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 시대, 인간을 지킬 마지막 요소가 문화예술교육”
“문화와 예술, 인문이 결합한 사업 적극 펼칠 것”

“에이아이(AI)를 활용해 효율성을 높이는 시대가 왔지만, 기술 속도가 인간의 통제 범위를 앞지르기 시작했습니다. 이제 에이아이로 인한 인간 존재의 위기를 어떻게 방어하느냐의 문제가 교육의 긴급한 과제가 됐고, 문화예술교육이야말로 끝내 남아서 인간의 존재를 지켜낼 마지막 요소라고 생각합니다.”
지난 1일 취임 100일을 맞은 임진택 한국문화예술교육진흥원(이하 진흥원) 원장은 문화예술교육의 의미를 이렇게 설명했다. 인공지능 기술이 급속히 발전하는 시대, 문화예술은 더 이상 ‘취미’나 ‘향유’의 영역이 아니라, 인간의 주체성과 공동체 감각을 지탱하는 기반이라는 의미다.
임 원장은 연극 연출가이자 판소리 명창으로, 1998년 옥관문화훈장을 받은 예술인이다. 50년 넘게 공연 연출과 예술감독으로 활동해온 그는 경기아트센터 이사장도 지냈다.
지난 3일 서울 마포구 상암동 진흥원에서 만난 그는 현시대를 “문명사적 전환기”라고 규정했다. 그러면서 과학 기술 발전이 인간의 삶을 획기적으로 바꿔왔지만, 그것이 곧 인간의 행복으로 이어지지 않았다고 진단했다. 그는 최근 세계 곳곳에서 벌어지는 전쟁 상황을 언급하며 “과학의 말로가 전쟁이라고 말할 수 있을 정도”라며 “이런 때일수록 몸과 마음이 함께 작동하는 문화예술 경험을 통해 인간이 자기 주체성과 타인과의 공감, 치유의 감각과 공동체성을 회복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가 특히 강조한 것은 “인간 스스로 질문하는 힘”이다. 임 원장은 “문화예술교육은 창작의 경험 과정에서 자기 질문을 갖게 하고, 스스로 사유할 수 있는 힘을 기르는 데 도움을 준다”고 말했다.
2005년 문화예술교육지원법에 근거해 설립된 진흥원은 올해 21주년을 맞았다. 임 원장은 향후 임기 3년 동안의 방향으로 “성장에서 성숙으로의 전환”을 제시했다.
“지난 20년이 성장의 시간이었다면, 이제는 성숙의 단계로 가야 합니다. 올해는 새로운 20년의 시작점인 것이죠. 진흥원의 다양한 사업들을 ‘씨줄과 날줄’로 체계화할 필요가 있다고 봤습니다.”
그는 생애주기별 문화예술교육을 씨줄, 생활밀착형 문화예술교육을 날줄로 제시했다. 한 개인의 삶 전체에서, 그리고 일상 공간 속에서 동시대인들과 함께 누구나 문화예술 경험을 할 수 있도록 하겠다는 구상이다. ‘꿈다락 문화예술학교’처럼 생애주기 특성을 반영한 프로그램이 씨줄이라면, 가족센터·공동육아나눔터 등 생활권 내에서 가족 및 세대 간 이해와 소통 활성화를 위한 ‘가가호호’ 프로그램은 날줄에 해당한다.
임 원장은 인터뷰 내내 ‘문화’라는 단어를 많이 사용했다. 그동안 진흥원이 ‘예술 교육’ 중심으로 사업을 추진해왔다면, 앞으로는 ‘문화’와 ‘예술’, 나아가 ‘인문’이 결합된 방향으로 나아가야 한다고 보기 때문이다. 이를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사업이 올해 진흥원이 전담 기관으로 지정된 약 230억원 규모의 인문정신문화확산 사업이다.
“그동안 문화예술교육에서 예술 장르적 특성을 강조해왔는데, 이제는 예술적 기제와 함께 ‘인문’이 사람의 몸에 체험되고 체현되는 그런 시대가 되어야 합니다. 말, 지식, 학식으로서의 예술이 아니라, 나의 몸으로 느끼고 예술을 함께 하는 ‘문화의 시대’가 되어야 합니다.”
진흥원은 앞으로 ‘전 국민 회고록 쓰기’ 사업도 추진할 계획이다. 지역 소멸 위기 속에서 사라져가는 지역의 생활과 역사를 기록으로 담아내려는 시도다. 그는 “시간이 지나면 사람은 남아도 그 지역의 인문 역사가 소멸해버릴 수 있다”며 “문화예술의 힘으로 개인의 서사와 지역의 역사를 엮어내는 작업이 필요하다”고 밝혔다. 올해는 어르신 50명을 선정하고 청년 작가들과 매칭해 생애사 인터뷰 및 회고록 집필을 추진할 계획이다.
국제 협력도 강화할 방침이다. 임 원장은 “문화다양성은 이제 이주민 문제 등 국내 문제에만 그치지 않는다”며 유네스코 등 국제기구와의 협력을 확대하겠다고 밝혔다. 지난 15년간 추진해온 개발도상국 대상 문화예술교육 공적개발원조(ODA) 사업도 적극적으로 펼칠 계획이다.
문화예술교육 정책의 체감도가 낮다는 지적에 대해 그는 “현실일 것”이라고 인정했다. 그동안 진흥원이 학교 예술 강사 지원 등 공교육 지원과 문화적 소외계층 지원에 우선 순위를 둬왔기 때문에, 일반 국민이 체감하기 어려웠을 수도 있다는 설명이다.
“본부장들과 함께 현장을 다니며 사람들을 만나고 사업이 실제 어떻게 진행되는지 직접 보려고 합니다. 현장을 보고 컨설팅부터 평가, 모니터링, 평가 자문까지 하는 멘토단을 구성해서 더 면밀히 점검하려 합니다.”
생활한복 차림으로 인터뷰 자리에 나온 그는 ‘현장성’과 함께 ‘몸으로 느끼는 문화예술’을 거듭 강조했다. 그는 “이제는 문화의 형식이 아니라 내용이 무엇이어야 하는가를 얘기해야 한다”며 “창조자와 향유자가 만나 하나가 되는 큰 틀의 만남이 될 수 있도록 진흥원이 나서겠다”고 말했다.



양선아 기자 anmadan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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