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르무즈 통행료 체계 굳어지나…美·이란 '공동징수' 가능성 [이상은의 워싱턴나우]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이란의 “문명 파괴”를 예고한 7일 오후 8시(미국 동부시간 기준)가 되기 88분 전 극적으로 2주 휴전 협상이 타결됐다. 세계 경제를 압박해 온 호르무즈 해협의 항행이 재개될 수 있는 1차 여건이 마련됐다.
해협을 언제부터 어떤 식으로 열게 될 것인지에 대한 구체적인 내용은 아직 공개되지 않았지만, 이날 공개된 내용을 종합하면 미국과 이란은 이 해협을 지나는 선박에 통행세를 받겠다는 구상에 기본적으로 합의한 것으로 해석된다. 이는 한국 등 중동 지역에서 에너지를 조달하는 국가에 큰 부담을 안길 수 있는 부분이다.
○‘관리비’ 체제 굳어질라
압바스 아라그치 이란 외무장관은 이날 성명에서 휴전 협상이 진행되는 2주 동안 “이란 군과의 협조 및 기술적 제한 사항을 고려하는 조건” 하에 호르무즈 해협의 “안전한 항행”이 가능하다고 밝히면서 통행세에 관해서는 언급하지 않았다.
그러나 트럼프 대통령이 SNS에 올린 글의 뉘앙스는 다르다. 그는 “미국은 호르무즈 해협의 통행 혼잡 해소를 지원할 것”이라면서 “큰 돈을 벌 것”이라고 했다. 이란이 재건을 시작할 수 있고, 중동의 황금시대가 열릴 것이라고도 표현했다. 미국이 통행세를 걷는다고 표현하지는 않았지만 이란과 함께 일정 비용을 받을 가능성을 시사하는 대목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 6일 기자회견에서도 “차라리 우리가 통행료를 부과하는 게 어떻겠느냐”면서 “우리가 통행료를 징수하는 구상을 가지고 있다”고 했다.
AP통신은 협상에 관여한 역내 관계자를 인용해 이란과 미국이 동의한 2주간의 휴전 계획에 호르무즈 해협 통과 선박에 대한 통행료 부과 계획이 포함되어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고 보도했다. 해당 관계자에 따르면 이란은 징수한 통행료를 전후 재건 비용으로 사용할 계획이며, 오만의 사용 목적은 아직 명확히 알려지지 않았다.
호르무즈 해협은 오만과 이란 양국의 영해에 걸쳐 있다. 이 해협은 입항을 할 때는 이란 쪽 해역을 이용하고 아라비아 해로 나올 때는 오만의 무산담 곶에 가깝게 항행한다. 이란이 오만과 통행료를 나누겠다고 하는 것은 이런 이유에서다.
하지만 유엔해양법협약(UNCLOS)은 국제 항행에 사용되는 해협에서 통과통항권을 보장하고 있다. 연안국이 통행료를 부과하는 것은 원칙적으로 금지된다. 호르무즈 해협도 그동안 국제 수로로서 통행료가 부과되지 않았다. 미국과 이란이 이 지역에 대한 통행료 부과에 합의할 경우, 세계 각국의 다른 주요 해협에도 잇달아 비슷한 관리비 명목의 제도가 도입될 수 있다. 중동 국가들이나 한국 등 수입국가들이 이런 체제를 쉽게 받아들이기 어려운 배경이다.

○협상조건 온도차 커
2주간의 협상 기간이 예정돼 있지만, 종전에 이르는 길은 ‘좁은 문’이다. 이란 측 10개 항에 포함된 역내 미군기지 철수와 이란 대리세력(하마스·헤즈볼라 등)에 대한 공격 중단은 쉽게 약속되기 어려운 부분이다. 특히 대리세력 공격 중단은 이스라엘의 의지가 필요하다. 이스라엘은 일단 이날 휴전에 참여하기로 했으나 종전을 원하지 않고 있다. 미국도 이스라엘을 통제하지 못한다는 평가가 지배적이다. 역내 미군기지 철수는 걸프지역 국가들이 그만큼 안보 부담을 져야 하는 문제다.
또 이란 내 강경파와 온건파(협상파) 간에는 호르무즈 해협 통제의 수준과 우라늄 농축 허용의 수준에 대한 기대치가 상당히 다른 것으로 추정된다. 이란 메흐르통신이 전한 이란 최고국가안전보장회의 성명서는 이번 협상이 “미국에 대한 완전한 불신 속에 시작될 것”이라면서 “우리의 손은 방아쇠 위에 있으며, 적이 조금이라도 실수하면 전력으로 대응할 것”이라는 강경한 톤을 유지했다. 아울러 해협 통제를 지속하고 핵 농축을 미국이 수용하기로 했다고 주장했다. 미국은 이런 주장이 ‘가짜뉴스’라고 일축하고 있다.
이란의 다른 반관영매체 파르스통신은 10개 항에 대해서 보다 현실적인 톤으로 보도했다. 파르스통신은 협상에 참여한 관계자를 인용해 이란이 핵무기를 개발하지 않겠다고 약속하는 대신 미국도 이란의 우라늄 농축 권리를 일부 인정하는 내용이 10개 항에 들어 있다고 전했다. 이란은 이번 합의 내용 전체를 유엔 공식 결의안으로 채택해 국제법상 구속력을 부여해달라고 요청한 것으로 알려졌다.
파르스통신은 이란이 역내 국가들과 양자 및 다자 평화협정을 맺기 위한 협상을 추진한다고 전했다. 이는 협상을 이끌고 있는 재러드 쿠슈너(트럼프 대통령의 맏사위)가 트럼프 1기 정부에서 추진한 ‘아브라함 협정’의 후속작이 될 수 있다. 2020년에 체결된 아브라함 협정은 이스라엘이 서안 합병을 중단하고, 아랍에미리트연합(UAE) 바레인 등 아랍 국가들은 이스라엘과 관계를 정상화하는 내용을 골자로 하고 있다.
미국이 더 이상 전쟁을 지속하고자 하는 의지가 강하지 않다는 점은 긍정적인 변수다. 이란이 상당한 양보를 얻어내면서 상황이 마무리될 가능성도 있다. 이 경우 트럼프 대통령이 결과적으로 준비 없이 전쟁을 시작했다가 이란에 ‘퍼주기’를 하고 끝냈다는 비판은 피하기 어려울 전망이다.

워싱턴=이상은 특파원 selee@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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