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활절에, 시설 밖의 삶을 묻다 [김예원의 다른 시선]
장애인권법센터 김예원 변호사가 '김예원의 다른 시선'을 연재합니다. 너무나 당연하다고 생각해 의심하지 않았던 상식에 물음표를 던져 보고, 목소리 큰 이들 뒤에 가려진 사람과 사연을 김 변호사만의 따뜻하고 날카로운 시선으로 길어 올립니다. 우리 사회 다양한 이슈를 새롭게 읽어 낼 이번 연재는 매월 2번째 수요일에 찾아갑니다.

수년 전, 제주도에 출장을 갔던 날들이 아직도 생생하다. 국가인권위원회 실태 조사를 위해 장애인 시설 여럿을 들렀다. 하루 종일 봉고차를 타고 중증 장애인 거주 시설과 정신 요양 시설을 돌며 사람들을 만나 수십 개 문항을 묻다 보니, 숙소에 돌아오면 머리만 닿아도 이상하리만치 깊은 잠에 곯아떨어지곤 했다. 출장에서 돌아오고 나서야 뱃속에 셋째 아이가 자라고 있다는 사실을 알았다. 돌이켜 보면 그 무렵 유난한 피로는 임신 때문만은 아니었다. 시설 안에서 마주한 삶의 무게와, 한 사람 한 사람의 고단한 시간이 내 안에 깊이 가라앉았기 때문이기도 했다.
"그런 말은 처음 들어봐요."
어떤 사람에게 자유를 빼앗는 가장 강력한 방법은, 자유를 상상할 수조차 없는 상황에 그 사람을 놓는 것일지도 모른다. 그의 갸우뚱한 표정은 내게 한국 사회의 시설 수용 현실을 아프게 이해하게 만든 장면이었다.
그 조사는 2018년 국가인권위원회 '중증·정신장애인 시설 생활인에 대한 실태 조사'로 공개되었다. 정신 요양 시설 거주인의 36.2%는 20년 이상 시설에서 살고 있었고, 중증 장애인 거주 시설에서도 24.9%가 20년 이상 장기 거주자였다. 입소 역시 상당수가 비자발적이었다. 더욱 충격적인 것은 정신 요양 시설 거주인의 34.5%가 자신이 퇴소할 수 있다는 사실 자체를 인지하지 못했다는 점이다. 본인의 퇴소를 누가 결정하느냐는 질문에 가족이나 시설장이라고 답한 비율도 높았다. 많은 이들이 너무 오랫동안, 자신의 의사와 무관하게 시설에 묶여 살고 있었다.
그로부터 여러 해가 지났지만, 지금이라고 크게 달라졌다고 말하기는 어렵다. 아직도 많은 장애인이 시설에서 살고 있다. 막상 시설을 나와 지역사회에서 살아가려 해도, 집은 어떻게 구할지, 누가 일상을 도울지, 일을 하고 싶으면 무엇부터 시작할지 함께 고민하고 연결해 주는 제도가 빈약하다. 교회 안도 크게 다르지 않다. 장애인을 같은 성도로 만나기보다, 돌봄과 선의의 대상으로 먼저 바라보는 시선이 여전히 남아 있다.
부활절이 막 지났다. 교회는 해마다 부활절이면 달걀을 삶아 나눈다. 단단한 껍데기 안에 있던 생명이 밖으로 나온다는 뜻에서, 달걀은 오래도록 새 생명과 부활의 상징으로 여겨져 왔다. 올해 부활절 달걀을 집으며 문득 제주도에서 만났던 그 청년이 생각났다. 시설 밖에서 살아 본다는 것이 자기 삶에도 가능한 일일 수 있다는 생각조차 해 본 적 없던 그는 지금 어떻게 살고 있을까. 장애인에게 탈시설은 단순히 사는 곳을 옮기는 일이 아니다. 지금까지와는 다른 삶의 가능성이 열리는 일이다. 닫혀 있던 삶에 틈이 생기고, 한 번도 자기 몫이라고 여길 수 없었던 삶의 가능성이 열리는 일, 그것 또한 부활의 의미가 드러나는 순간일 것이다.
이 점에서 지난 3월 말, 국회 법제사법위원회를 통과해 본회의 심의를 앞두고 있는 장애인권리보장법안은 적지 않은 의미를 가진다. 이 법안은 장애를 개인의 손상만이 아니라 사회의 문화적, 물리적, 제도적 장벽과의 상호작용 속에서 이해한다. 국가와 지방자치단체의 책임을 분명히 하며, 존엄권·평등권·자기결정권 등을 기본적 권리로 규정한다. 특히 제19조는 장애인이 지역사회에서 자립적으로 생활할 권리를 가지며, 개인의 선택과 자유를 제한하는 환경에서 벗어나도록 하는 탈시설화 지원을 받을 수 있다고 명시하고 있다. 법률의 이름으로, 장애인의 삶은 더 이상 시설 수용을 전제로 해서는 안 된다고 선언하는 셈이다.
물론 법 하나로 현실이 단숨에 바뀌지는 않을 것이다. 주거와 돌봄의 공백, 가족에게만 부담을 떠넘겨 온 정책의 한계가 하루아침에 사라지기는 어려우니 말이다. 그러나 법은 우리 사회가 어디로 나아갈지 방향을 정한다. 그 과정에서 누가 어떤 책임을 지는지도 담고 있다.

김예원 / 변호사, 장애인권법센터
김예원 newsnjoy@newsnjoy.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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