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제 퇴거의 폭력, ‘우리에게 다른 땅은 없다’

김수민 2026. 4. 8. 12: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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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큐멘터리 감독이 추천하는 영화 〈노 어더 랜드 〉

*이 글은 씨네큐브에서 진행된 〈노 어더 랜드〉 씨네토크(유운성 영화평론가, 이종찬 문화평론가)에서 공유된 발언과 설명을 참고해 작성되었습니다. 일부 내용은 해당 자리에서 소개된 구술 정보를 바탕으로 합니다.

 

지금 지구에서 가장 아픈 곳

대학 시절, 앞으로 어떤 이야기를 해나가야 할지 고민하고 있을 때 한 교수님께서 해주신 말이 있다. “지금 지구에서 가장 아픈 곳에 대해 말해야 한다. 그리고 지금 지구에서 가장 아픈 곳은 시리아다.” 그리고 10년이 지난 지금, 지구상에 가장 아픈 곳 중 하나는 아마도 팔레스타인일 것이다.

다큐멘터리 영화 〈노 어더 랜드〉는 팔레스타인 서안지구 마사페르 야타(Mosfaret Yatta)에서 일어나는 강제 퇴거를 담았다. 강제 퇴거 혹은 점령, 분쟁 등 사실 어떠한 언어로도 설명하지 못 하는 이 현재진행형의 폭력은 영화를 보고 있는 매 순간마다 눈을 감거나 영화관을 뛰쳐나가 도망가고 싶게 만든다.

▲ 다큐멘터리 영화 〈노 어더 랜드〉(No Other Land, 바젤 아드라, 함단 발랄, 유발 아브라함, 라헬 쇼르 감독, 2024) 스틸 컷

영화의 배경이 되는 마사페르 야타는 1980년대 초 이스라엘에 의해 ‘사격 훈련 구역’(Firing Zone 918)으로 지정된 곳이다. 군사 훈련이라는 명목이지만, 이 지정은 그곳에 오랫동안 뿌리내리고 살아온 팔레스타인 주민들을 ‘불법 거주자’로 만드는 행정적 장치로 작동한다.

실제로 이 지역에는 이스라엘이 서안을 점령하기 이전인 1967년 이전부터 살아온 공동체가 존재했으며, 주민들은 동굴과 간이 주거지에서 농업과 목축을 기반으로 삶을 이어왔다. 그럼에도 1999년 이스라엘 군은 약 700명의 주민들을 “사격 구역에 불법적으로 거주한다”는 이유로 강제 퇴거시켰다. 이후 수십 년에 걸친 법정 다툼 끝에 2022년 이스라엘 대법원은 군의 손을 들어주었다. 20년이 넘는 시간 동안 주민들의 삶은 사실상 보류된 상태에 놓였고, 이 판결 이후 마사페르 야타 지역의 일상은 더 이상 일상이라 부르기 어려운 상태로 밀려났다.

영화 〈노 어더 랜드〉는 바로 그 마사페르 야타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의 ‘일상’이라 부르기 어려운 시간을 기록한다. 영화는 공동 감독 중 한 명이자 팔레스타인 활동가 바젤 아드라가 자신의 마을이 파괴되는 과정을 카메라에 담는 것으로 시작된다. 오랫동안 지역에서 이스라엘 군에 저항해온 가족의 역사 속에서 자란 그는, 아버지의 활동을 이어 카메라를 들었다. 이들에게 카메라는 내일이면 사라질지도 모르는 집과 마을 공동체, 그리고 자신의 존재를 증명하기 위한 기록의 도구이다.

바젤이 기록한 영상들 속에서 이스라엘 군은 집을 철거하고, 우물을 메워 없애고, 전기를 끊는다. 사람이 더 이상 살 수 없는 조건을 만들어 스스로 떠나게 하는 방식의 폭력은 노골적인 전투가 아닌, 일상의 형태로 지속된다. 거대한 충돌은 없다. 대신 불도저가 밀어버린 집을 주민들은 밤 새워 다시 짓는다. 다시 집은 무너지고, 사람들은 다시 짓고, 또 다시 철거된다. 이 반복은 개별 사건이 아니라 구조가 되고, 폭력은 특정한 순간이 아니라 일상이 된다. 영화는 이 일상의 붕괴를 끝까지 보여준다.

▲ 영화 〈노 어더 랜드〉(No Other Land) 스틸 컷

국적이 다른 네 명의 공동감독이 ‘합의’한 원칙

영화는 네 명의 공동 감독이 만들었는데, 두 명은 팔레스타인 사람이고 다른 두 명은 이스라엘 사람이다. 그 중 바젤 아드라와 유발 아브라함은 영화에 직접 등장한다. 바젤은 앞서 언급했듯 활동가였던 아버지의 영향을 받아 마사페르 야타 지역에서 벌어지는 상황을 기록해왔다. 유발은 이스라엘인이자 기자로서 바젤과 함께 현장을 기록한다. 둘은 집을 철거하러 온 군인들에게 항의하기도 하고, 무너진 집을 주민들과 함께 다시 짓기도 한다.

둘은 현장에서 같은 일을 하며 함께 활동하지만, 그들이 처한 상황은 다른 식으로 버거워져 간다. 바젤은 법을 전공했지만 안정적인 일자리를 구하지 못한 채 불확실한 삶을 이어간다. 그의 활동을 막기 위해 이스라엘 군이 아버지를 연행하는 일까지 벌어진다.

유발은 팔레스타인 주민들에게 원망을 듣는다. 이스라엘 군이 마을을 휩쓸고 가면 주민들의 감정은 유발에게 향한다. “너는 이스라엘 사람이잖아. 이스라엘 사람들은 이 일을 어떻게 생각해?” 유발은 이 현실을 이스라엘 사회에 알리면서, 동시에 그 사회 내부에서도 ‘반유대주의자’라며 비난 받는다.

누가 더 불행한가 말하려는 게 아니다. 그들은 각자의 위치에서 각자의 일을 한다. 그러나 그 위치에는 분명한 조건과 한계가 존재한다. 서로 다른 조건이 하나의 영화 안에 함께 담길 수 있었던 것은 네 명의 공동 감독이 합의한 원칙과도 연결된다. 이들은 네 명 중 단 한 사람이라도 반대하는 장면은 사용하지 않기로 했다고 한다.

이러한 합의의 원칙은 영화의 구성에서도 드러난다. 예를 들어, 마사페르 야타를 철거하는 군인들이 아랍계 이스라엘인이라는 점에 주목한 이스라엘 감독은 그 맥락을 영화에 담고자 했다. 그러나 팔레스타인 감독은 이에 반대했다. 중요한 것은 군인의 출신이 아니라, 그들이 수행하는 행위였기 때문이다. 결국 이 맥락은 영화에서 제외되었다.

이들의 원칙은 폴란드-독일의 공동 역사교과서 집필 사례를 떠올리게 한다. 양국은 하나의 단일한 역사 서술을 만드는 대신, 서로 다른 시각을 함께 제시하는 방식을 택했다. 같은 사건을 두 국가의 관점에서 병렬적으로 서술하며, 차이를 드러낸다. 물론 이 사례를 현재진행형의 점령 상황과 동일하게 놓을 수는 없다. 또한 가해와 피해의 관계를 병렬적으로 보는 것과 소거적으로 보는 것은 다를 것이다. 그럼에도 서로 다른 위치에 있는 주체들이 하나의 결과물에 도달하기 위해 합의를 형성했다는 점에서 유사한 측면이 있다. 그리고 이 합의 속에서 〈노 어더 랜드〉가 분명히 보여주는 것은 누구도 부정할 수 없는 이스라엘의 선명한 폭력이다.

▲ 영화 〈노 어더 랜드〉(No Other Land) 스틸 컷

이러한 합의 원칙은 제작 환경에도 영향을 미쳤다. 이 모든 합의를 위해 네 사람은 당연히 함께 편집을 진행하려 했지만, 팔레스타인 감독들이 이스라엘로 이동하는 것은 현실적으로 매우 어려웠다. 팔레스타인 사람의 이동 자체가 이스라엘의 허가 아래 통제되는 상황이었기 때문이다. 결국 이스라엘 감독들이 마사페르 야타로 들어가 함께 편집을 진행하게 되었다. 그러나 영화에서 드러나듯 마사페르 야타는 철거가 계속되는 지역이다. 이들은 전기가 안정적으로 공급되지 않는 환경에서 작업해야 했고, 전기가 들어오는 짧은 시간마다 편집을 이어나갔다. 편집이 진행되는 동안에도 마을에서는 철거가 계속되었기에, 그들이 기록한 영상 속 철거 장면과 현실에서 벌어지는 철거가 겹쳐지는 가운데 작업이 이루어졌다.

영화의 많은 장면에서 탄식하게 되지만, 특히 기억에 남는 말이 있다. “우리가 이런 상황을 세계에 알릴수록, 미국이 이스라엘을 압박할 거야.” 그러나 2026년 현재 우리가 마주한 현실은 다르다. 미국은 여전히 이스라엘의 강력한 우방이며, 이란과의 군사적 충돌 속에서 그 관계는 유지되고 있다.

 

가장 아픈 곳을 기록하는 이들의 마음

2024년 베를린 국제영화제에서 처음 공개된 〈노 어더 랜드〉는 이후 전세계 여러 영화제에서 상영되며 마사페르 야타의 현실을 알렸다. 하지만 2025년 3월, 영화의 공동 감독 중 한 명인 함단 발랄(Hamdan Ballal)이 서안지구에서 이스라엘 정착민들의 공격을 받은 뒤 이스라엘 군에 의해 연행·구금되었다.

이 소식이 전해지자 세계 각지의 영화인들이 그의 석방을 촉구하는 목소리를 냈다. 다행히 함단 발랄은 다음 날 석방되었지만, 이 사건은 영화가 기록한 폭력이 스크린 안에만 머무는 것이 아니라 지금도 현실에서 계속되고 있음을 보여준다. 영화는 세계의 여러 영화제에서 찬사를 받고 관객들을 만나왔지만, 영화를 만든 감독 중 한 명은 차가운 감옥에 갇히고 무너진 폐허로 돌아가야 했던 것이다.

▲ 2025년 3월, idfa(암스테르담 국제 다큐멘터리 영화제)에서 인스타그램에 업로드한 함단 발랄(Hamdan Ballal)의 석방을 촉구하는 이미지 게시물.

그들의 고통이 담긴 프레임을 넘어 직접 가 닿을 수 없는 무력감과 막막함 속에서도 우리가 이 다큐를 꼭 보아야 할 이유는 무엇일까.

이런 질문 속에서, 이 영화를 추천한다는 말이 조심스럽다. 누군가의 삶이 파괴되는 과정을 지켜보는 일은 결코 가벼운 경험이 아니기 때문이다. 10년 전 교수님이 말했던 ‘지구에서 가장 아픈 곳’은 매번 이름을 바꾼다. 하지만 감히 추측하건대, 가장 아픈 곳을 기록하는 이들의 마음은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다. 이 이야기가 기록되고 전달되어서 사람들에게 알려지기 바라는 것. 그들이 존재했고 그들이 있다는 것을 알리는 것. 그리고 이들의 삶이 어떤 식으로든 나아지길 바라는 것일 것이다.

〈노 어더 랜드〉는 세상을 향해 말한다. 우리에겐 이 땅 말고는 다른 땅이 없다고.(No Other Land) 그러니 여기서 끝까지 버티며 서로를 기록하겠노라고. 도망치고 싶은 마음을 누르고 이 영화의 마지막 프레임까지 지켜보는 일, 그것이 우리가 마땅히 가져야 할 최소한의 연대이자 지구에서 가장 아픈 곳에 보낼 수 있는 응답일 것이다.

 

[필자 소개] 김수민. 2026년 프로젝트 활동가로 ‘연분홍치마’에서 활동하고 있다. 다큐멘터리 연극과 극작을 좋아한다. 아시아 4개국의 퀴어 부부 이야기를 담은 중편 다큐멘터리 〈모던 패밀리〉를 공동 연출했으며, 지금은 예술 대학 내 위계폭력에 대한 다큐멘터리 〈블랙박스〉를 만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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