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포] "여러분 신용이 한국 미래"…김은경 위원장의 '뼈 때리는' 군부대 금융 수업

김남희 기자 2026. 4. 8. 14: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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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의 대학 첫사랑 이야기로 금융 수업 포문 열어
"獨유학 거쳐 상법교수 되기까지 성실·신용 필요"
"금융 문제 생기면 신용회복위원회 문 두드리세요"
[출처= 신복위 제공]

[화성시(경기도)=김남희 기자] "여러분 세대는 130살까지 살 수 있다는 거 아세요? 지금부터 저축과 자금 운용을 잘해야 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 있습니다. 돈을 빌리고 안 갚으면 지옥 간다는 말 있죠. 법적으로 보면 그건 '지옥'의 문제가 아니라 여러분의 '미래'가 통째로 잠기는 문제입니다."

단상에 선 김은경 신용회복위원장의 목소리가 울려퍼졌다. 7일 화성시 오후 춘곤증이 몰려올 법한 시간이었지만 강당을 가득 메운 80명의 장병들의 눈빛은 예사롭지 않았다. 금융과 신용이라는 자칫 딱딱할 수 있는 주제를 들고 온 김 위원장은 이론 대신 자신의 '첫사랑' 이야기로 포문을 열었다. 
[출처=EBN 김남희 기자 ]

◆대학 시절 첫사랑의 기억에서 법학자로, 신용회복위원장으로

김 위원장은 1984년 대학 시절, 강의실 뒤편에 앉아 있던 단정한 옷차림의 한 남자에게 마음을 빼앗겼던 기억을 소환했다. 그는 알고 보니 위탁 교육을 받던 장교였다. "그때부터였어요. 제복 입은 남자에 대해서는 무조건 점수가 가는 게." 청중석의 장병 얼굴에 미소가 번졌다.

비록 그 첫사랑은 이루어지지 않았고, 그 상처로 대학 자퇴까지 결심하며 3일간 단식 투쟁을 벌이기도 했지만, 그 열정은 김 위원장을 법학의 길로 이끌었다.

독일 유학을 거쳐 상법 교수가 되기까지, 그녀를 지탱한 것은 '하고 싶은 일을 위해 꾸준히 노력하는 자세'였다. 제복 입은 장병들에게 보내는 그녀의 애정 어린 시선에는 그럴만한 이유가 있던 것이다. 
7일 금융 강의를 듣고 있는 장병들. [출처=신복위 ]

◆'베니스의 상인'으로 풀어본 금융과 계약의 민낯

그러면서 김 위원장은 군부대 강연을 자처했다고 말했다. 그는 "저는 아들만 둘을 키운 '아들 엄마'"라면서 "군대에 와 있는 청년들이 남 같지 않고, 내 자식 같아서 꼭 직접 와서 이야기해주고 싶었다"고 했다. 김 위원장은 이어 장병들이 사회에 나가기 전 반드시 갖춰야 할 '금융 근육'에 대해 조목조목 짚어 나갔다.

분위기가 무르익자 강의는 본격적인 금융과 법률 이야기로 접어들었다. 셰익스피어의 '베니스의 상인'이 교재가 됐다. 퀴즈를 섞어가며 진행된 강의에서 장병들은 주인공 안토니오와 바사니오의 관계를 통해 '무상 소비대차'의 개념을 배웠고, 샤일록의 계약을 통해 '인적 담보'와 '민사 재판'의 원리를 깨우쳤다. 

"당시 베니스는 최대 상업도시였는데 돈을 빌리고 갚는 과정에서 신체를 담보로 잡을 만큼, 금융 거래는 무서운 약속입니다." 김 위원장은 뼈 있는 조언을 던졌다.

특히 최근 군 내부에서도 문제가 되는 사이버 도박이나 무리한 투자를 경계할 것을 당부하며 김 위원장은 "여러분은 월급을 적절하게 저축, 투자하면서 자신의 신용 가치를 높이는 데 집중해야 합니다."고 강조했다.
[출처=EBN 김남희 기자 ]

◆신용은 '보이지 않는 돈'이자 '약속을 지킬 수 있다'는 믿음

강의 핵심은 '신용(Credit)'이었다. 신용은 돈을 갚을 능력과 의지가 있다는 믿음이 전제되어야 성립된다. 김 위원장은 독일 유학 초기, 돈이 있어도 '신용'이 없어 통장을 개설하지 못했던 경험을 공유하며 신용의 냉혹한 현실을 일깨웠다.

김 위원장은 "신용은 약속을 지킬 수 있다는 믿음입니다. 휴대폰 요금을 밀리지 않고 자동이체를 잘하는 것, 신용카드를 하나 정해 꾸준히 쓰는 것. 이런 사소한 습관이 여러분의 신용 점수를 만듭니다."라고 강조했다.

현장에서 즉석으로 신용 거래 여부를 묻는 퀴즈가 진행되자 장병들은 손을 번쩍 들며 환호했다. 전기료, 수도료, 통신비 결제까지도 먼저 사용하고 비용을 내기 때문에 모두 신용 거래의 일종이라는 설명에 장병들은 고개를 끄덕였다. 
퀴즈를 맞춘 장병에게 경품을 증정하는 김은경 위원장. [출처=EBN 김남희 기자 ]

◆"금융 문제 생기면 신용회복위원회의 문을 두드리세요"

약 84분간 이어진 강의는 단순한 정보 전달을 넘어 인생의 선배로서 전하는 진심 어린 격려로 마무리됐다.

김 위원장은 "130살까지 살아야 할 여러분에게, 지금 1~2년의 고민은 아무것도 아닙니다. 혹시 길이 아니라고 느껴지면 언제든 돌아와 다시 시작하면 됩니다. 사랑 때문에 자퇴하려던 여학생도 지금 이 자리에 있습니다. 여러분도 군 생활 중에 혹은 인생에서 한두 번 넘어지는 건 아무것도 아닙니다"라고 장병들을 응원했다.
강의를 듣고 있는 군장병 [출처= 신복위]

끝으로 김 위원장은 "혹시라도 금융 문제가 생겨 감당하기 힘들다면 혼자 고민하지 말고 신용회복위원회의 문을 두드리세요. 그게 여러분의 인생을 지키는 가장 영리한 방법입니다."라고 조언했다.

강연장을 나서는 장병들의 손에는 위원장이 직접 준비한 소박한 선물과 함께, '신용'이라는 이름의 미래 자산이 묵직하게 들려 있었다. 제복 입은 청년들의 꿈을 응원하는 김 위원장의 행보는 앞으로도 전국 각지의 군부대로 이어질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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