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호이의 북적북적] ‘느림의 미학’으로 세상을 그린 타샤 튜더, 그녀가 남긴 행복의 시간들

김호이 기자 2026. 4. 8. 12: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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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김호이 기자

[한국독서교육신문 김호이 기자]

빠른 속도와 효율이 미덕처럼 여겨지는 시대, 역설적으로 '느림의 미학'을 실천하며 평생 자연과 함께한 한 예술가의 세계가 서울 도심 한가운데에서 관람객들을 사로잡았다. 서울 송파구 롯데뮤지엄에서 개최한 타샤 튜더(1915~2008) 탄생 110주년 특별전 '스틸, 타샤 튜더: 행복의 아이콘, 타샤 튜더의 삶'이 성황리에 막을 내렸다. 전시는 종료됐지만, 그녀가 남긴 메시지는 여전히 많은 이들의 마음속에서 따뜻한 여운을 남기고 있다.
사진= 김호이 기자
사진= 김호이 기자

아시아 최초·최대 규모의 '타샤의 세계'

이번 특별전은 미국을 대표하는 동화 작가이자 일러스트레이터인 타샤 튜더의 예술적 성취와 자연주의적 삶을 아시아 최초·최대 규모로 조명했다. 칼데콧상을 두 차례나 수상한 그녀의 대표작 원화를 비롯해 섬세한 수채화·드로잉·수제 인형 등 약 190여 점에 달하는 작품이 전시장에 펼쳐졌다.

특히 데뷔작 《호박 달빛》(Pumpkin Moonshine, 1938)의 원화를 비롯한 주요 그림책 일러스트는 세심한 동선과 은은한 조명의 조화를 통해 관람객이 '그림책의 노벨상'이라 불린 거장의 세계를 입체적으로 체감할 수 있도록 구성됐다.

동화 작가로서 타샤는 자연과 인간, 계절의 변화 속에서 피어나는 이야기를 소박하지만 깊은 울림으로 그려낸 창작자로 꼽힌다. 《코기빌의 크리스마스》, 《베키의 생일》, 《눈 오는 날》 등 그녀의 그림책은 시대를 초월해 '정서를 보듬는 그림책'이라는 평가를 받으며 전 세계적으로 오래 사랑받고 있다.
사진= 김호이 기자

예술이 일상이 되고, 일상이 작품이 된 '버몬트의 정원'

전시에서 가장 큰 호응을 받은 공간은 타샤가 말년을 보낸 미국 버몬트주의 자택 코기 코티지(Corgi Cottage) 정원을 재현한 특별 섹션이었다.

그녀가 30만 평에 달하는 정원을 직접 가꾸며 살아온 삶을 반영하듯, 꽃과 풀, 온실을 모티브로 한 공간은 도심 한복판에서도 자연의 고요함을 느끼게 했다.

타샤의 정원은 단순한 생활 공간이 아니라 그녀의 동화가 태어나는 '비밀의 서재'이자 매일의 사유가 쌓이는 창작의 터전이었다. 관람객은 계절의 빛과 그림자가 물든 포치, 아침마다 따스한 찻잔 김이 피어올랐을 것 같은 작은 테이블, 그녀가 사랑한 웰시코기와 함께했던 순간들을 시각적으로 경험하며 '예술과 일상의 경계가 없던' 타샤의 세계관을 체험했다.

실제 사용했던 뜨개 도구, 정원에서 수확한 꽃으로 만든 프레스드 플라워 노트, 그녀가 손수 만든 수제 인형 등은 창작자로서의 섬세함뿐 아니라 장인(匠人)으로서의 면모까지 보여줬다.
사진= 김호이 기자
사진= 김호이 기자

동화와 영상, 미디어아트로 펼쳐진 '타샤의 내면'

이번 전시는 단순한 회고전이 아닌, 관람객이 '타샤의 삶 속으로 걸어 들어가는' 듯한 몰입형 구성으로 완성도를 높였다.

다큐멘터리 영상, 미디어아트, 인터뷰 아카이브가 결합된 공간에서는 타샤가 자연 속에서 어떻게 영감을 얻고, 그 영감이 어떻게 그림책의 서사로 이어지는지를 시각적으로 체험할 수 있었다.

그녀는 생전에 이렇게 말한 바 있다. "나는 자연의 속도에 맞춰 사는 삶을 사랑합니다. 그 속도가 가장 인간적이기 때문이죠."

이 철학은 그의 책과 그림, 생활 방식, 그리고 이번 전시에 이르기까지 일관되게 흐르는 핵심 가치로 자리한다.
사진= 김호이 기자
사진= 김호이 기자

팬데믹 이후 삶의 속도를 다시 점검하고 '일상의 회복'을 갈망하던 관람객에게 타샤의 메시지는 깊은 위로를 건넸다.

전시장 곳곳은 마치 시간이 천천히 흐르는 듯한 감각을 선사했다. 천을 맺힌 듯 고요한 수채화, 따듯한 촛불을 닮은 조명, 정원의 향기를 구현한 공간 연출이 더해지며 '치유의 미술관'이라는 반응도 이어졌다.
사진= 김호이 기자

일상의 속도를 늦추는 시간… 전시 종료 후에도 이어지는 여운

비록 전시는 지난 3월 15일 막을 내렸지만, 관람객들은 여전히 SNS와 커뮤니티를 통해 여운을 나누고 있다.

바쁜 도시의 속도를 잠시 늦추고 싶었던 이들은 타샤가 남긴 수채화와 정원의 감성 속에서 잠시 숨을 고를 수 있었다고 말한다.

타샤가 생전에 자주 강조했던 메시지는 전시가 끝난 지금도 묵직한 울림을 준다.

"행복은 멀리 있지 않습니다. 우리가 바라보는 바로 그 자리, 일상의 작은 순간 속에 있습니다."

현대 사회의 '빠름' 속에서 잊고 지냈던 '느림의 가치'를 다시 일깨운 이번 전시는, 단순한 예술 전시를 넘어 삶의 방향을 되돌아보게 하는 일종의 '느린 선언'이자 '회복의 시간'이었다.

타샤 튜더가 남긴 세계는 끝났지만, 그녀가 가르쳐준 행복의 방식은 여전히 우리 일상 속에서 조용히 살아 숨 쉬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