문장은 정보를 전달할 뿐, 읽는 사람에게 아무것도 보여주지 않습니다. 강아지가 귀엽다는 건 누구나 압니다. 독자가 읽고 싶은 건 '우리 아이의 강아지가 어떻게 귀여운가' 이거든요.

여기서 효과적인 것이 줌인(Zoom-in) 기법입니다. 전체를 보지 말고, 아주 작은 조각에 렌즈를 들이대는 거예요.

아이에게 이렇게 물어봐 주세요. "강아지 어디가 제일 귀여워?" 아이가 "눈이요"라고 대답하면, 한 번 더 좁혀봅니다. "눈의 어떤 부분?" 이렇게 점점 작은 곳으로 시선을 이동시키다 보면, 아이는 어느 순간 스스로도 몰랐던 것을 발견합니다. 코끝의 촉촉함, 발바닥의 핑크빛 젤리, 잠들 때만 드러나는 흰 배털의 결.

"우리 강아지는 귀엽다. 특히 까만 코끝이 촉촉해서 귀엽다. 손가락으로 살짝 건드리면 차갑고 말랑하다. 여름에 편의점 아이스크림을 사서 포장지를 뜯을 때의 그 차가움이랑 비슷하다."

처음 문장과 마지막 문장 사이의 거리를 한번 느껴보세요. 이 거리가 바로 글의 깊이입니다.

소설가들이 쓰는 이 기법은 아이들에게도 그대로 통합니다. 넓은 시야에서 시작해 점점 좁고 구체적인 감각으로 파고드는 훈련은, 글쓰기 능력뿐 아니라 관찰력과 집중력을 동시에 키워줍니다. 세상을 성기게 보던 아이가 세밀하게 보기 시작하는 겁니다.

세 번째 열쇠: '만약 그렇지 않았다면'의 상상력

가장 창의적인 문장 확장법은, 존재하지 않는 상황을 불러오는 겁니다. 이것이 'IF, 반대 상황 가정' 기법입니다.

"오늘 급식이 맛있었다." 여기서 아이는 멈춥니다. 사실을 기록했으니까요. 그런데 이 문장에 이런 질문을 던지면 어떨까요.

"만약 오늘 급식이 맛없었다면?"

그 순간 아이의 뇌는 전혀 다른 회로를 켭니다. 사실을 기록하는 뇌가 아니라, 가능성을 탐색하는 뇌가 작동하기 시작하는 거예요.

"만약 오늘 급식이 맛없었다면, 나는 오후 내내 배가 고팠을 것이다. 수학 시간에 졸았을지도 모른다. 집에 오자마자 라면을 끓여달라고 했을 것이고, 엄마한테 오늘 학교 급식 얘기를 더 오래 했을지도 모른다."

없었던 일을 상상하는 것, 이것이 바로 문학적 사고의 출발점입니다. 소설이든, 시든, 좋은 에세이든 모두 '만약'이라는 질문에서 태어납니다. IF 기법은 아이에게 상상력을 훈련시키는 동시에, 현재의 상황을 더 입체적으로 인식하게 만들어줍니다. 지금 좋은 것이 왜 좋은지, 그것이 없었다면 무엇이 달라졌을지를 생각하는 능력. 이건 감사와 통찰의 능력이기도 합니다.

글쓰기가 대화여야 하는 이유

세 가지 열쇠 — 왜냐하면, 줌인, 만약 그렇지 않았다면 — 에는 공통점이 있습니다. 모두 아이 혼자서 완성되지 않는다는 점입니다. 적어도 처음에는, 옆에서 질문을 던져줄 누군가가 필요합니다.

그 누군가가 부모여도 좋고, 선생님이어도 좋습니다. 중요한 건 글쓰기를 과제가 아닌 대화로 시작하는 것입니다. "다 썼어? 잘 했어"가 아니라, "이 문장 뒤에 왜냐하면을 붙여볼까? 왜 그랬을 것 같아?"라고 함께 앉아 묻는 것. 그 대화가 충분히 쌓인 아이는, 머지않아 혼자서도 스스로에게 묻기 시작합니다. 왜? 어디가? 만약?

그때부터 아이는 혼자 쓰는 게 아닙니다. 세상과 대화하면서 쓰는 거예요.

아이의 일기장 세 줄을 오늘 다시 꺼내보세요. 마지막 문장 끝에 조용히 앉아, 물어봐 주세요.

"왜 그랬을까? 어디가? 만약 달랐다면?"

그 다정한 질문 하나가, 아이의 원고지를 다음 장까지 채워줄 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