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시는 건축’, ‘마실 수 없는 물’ [이경화의 하이브리드 美MI]

“건물을 마셔요.”
미 프린스턴대 교수 엘리자베스 딜러가 웃으며 말했다. 어느 건축 강연에서였다. 마치 만화영화의 한장면처럼 들렸다. 과자를 먹는 것도 아닌데 건물을 마신다니, 도대체 무슨 말인가. 그녀가 소개한 작품은 말 그대로 ‘안개와 물로 이루어진 건축물’이었다. 그러나 눈앞에 펼쳐진 이 낯설고 유쾌한 장면은,
오늘날 물이 사라지고 있는 현실과 겹쳐지며 전혀 다른 무게로 다가온다. 특히 이란에서는 물이 더 이상 감각적 경험의 대상이 아니라, 생존을 위협하는 절박한 자원이 되었다.
오랜 가뭄과 기후 변화로 이미 취약해진 수자원 상황 위에, 최근의 전쟁은 저수지와 상수도, 정수 시설까지 무자비하게 타격을 입혔다. 물 공급망이 흔들리면서 일부 지역에서는 식수 확보 자체가 어려워졌고, 이는 단순한 불편을 넘어 생존의 위기로 이어진다. 물 부족은 사회적 불안으로 번지며 시위와 갈등의 원인이 된다. 이곳에서 물은 환경 자원을 넘어 국가 안정과 직결된 전략 자산, 곧 보이지 않는 ‘안보’가 되었다. 물은 배경이 아니라 정치와 생존, 권력의 중심으로 이동했다. 어떤 곳에서는 ‘건물을 마시는’ 예술적 경험을 이야기하지만, 다른 곳에서는 마실 물조차 사라지고 있다.
2002년 스위스 엑스포에서 공개된 ‘블러 빌딩(The Blur Building)’은 물을 구조와 공간의 핵심으로 삼은 실험적 건축이다. 호수 위에 설치된 이 구조물은 미세한 수증기를 뿜어내며 멀리서 보면 거대한 구름처럼 보인다. 건물의 외형은 흐릿해지고, 관람객은 안개 속을 걸으며 온몸으로 공간을 느낀다. 이 곳에서 물은 벽이자 공기이며 감각 그 자체다. 건물의 장소이자 구조적 재료일 뿐만 아니라, 미식적 즐거움의 상징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사람들은 수증기를 호흡하며 건축을 체험하고, 말 그대로 ‘건물을 마신다.’

이 실험은 단순한 설치작품을 넘어 건축과 예술의 경계를 허물고, 물의 존재 방식을 새롭게 구성한다. 물을 자원으로만 보는 관점을 넘어, 경험과 존재의 매개로 전환하는 사건이다. 물이 형태를 잃을 때 오히려 더 강력한 공간이 만들어진다는 역설은, 오늘날 물 부족 현실과 묘하게 대비된다. 어떤 지역에서는 물이 예술이 되고, 감각이 되지만, 이란과 같은 곳에서는 생존을 위협하는 희소 자원이 된다. 이 대비는 질문을 남긴다. 물이 풍부하게 활용될 수 있는 조건은 어디에서 오는가, 그리고 그 조건이 사라지면 우리는 무엇을 잃게 되는가.
딜러 스코피디오 + 렌프로의 또 다른 프로젝트 ‘캐널 카페(Canal Cafe)’는 이러한 문제의식을 더욱 직접적으로 드러낸다. 2025년 베니스 건축 비엔날레에서 황금사자상을 수상한 이 설치작업은, 베니스 운하의 물을 현장에서 정화해 커피로 제공한다. 베니스 운하의 전시공간에서 필자가 이 ‘예술적 에스프레소’를 직접 마셔보았다. 처음에는 놀라움과 당혹감이 동시에 밀려왔다. 오염된 물을 마신다는 발상은 불쾌감을 불러일으킨다. 도시의 더럽혀진 혈관이 우리의 입으로 들어오는 순간, 감각은 쾌락이 아니라 질문으로 전환된다. “정말 그 물로 만든 커피를 마실 수 있다고?” 바로 이 지점에서 프로젝트의 의미가 시작된다.

매일 아침, 우리가 습관적으로 마시는 커피 한 잔은 이제 단순한 일상이 아니다. 그것은 물, 농업, 토양, 에너지, 물류, 기후, 도시 인프라가 얽힌 복잡한 시스템의 집약체다. 한 잔의 에스프레소는 단순한 음료가 아니라, 생태와 기술, 인간의 선택과 가치가 응축된 결과물이다. 커피 문화의 지속 가능성은 곧 물의 지속 가능성과 연결된다. 하지만 기후 변화와 전쟁이 얽힌 오늘날, 이 시스템은 점점 더 불안정해진다.
물이 전쟁 무기처럼 작동하는 세상에서는 한 잔의 커피조차 안정적인 일상이 되기 어렵다. 한국 역시 이 문제에서 자유롭지 않다. 고종이 러시아 공사관에서 처음 커피를 접한 이후, 한국은 빠르
게 커피 문화를 발전시켜왔다. 손탁 호텔의 카페, 전쟁 이후의 인스턴트 커피, 그리고 오늘날의 대형 프랜차이즈까지, 커피는 일상의 일부가 되었지만 이는 물이 항상 충분하고 깨끗하게 공급된다는 전제 위에서만 가능했다. 전 세계적으로 약 20억 명이 오염된 물을 마시며 질병과 생태계 붕괴를 겪고 있다. 한국에서도 녹조, 질산성 질소 오염, 산업단지 주변 중금속 문제가 지속되며, 이는 물 관리의 취약성을 드러낸다. 물 위기는 국경을 넘어 서로 연결되어 있다.
철학자 이반 일리치는 『H₂O와 물: 망각의 물들에 관하여』에서, 현대 사회에서 물이 단순한 화학물질로 환원되었다고 지적한다. 과거 물은 세례, 정화, 장례 등 삶과 죽음을 잇는 관계의 매개였고, 기억과 상징, 공동체를 담고 있었다. 그러나 오늘날 물은 오염 농도와 처리 효율, 안전 등급으로 평가되는 대상으로 전락했다. 우리는 물의 의미를 잃어버렸고, 더 이상 그것을 감각으로 경험하지 않는다.
이 변화는 단순한 기능의 변화가 아니다. 그것은 감각의 상실이다. 기술이 고도 정수 시스템과 스마트 수질 관리 같은 해결책을 제시하지만, 인간과 물의 관계를 복원하지는 못한다. 우리는 물을 더 효율적으로 분배하지만, 물과의 거리는 더 멀어진다. 물은 여전히 대상이고, 인간은 소비자다.
그래서 지금 필요한 것은 더 나은 기술이 아니라, 근본적인 인식의 전환이다. 물을 다시 느끼고, 다시 질문하며, 커피 한 잔을 단순한 습관이 아니라 하나의 사건으로 받아들이는 감각적 전환이다.
이제 우리는 커피 한 잔을 다시 바라봐야 한다. 그것은 단순한 음료가 아니라, 생태와 기술, 정치와 생존이 교차하는 지점이다. 정부의 기술적 대응만으로는 충분하지 않으며, 결국 인간의 태도와 선택이 중요하다. 친환경 세제 사용, 플라스틱 절감, 수질 감시 참여, 환경 교육 확대 같은 일상과 실천이 함께해야 한다. 물 관리는 환경 보호를 넘어 삶과 미래를 지키는 문제다.
특히 이란의 사례는 물이 사라질 때 사회가 어떻게 흔들리는지를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물로 둘러싸인 베니스에서도, 삼면이 바다인 한국에서도, 물이 사라지는 이란에서도 우리는 같은 질문 앞에 서 있다.
물은 더 이상 배경이 아니다. 그것은 생명이며, 문화이고, 동시에 권력이다. 이제 우리는 물을 다시 이해하고 기억하며, 책임 있게 공존할 방법을 찾아야 한다. 물은 생명이다. 물은 문화다. 그리고 지금, 물은 권력이며 갈등의 중심이다.
이제 질문은 다시 돌아온다. 물은 정말 사라지고 있는가, 아니면 우리가 물을 잊어버린 것인가.
![[이경화의 하이브리드 美MI]](https://img2.daumcdn.net/thumb/R658x0.q70/?fname=https://t1.daumcdn.net/news/202604/08/seouleconomy/20260408193841624oruf.jpg)
서경IN skin@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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