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구·박근형이 뿌린 씨앗, 젊은 연극 세편으로 열매

젊은 남녀 10명이 기이한 몸짓을 반복한다. 뭔가 찢고 벗어나려는 듯 끊임없이 뒹굴고, 기고, 비틀고, 갈구하듯 두 팔을 뻗어 올린다. 한편의 행위예술이라 생각할 때쯤 대사를 내뱉는다. “애들 몸이 커지고 있어.” “하와의 말에 따르면 우리는 자라면 안 되는데….” “골격 팽창, 원인 알 수 없음. 시스템 오류.”
지난 7일 서울 종로구 동숭동 대학로예술극장 지하 1층 연습실. 인공지능 ‘하와’가 주관하는 시설에 사는 아이들의 생존과 연대를 다룬 연극 ‘피르다우스’(류사라 작·연출) 연습 공개 현장이다. 젊은이들을 지켜보는 원로 배우 신구(90)와 박근형(86)의 얼굴엔 미소가 번졌다. 박근형은 칭찬을 쏟아냈다. “저희 땐 이런 교육기관도, 책도 없었다. 직접 무대 올라가 경험하던 세대다. 행동이 곧 연극이라고 배우면서도 (실천을) 못 하고 있었는데, 오늘 배우들의 움직임을 보면서 저런 움직임을 가져야 사람 마음에 와닿을 수 있겠다 싶었다. 정말 부러웠다.” 신구는 첫 무대에 대한 두려움과 기대를 갖고 있을 후배들을 다독였다. “1962년 ‘소’로 무대에 올랐는데 당시엔 어떻게 해냈는지 기억도 안 날 정도로 당황하고 옆도 보이지 않았던 경험이 있다. 젊은이들이 우리보다 훨씬 나은 환경에서 연극을 접하는 기회가 생긴 것 같아 고맙다.”

이날 연습 현장은 두 배우가 뿌린 씨앗이 열매를 맺고, 숙성되고 있다는 걸 널리 알리는 자리였다. “청년 연극인을 위한 씨앗을 뿌리자”고 의기투합한 두 배우는 지난해 3월 연극 ‘고도를 기다리며’ 특별 기부 공연을 통해 마련한 수익금으로 ‘연극내일기금’을 만들었다. 이들의 뜻을 받아 한국문화예술위원회는 ‘2026 연극내일 프로젝트’를 시작했다. 청년 연극배우를 선발해 훈련, 창작, 공연 제작 전 과정을 경험하고 차세대 연극인으로 성장할 수 있도록 지원하는 프로그램이다. 지난해 말 공개 오디션을 통해 지원자 1천명 가운데 30명을 선발해 4개월 동안 교육과 연습을 이어왔다. 젊은 연출가 오세혁·강훈구·류사라 등이 작품 창작, 배우 교육, 연출 전반에 힘을 보탰다. 이날 연습실에선 그 성과물인 창작 연극 3편이 공개됐다. ‘피르다우스’를 비롯해 인천 뒷골목 18살 소년 철주의 결핍과 생존을 그린 ‘탠덤’(강훈구 작, 김남언 연출), 1980년 시계공장을 배경으로 광신과 권력의 결탁 구조를 다룬 ‘여왕의 탄생’(이민구 작·연출)이다. 30명의 배우가 작품마다 10명씩 고르게 배치됐다.

무대에 설 기회를 얻은 청년 배우들은 신구·박근형에게 감사의 마음을 전했다. ‘탠덤’을 통해 무대에 오르는 안승균은 “혼자 작업을 하면서 고통스럽고 정말 많이 위축됐는데, 함께 부딪히며 작업할 수 있어 행복하다. 두 선생님께 감사드린다”고 했다. ‘피르다우스’에 출연한 김양균은 “기존에 저는 ‘연기, 연기’ 이런 생각을 했는데, 왜 연극을 해야 할까, 무엇을 어떻게 효과적으로 전달할까를 동료들과 고민하면서 생각의 깊이가 생겼다”고 했다.
신구는 “연극은 사람의 일이고, 우리들의 이야기고, 관계에서 일어나는 여러 가지 일을 표현하는 일이다. 그 표현이 정직해야 한다. 그걸 놓치면 다 허사가 된다”며 진실을 담는 노력을 강조했다. 박근형은 1958년 ‘꽃잎을 먹고 사는 기관차’로 연극 무대에 데뷔한 뒤 배를 곯던 시절을 회상하며 후배들에게 마음을 다잡으라고 조언했다. “그 시절을 생각하면 눈물겹다. 저희도 겪었지만 이 일(연극)이 생활 어려운 건 각오해야 한다.”

두 원로 배우는 추가 기부 계획도 밝혔다. 박근형은 “오늘 첫번째 조그만 열매를 맺었다. 작가, 연출가, 배우에게 고맙다”며 “가만히 있을 수 없어 신구 선생님과 7월 큰 공연 ‘베니스의 상인’을 준비하고 있다. 큰일 한번 더 저지르려 한다”고 했다. 신구는 “이번으로 끝나지 않고 이제 시작하는 여러분의 도움을 받아 (이 프로젝트가) 계속 이어졌으면 하는 바람”이라며 후배들이 역량을 꽃피워 뜻을 이어가기를 희망했다.
청년 배우들이 만든 세 작품은 오는 24~26일 동숭동 아르코꿈밭극장에서 관객과 만난다. 공연 수익금은 전액 ‘연극내일기금’에 기부할 계획이라고 한다.

신승근 기자 skshin@hani.co.kr
Copyright © 한겨레신문사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 재배포, AI 학습 및 활용 금지
- 박성웅 “이종호, 임성근에 ‘우리 장군님’ 포옹…친해 보였다”
- 트럼프 ‘문명 파괴’ 발언 파장…“1억명 학살 위협” 퇴진 요구 확산
- 트럼프 ‘문명 파괴’ 발언 파장…“1억명 학살 위협” 퇴진 요구 확산
- 8년 전엔 퓨마, 이번엔 늑대 탈출…대전 동물원 관리 부실 ‘도마’
- 진보를 위한 주식투자는 가능할까 [안선희 칼럼]
- ‘지옥문’ 열리기 88분 전 휴전…미·이란 종전까지 산 넘어 산
- [단독] 윤석열 내란재판만 지연되나…‘3개월 내 선고’ 적용 안 돼
- “장동혁 가장 걸림돌” 국힘 내 퇴진론 분출…내홍 속 다음주 방미
- 민주당 지도부 대구 총출동…“김부겸은 제2의 이재명·노무현”
- ‘장모 살해 뒤 캐리어 유기’ 사위 신상 공개…26살 조재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