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만한다는 소리, 다신 마세요" 스페이스 공감, 3년 만에 열광의 부활

정예림 2026. 4. 8. 13: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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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BS, 헬로루키 프로그램과 함께 무료 공연·방송 재개
인디 뮤지션 발굴·고품질 라이브 공연 제공 기능 회복
3일 재개 공연엔 헬로루키 출신 3팀 출연 관객과 호흡
EBS 스페이스 공감 '홈커밍데이'에서 실리카겔이 공연하는 모습. EBS 제공

이달 3일 밤 서울 강서구 LG아트센터 서울. 센터 내 소규모 공연장 'U+ 스테이지'는 사방으로 무대를 둘러싼 스탠딩 관객 400여 명의 열기로 후끈했다. 무대에 선 4인조 인디록 밴드 실리카겔의 멤버 김춘추가 말했다.

“음악을 처음 시작할 때부터 EBS '스페이스 공감'을 재밌게 봤고 나름대로 많이 배우기도 했습니다. 공영방송 중 단연 엄지손가락을 올리게 되는 의미 있는 방송이었죠. 이 나라에서 음악하는 사람 중 한 명으로서 프로그램이 재개됐다는 사실만으로 너무 기쁩니다. 다시는 그만한다는 소리 하지 않으셨으면 좋겠습니다.”

관객 이민섭(25)씨가 기자에게 말했다. “보석 같은 아티스트를 발견해 무대 영상을 찾아보면 항상 초창기에 스페이스 공감 무대에 나왔더라고요. 새로운 음악과 아티스트를 찾고 싶을 때 이 방송 녹화 영상을 많이 이용해왔습니다.”

뮤지션에게는 공연 기회를, 대중에게는 새로운 음악을 발견할 창구를 제공해온 EBS의 음악 프로그램 스페이스 공감이 3년 만에 무료 공연을 재개했다. 새로운 출발을 알리는 3일 공연의 타이틀은 ‘홈커밍데이’. 스페이스 공감의 신인 발굴 프로젝트 ‘헬로루키’를 통해 이름을 알리고 신(scene)을 이끄는 주역이 된 한로로, 실리카겔, 장기하가 그들의 시작을 알린 ‘집’으로 돌아와 무대를 꾸몄다.

EBS 스페이스 공감 '홈커밍데이' 공연 아티스트 이미지. 왼쪽부터 장기하, 실리카겔, 한로로. EBS 제공

스페이스 공감은 지난 20년간 두 가지 핵심 축을 통해 국내 음악 생태계를 조성해왔다. 2004년 시작된 '무료 공연'을 통해 록, 팝, 재즈, 국악 등 장르를 가리지 않고 수준 높은 무대를 라이브 공연과 녹화 방송을 통해 소개해왔다. 2007년부터는 '헬로루키' 공연으로 국카스텐, 장기하와 얼굴들 등 171개 팀을 배출하며 인디음악 신의 등용문 역할을 해왔다. 그러나 제작비 부족 등의 문제로 2022년 헬로루키가 중단됐고 이듬해 무료 공연마저 멈추며 아쉬움을 샀다.

김학선 대중음악평론가는 “스페이스 공감은 기존 미디어에서 외면해온 다양한 장르의 음악을 소개하기 위해 꾸준히 노력해왔으며, 좋은 공연에 대한 기준을 세워왔다”고 말했다. 이어 “한두 곡만 부르고 마는 무대가 아니라 한 시간 이상의 쇼를 온전히 준비해야 하기 때문에 아티스트에게는 부담이 될 수 있지만, 그만큼 많은 연습과 공을 들이게 된다”며 “이러한 과정 속에서 경력을 시작하는 음악인들에게 꼭 서보고 싶은 무대, 하나의 목표로 자연스럽게 자리 잡게 됐다”고 말했다.


구글 상생기금으로 열린 ‘공감’의 제2막

프로그램 재개의 계기는 구글이 출연한 ‘국내 음악 산업 상생기금’ 300억 원이었다. ‘유튜브 뮤직 프리미엄’ 상품 판매로 공정거래법 위반 혐의를 받은 구글이 공정거래위원회에 자진 시정과 함께 4년간 기금 출연 방안을 내놔 동의를 받았고, EBS가 이 기금을 지원받게 된 것이다. EBS는 향후 4년간 지원금을 순차적으로 투입해 2026년 50회 내외의 무료 공연을 진행하고, 내년부터는 연간 80회 내외로 공연을 확대할 계획이다. 또한 '헬로루키' 프로젝트를 재개해 신인 뮤지션 발굴을 강화하기로 했다.

이렇게 3년 만에 돌아온 스페이스 공감에 대중의 반응은 뜨거웠다. 3일 공연 관객은 EBS 홈페이지를 통해 관람 신청을 받고 제작진이 신청 사연 등을 감안해 415명을 선정했는데, 신청자가 10만 명에 가까웠다고 제작진은 밝혔다.

공연 당일 현장에도 이른 시간부터 관객이 몰렸다. 입장권을 배부하는 티켓 부스는 공연 시작 2시간 전인 오후 5시 30분부터 운영됐지만 전석 스탠딩에 선착순 입장이라, 무대에서 가까운 자리를 차지하려는 관객들이 이른 시간부터 줄을 섰다. 낮 12시에 도착했다는 김여진(23)씨는 “왔더니 이미 앞에 5명 정도가 대기하고 있었다”고 전했다. 천준형(26)씨는 “어렸을 때부터 스페이스 공감 라이브 영상을 많이 봤었다”며 “다른 음악 방송은 뮤지션들이 카메라를 보면서 즐기는 느낌이라면, 스페이스 공감은 관객과 가까운 거리에서 소통하는 느낌이라 더 친숙하게 다가온다”고 말했다. 공연장 한편에 마련된 방명록은 '그리웠습니다', '내 청춘을 함께한 공감'과 같은 문구부터 '10대 때 보던 방송을 30대가 되어 친구와 보러왔다'는 추억담까지, 이 프로그램 20년 역사의 무게를 실감케 하는 문구로 빼곡했다.


한로로, 헬로루키에서 Z세대 아이콘으로

EBS 스페이스 공감 '홈커밍데이'에서 한로로가 공연하는 모습. EBS 제공

오후 7시 30분, 파란 조명과 적막에 잠긴 공연장에 등장한 한로로가 곡 '먹이사슬'로 공연의 포문을 열었다. 이어 청춘의 방황과 내면의 갈등을 거칠게 그려낸 곡들을 연속으로 쏟아내며 무대의 긴장감을 끌어올렸다. 공연장은 정중앙 사격형 무대를 관객들이 360도로 둘러싼 구조로 관객과 아티스트는 손을 뻗으면 닿을 듯 가까웠다.

2022년 헬로루키에서 '거울'을 공연 중인 한로로의 모습. 헬로루키 유튜브 캡처

한로로는 모던 록을 기반으로 서정적이고 시적인 가사와 호소력 있는 보컬을 선보이는 Z세대 싱어송라이터다. ‘2022년 올해의 헬로루키’에서 결선 진출 최종 6인에 선정됐다. 그는 객석 곳곳에서 올라온 '한로로', '자몽살구클럽' 슬로건을 바라보며 "헬로루키를 통해 처음 이름을 알렸기에 스페이스 공감은 늘 긴장되는 곳이었다"며 "그때는 아무도 나를 몰랐는데, 이제는 슬로건을 들어주는 관객들이 있어 기쁘면서도 얼떨떨하다"고 말했다.

'입춘' '0+0' '시간을 달리네'가 이어지자 관객들은 멜로디에 맞춰 가사를 따라 부르거나 가슴에 손을 모은 채 음미했다. 이날 공연은 전날 발매된 신곡 '게임 오버?'의 첫 라이브 무대이기도 했다. 한로로는 객석을 천천히 돌며 관객 한 명 한 명과 눈을 맞추며 노래했고, 공연 말미에는 관객들과 하이파이브를 하려고 손을 뻗다 중심을 잃고 넘어지기도 했다.


실리카겔, 압도적 라이브로 증명한 '밴드 붐'의 주역

EBS 스페이스 공감 '홈커밍데이'에서 실리카겔이 공연하는 모습. EBS 제공

이어 실리카겔이 무대에 올랐다. 첫 곡 '9'에서는 간결한 전자음이 공간을 천천히 채우더니, 하얀 조명이 퍼지는 순간 맑고 쾌청한 합주가 터져 나왔다. 이어진 곡 '모두 그래'는 후반부에 강렬한 드럼 솔로와 합주가 맞물리며 객석의 탄성을 이끌어냈다. 김한주는 "'장기하와 얼굴들'이 헬로루키에 출전했을 때는 방송으로 챙겨봤고, 한로로가 결선에 올랐을 때는 저희가 축하 무대를 했었다"며 "오늘로 모두가 모여 정점을 찍는 것 같아 기쁘다"고 말했다.

2016년 올해의 헬로루키에서 '9'를 공연 중인 실리카겔 김한주의 모습. 헬로루키 유튜브 캡처

실리카겔은 김한주(건반·보컬), 김춘추(기타·보컬), 김건재(드럼), 최웅희(베이스)로 이뤄진 사이키델릭 밴드로, 기계적인 사운드와 추상적인 가사를 특징으로 한다. 2016년 올해의 헬로루키 대상을 수상하며 이름을 알린 이들은 강렬한 라이브로 '밴드 붐' 선두에 섰고 2022년 한국대중음악상 최우수 모던록 노래 부문을 수상했다.

초반 두 곡을 헬로루키 결선 공연 곡들로 골라 신인 시절의 결을 보여준 실리카겔. 이후 무대는 지난해 12월 발매한 ‘빅 보이드(BIG VOID)’로 시작해 현재 사운드를 드러냈다. 특히 '틱 택 톡(Tik Tak Tok)' 후반부에서 5분가량 기타 솔로가 휘몰아치자 관객들은 입을 가린 채 몰입했고, 연주가 끝난 뒤 객석에서는 오랫동안 박수가 이어졌다.

김한주는 여름 콘서트와 새 앨범 계획을 예고하며 마지막 곡 '노 페인(No Pain)'으로 마무리했다. 첫 마디가 시작되자마자 객석 전체가 떼창을 시작했다. "내가 만든 집에서 모두 함께 노래를 합시다 / 소외됐던 사람들 모두 함께 노래를 합시다." 김한주는 스탠드 마이크를 높이 들어 관객들 목소리를 받아 올렸다.


장기하, 관객을 자유자재로 이끄는 인디의 아이콘

마지막 무대는 장기하가 장식했다. 장기하가 무대에 모습을 보이기도 전에, 드럼 리듬 위로 특유의 말하는 듯한 창법의 독백이 먼저 흘러나왔다. “이 길이 내길인 줄 아는 게 아니라 그냥 길이 거기 있으니까 가는 거야" 예상치 못한 도입에 객석에서는 어리둥절한 웃음이 번졌다.

EBS 스페이스 공감 '홈커밍데이'에서 장기하가 공연하는 모습. EBS 제공

이내 추리닝 차림으로 등장한 그는 능청스러운 몸짓으로 리듬을 타며 무대를 활보했다. 첫 곡의 제목이기도 한 후렴구 '그건 네 생각이고'가 반복해서 울려 퍼지자 객석은 기다렸다는 듯 떼창으로 화답했다. 이어지는 '빠지기는 빠지더라'에서는 "노래 잘할 필요 없다, 크게만 불러달라"는 그의 주문에 공연장 전체가 관객 목소리로 가득 찼다. 호응과 참여를 자유자재로 이끌어내는 쇼맨십이 돋보이는 무대였다.

2008년 헬로루키에서 '싸구려 커피'를 공연 중인 장기하의 모습. 헬로루키 유튜브 캡처

장기하는 밴드 '장기하와 얼굴들'로 2008년 올해의 헬로루키에 출연해 인기상을 받았다. 경연곡 '달이 차오른다, 가자'는 공연 영상이 인터넷상에서 큰 반향을 일으켰다. 이후 '그렇고 그런 사이' '풍문으로 들었소' 등 히트곡을 연달아 발표하며 2세대 인디의 아이콘 밴드로 자리매김했다.

장기하는 "군대에 있을 때 달밤에 혼자 깨서 '내가 취향도 마이너하고 어디로 갈지 모르겠지만, 그냥 간다'는 생각으로 노래를 만들었고 2008년 방송에서 불렀는데, 그게 가장 유명한 라이브 영상 중 하나가 될 줄 몰랐다"며 '달이 차오른다, 가자'를 불렀다. 이어 마지막 곡 '별일 없이 산다'에서는 스탠드 마이크를 객석을 향해 길게 뻗고 360도로 회전하며 관객의 목소리를 끌어올렸다. 환호와 떼창을 하며 뛰노는 관중들이 뒤섞인 화려한 공연 피날레였다.


장르 확장부터 신인 발굴까지, 인디 생태계 재건의 신호탄

다음 달 6일 EBS 1TV를 통해서도 방송되는 이날 공연은 스페이스 공감, 특히 헬로루키의 존재 의미를 되짚는 자리이기도 했다. 세 아티스트가 선보인 각기 다른 색깔의 무대는, 헬로루키가 추구한 음악적 다양성의 성과를 대변한다. 한편으로는 변화된 미디어 환경 속에서 인디 뮤지션을 접하는 방식이 달라진 것도 현실. 이날 만난 관객들은 공통적으로 플랫폼의 알고리즘 추천을 통해 새로운 음악을 발견한다고 답했다. 다양한 플랫폼을 통해 새로운 음악을 쉽게 접할 수 있고 누구나 창작 음악을 업로드할 수도 있는 시대에도, 스페이스 공감과 헬로루키는 그 필요성과 가치를 입증할 수 있을까.

김 평론가는 “그렇기에 더욱 일종의 ‘기준’이 필요하다”며 “유행과 플랫폼이 계속 변화하는 상황에서도 스페이스 공감은 20년 넘는 시간 동안 음악 프로그램 본연의 역할을 우직하게 수행하며 역사와 신뢰를 쌓아왔다”고 말했다. 이어 “이 같은 맥락에서 ‘공감’이 선택한 출연자나 헬로루키 수상자들은 남다른 무게를 지닐 수밖에 없고 그만큼 더 큰 주목을 받는다”며 “공감이 한국 대중음악 시장에서 의미 있는 레거시로 기능하고 있다”고 평가했다. 인디음악에 관심이 많다는 관객 류승원씨는 "유튜브 알고리즘이나 페스티벌을 통해 새로운 아티스트를 접하게 된다"면서도 “헬로루키는 음악 팬들에게 디깅(발굴)의 창구이자, 아티스트에게는 공연 경험을 쌓을 기회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다시 쏘아올린 '스페이스 공감'은 5월까지 악뮤(AKMU), 신인류, 소울 딜리버리, 김완선, 잔나비 등 장르를 넘나드는 라인업을 예고하고 있다. 부활한 헬로루키 프로젝트에도 952개 팀이 지원하며 뜨거운 관심을 입증했다. 엄격한 심사를 거쳐 테크노, 팝, 얼터너티브, 재즈 등 다양한 장르의 10개 팀이 선발되었으며, 이들은 오는 23일 진행될 공연에서 '5월의 헬로루키' 자리를 놓고 경합을 벌일 예정이다.

정예림 인턴 기자 herewegooo@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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