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의 공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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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운 도시에 갈 때마다 들르는 곳이 있다. 공원이다. 공원은 그 자체로 근사한 관광지가 되어주지만, 도시만이 지닌 미감과 생활감이 가장 잘 묻어나는 곳이니까. 서울에도 공원이 있다. 2025년 기준 서울시의 크고 작은 공원을 모두 합치면 총 2982개라고 한다. 그중에서도 조금 다른 관점으로 소개하고 싶은 공원들이 있다. 일상 속 친근하게 찾던 동네 공원이지만, 그 안에 얽힌 이야기를 알고 나면 새롭게 보일 공원들. 그곳에 직접 가보기로 했다. 조선시대 충신들의 넋을 기리기 위해 만들어진 공원부터 국권 회복의 꿈을 품은 광복군이 착륙했던 자리에 세워진 공원까지, 여행객의 마음으로 공원을 돌며 사진을 찍었다. 그렇게 공원 열 곳을 모두 다녀왔을 때는 낯선 도시의 이방인이 된 듯한 기분이 들었다.

선유도공원
서울시 영등포구 선유로 343
선유도는 원래 섬이 아니었다. 선유도는 조선시대까지 '선유봉'이라고 불렸다. 오늘날 양화대교 남단의 한강공원과 붙어 있던 땅. 높이 52.5m의 봉우리는 주변 경관이 수려해 중국 사신들의 필수 관광 코스이자, 선비들이 배를 띄우고 시를 짓던 풍류의 땅이었다고 한다. 선유도는 20세기 들어 현재의 모습으로 바뀌기 시작했다. 역사서에 '을축년 홍수'로 기록된 1925년 물난리 당시 한강은 크게 범람했고, 선유봉에 둑을 두르며 섬이 됐다. 선유봉 인근은 바위 품질이 좋아 여의도 비행장을 만들던 시기 채석장으로 사용되었고, 1978년부터 2000년까지는 서울 서남부 지역에 수돗물을 공급하는 정수장으로 역할을 바꿨다. 2002년 4월 선유도공원은 국내 최초의 환경재생 생태공원으로 문을 열었다. 선유도공원 조경을 담당한 인물은 우리나라 최초의 여성 조경가인 정영선. 그는 정수장 시설을 살린 상태에서 공원을 만들고자 했는데, 지금도 공원 곳곳에는 옛 정수장 시설들이 남아 있다.


여의도공원
서울시 영등포구 여의공원로 68
여의도공원에는 비행기 한 대가 있다. 일제강점기 광복군이 운용한 C-47 수송기다. 여의도공원은 활주로와 격납고로 쓰이던 공간에 세워졌다. 그 시초는 1916년 일제가 만든 '제2경성비행장'. 여의도공원은 광복군 역사에서도 중요하다. 1945년 8월 18일 새벽, 중국 시안비행장에서 C-47 수송기는 미국 특공대(OSS)와 한국 광복군 특공대(정진대)를 태운 채 하늘로 떠올랐다. 작전명은 '독수리'. 해방 직후였지만 작전을 감수한 이유는 국권 회복 때문이었다. 광복군이 국내에서 일본군과 직접 전투를 벌이지 못한 채 전쟁이 끝났기에, 국제 사회에서 승전국으로 인정받기 어려웠다. 그래서 광복군 특공대원은 일본군과 전투를 벌일 각오로 여의도로 향했고, 실제로 착륙 후 일본군을 맞닥뜨렸다. 하지만 미군 책임자는 '미군 포로 안전과 광복 후 한국 상황을 알아보고자 하는 것'이었다며 상황을 정리했다. 그날 밤 일본군 장교 두 명은 광복군을 찾아와 맥주와 일본 술을 따라주며 항복 의사를 전했다고 한다. 해방 이후 활주로에선 여의도 주민이 자전거와 롤러스케이트를 탔다. 1997년 4월부터는 아스팔트를 걷고 숲을 조성해 지금의 여의도공원이 됐다. 공원 한쪽에는 여전히 롤러스케이트를 빌려주는 곳이 남아 있다.


보라매공원
서울시 동작구 여의대방로20길 33
보라매는 두 가지 뜻을 품고 있다. 태어난 지 1년이 안 됐을 때 길들여 사냥에 쓰는 매, 그리고 대한민국 공군이다. 보라매공원은 공군사관학교가 떠난 자리에 세워진 공원이다. 공군사관학교는 1949년 김포에서 '육군항공사관학교'로 출발해 첫 생도를 받았고, 1958년 12월 지금 보라매공원 자리에 서울캠퍼스를 지었다. 그후 1985년 지금의 청주캠퍼스로 이전하기 전까지 보라매공원은 공군의 요람이었다. 과거 연병장이었던 잔디밭 가장자리에는 트랙을 둘러 시민의 산책 코스로 이용되고 있다. 비행기도 남아 있다. 보라매공원 에어파크에서는 1971년 전남 소흑산도 간첩선 격침 임무를 마친 F-4D 전투기, 공군 에어쇼 팀의 주력 기종으로 운용된 T-33A 훈련기 등 여덟 대의 항공기를 볼 수 있다. 보라매공원에는 지금도 이런 글이 적혀 있다. '' '배우고 익혀서 몸과 마음을 조국과 하늘에 바친다'는 교훈 아래 조국영공수호의 주역인 보라매들의 꿈을 키우던 이곳에 공군사관학교의 역사와 전통이 영원히 기억될 수 있도록 그 자취를 남긴다."


사육신역사공원
서울시 동작구 노량진로 191
영화 <왕과 사는 남자>는 조선의 제6대 국왕, 단종의 이야기다. 숙부인 수양대군에게 왕위를 빼앗기고 유배지에서 삶을 마감해야 했던 어린 왕. 단종은 현재 강원도 영월에 잠들어 있지만, 서울에는 그를 모시던 충신들이 잠들어 있다. 사육신역사공원은 입구에 적혀 있듯 '조선 제6대 단종의 복위를 꾀하다 목숨을 바친 사육신을 모신 곳'이다. 하위지, 성삼문, 류성원, 이개, 유응부, 박팽년, 김문기. 단종 3년인 1455년, 이들은 마지막까지 단종 복위를 꾀했지만 실패하여 참혹한 고문 끝에 죽음을 맞았다. 그로부터 약 200년이 지난 숙종 7년(1681년) 사육신의 충심을 기리기 위한 서원을 이곳에 지었고, 정조 6년(1782)에는 사육신의 업적을 기리는 신도비를 세웠다. 서울시는 1978년 묘역을 확장해 지금의 사육신역사공원을 조성했다. 흥미로운 점은 사육신공원에 안치된 묘가 여섯 개가 아닌 일곱 개라는 점. 사육신과 함께 김문기를 인정하느냐에 대한 역사적 논란 때문인데, 해석은 여전히 분분하지만 가묘를 추가로 안치하는 데는 합의했다.


파리공원
서울시 양천구 목동동로 363
서울에도 에펠탑이 있다. 양천구 파리공원 이야기다. 목동2·3·5단지 아파트 사이에 터를 잡은 파리공원은 1986년 한불 수교 100주년을 기념해, 1987년 7월 1일 문을 연 공원이다. 당시 개원식에는 프랑스의 생시르 육군사관학교 생도들이 참석했다. 프랑스 역시 그 일환으로 서울광장을 만들었는데, 파리의 서울광장(Place de S.oul)은 파리 14구 몽파르나스역 근처에 자리하고 있다. 파리공원은 목동신시가지의 제2 근린공원을 새롭게 꾸며 완성됐다. 공원 내 서울광장 바닥에는 커다란 태극 문양이 새겨져 있으며, 파리광장에는 프랑스 양식의 화단이 조성되어 있다. 에펠탑을 둘러싼 산책로에는 파라솔을 마련해 피크닉 장소로 사용 중이다. 2022년에는 리노베이션을 거쳐 지금의 모습을 갖추었는데, 이듬해에는 '서울특별시 조경상' 대상을 수상했다. 참고로 파리공원은 드라마 제목으로도 쓰인 적이 있다. 1996년 목동 아파트 단지에 사는 가족들의 이야기를 그린 드라마 <파리공원의 아침>이다.


서울로7017
서울시 중구 청파로 432
서울에 고가도로가 처음 들어서기 시작한 것은 1960년대의 일. 1966년 당시 김현옥 서울시장은 빠르게 불어나는 교통량을 해결하기 위해 서울 시내 주요 도로를 정비했다. 서울역 앞 고가도로는 1970년 개통했다. 서울역을 비롯해 퇴계로, 청파로, 만리재로를 잇는 고가도로는 고속 경제성장 시기 서울의 상징물로 자리매김했다. 하지만 1990년대 들어 고가도로의 안정성 문제가 제기됐다. 철거하자는 의견도 있었지만 서울시는 도시재생 프로젝트 일환으로 이 도로를 공원화한다. 서울로7017이라는 이름에는 고개가 끄덕여지는 이야기가 녹아 있다. 1970년 지은 도로, 2017년 다시 태어난 도로, 높이 17m의 고가, 17개의 보행로와 연결된 길. 퇴계로부터 만리재로로 이어지는 1024m의 길에는 현재 200종이 넘는 꽃과 나무가 심어져 있다. 덕분에 도심 한복판에서 식물원을 거니는 기분을 느낄 수 있다. 특히 옛 서울역사를 끼고 내려다보는 풍경은 서울 시내에서도 가장 근사한 풍경을 연출한다.


낙성대공원
서울시 관악구 낙성대로 77
'별이 떨어진 곳'. 낙성대는 고려의 구국 영웅, 강감찬 장군이 태어난 곳이자 별이 떨어진 곳이라 하여 이름 붙은 지명이다. 낙성대에는 강감찬 장군의 공적을 기리기 위해 만든 낙성대공원이 있다. 공원을 거닐다 보면 자연스레 작은 사당으로 이어지는데, 이곳 안국사에는 강감찬 장군의 영정을 모시고 있다. 안국문을 지나면 가장 먼저 삼층석탑이 눈에 들어온다. 석탑은 고려 백성이 강감찬 장군의 공적을 찬양하며 세운 것으로, 서울시가 1974년 공원을 조성하면서 옮겨왔다. 사당은 관악산에 둘러싸여 있어 고요한데, 겨울에도 잎이 지지 않는 푸른 나무들이 서 있어 고즈넉한 분위기가 감돈다. 다시 안국문을 나오면 왼쪽에 커다란 자연석을 볼 수 있다. '落星垈.' 당시 박정희 대통령이 강감찬 장군을 나라 안보의 의표로 삼고자 하사한 휘호라고 한다. 역사적 의미를 차치하더라도 낙성대공원은 그 자체로 훌륭한 산책 코스다. 서울 외곽을 따라 조성된 '서울둘레길'과 이어지며, 안국사 앞에 펼쳐진 광장은 러닝 코스로도 훌륭하다.


삼일공원
서울시 동작구 사당로23길 93
삼일공원은 이번 기사에 소개한 공원 중 위치가 가장 독특했다. 공원은 사당동 대림아파트 단지 안에 있다. 입구에 표지판이 없었다면 아파트 단지 안의 녹지 정도로 생각했겠지만, 이곳은 우리 근현대사에서 중요한 의미를 품은 장소다. 이야기는 한 신문기자에게서 출발했다. 도쿄 일본여대를 중퇴하고 조선일보에 입사한 최은희 기자는 당시로선 전례가 없었던 여기자였다. 3·1운동에 참가했던 그녀는 훗날 '직접 일병의 총칼에 맞섰던 홍안의 소녀들이 이제는 귀가 멀고 눈이 어둡고 허리가 굽은 할머니가 되었으나 남은 기백을 다시 모아 망각 속에서 사그라져가는 그날의 분노와 저항을 되새기면서 쇠잔한 몸이지만 나머지 생애에서 무엇을 조국에 바칠 수 있을까'라는 마음으로 1967년 4월 15일 동아일보에 원고를 투고한다. 독립공원을 설립해야 한다는 것이 요지였다. 그 의지는 당시 박정희 대통령에게 전달됐고, 정부는 한 달 뒤 1967년 5월 15일 공원을 지정했다. 삼일공원은 1990년에야 완성됐고, 현재 공원 안에는 한국여기자협회가 기증한 유관순 열사 상이 있다.


영등포공원
서울시 영등포구 신길로 275
영등포역 뒤편에 위치한 영등포공원. 이름도 장소도 특별할 것 없어 보이는 이곳에는 독특하게 생긴 솥이 하나 있다. 맥주를 만드는 첫 단계에서 맥아와 홉을 끓이는 용도로 사용하는 담금솥이다. 영등포공원은 원래 공장터였다. 국내 최대 맥주 제조사 중 하나였던 OB맥주의 첫 공장이 있던 곳이 지금의 영등포공원이다. 1997년 OB맥주는 경기도 이천으로 자리를 옮긴 뒤, 서울시가 공원 녹지 확충 5개년 계획으로 부지를 매입한 후 1998년 공원으로 조성했다. 여담이지만 서울시는 기존 공장의 굴뚝을 남겨두려고 했지만, 안전상의 문제로 굴뚝 대신 영등포구의 상징목인 느티나무를 심었다고 한다. 영등포역 뒤편은 주거지역과 공장이 모여 있어 녹지가 절대적으로 부족했기에 영등포공원은 인근 주민에게 없어선 안 될 쉼터로 자리매김했다. 지금은 맨발로 거닐 수 있는 황톳길, 여름철 더위를 식히는 음악 분수, 여가 활동을 위한 풋살경기장과 배드민턴장 등이 마련되어 있다.


탑골공원
서울시 종로구 종로 99
탑골공원은 서울 최초의 근대 공원이다. 대한제국 초대 황제였던 고종은 1897년 서양식 공원을 조성하라는 명을 내린다. 그 명을 받든 이는 중앙행정기관의 고문을 맡은 영국인 브라운. 그는 조선 세조가 원각사를 건립하였던 장소를 1920년 공원으로 탈바꿈시킨다. 공원의 본래 이름은 파고다공원이었지만, 1992년 탑골공원으로 이름을 바꾼 뒤 지금까지 이어오고 있다. 탑골공원에서 가장 눈에 띄는 것은 높이 12m에 달하는 원각사지십층석탑. 일반적으로 우리나라 석탑은 화강암으로 만들었지만 대리석을 사용한 것이 특징이다. 대리석은 화강암보다 풍화가 빠른데, 서울시는 1999년 훼손을 막기 위해 높이 15.4m 유리벽을 둘렀다. 탑골공원 팔각정 옆에는 소나무 한 그루가 심어져 있다. 이는 <전국노래자랑> MC이자 대구광역시 달성군 명예 군민인 송해가 주선하여 옮겨온 달성소나무다. 한동안 탑골공원 인근은 노인들의 바둑판으로 유명했지만, 2025년 여름부터 오락 행위가 전면 금지되며 그 풍경은 사라졌다.

CREDIT INFO
Editor 주현욱
Photographer 표기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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