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덕환의 과학세상] 재생에너지로 연료·소재난 극복할 수 없다

기후에너지환경부가 ‘국민주권정부의 에너지 대전환 추진 계획’을 발표했다. 화석연료 의존도를 낮추고 재생에너지 중심의 전기화·탈탄소화를 신속하게 추진해 “중동 전쟁과 같은 대외적 충격에도 흔들리지 않는 에너지 체계”를 만드는 것이 목표라고 한다.
이재명 대통령도 “이번 중동발 위기를 재생에너지 강국으로 나아가는 기회로 만들어야 한다”며 “에너지 수급 다변화와 재생에너지 중심의 에너지 대전환에도 속도를 내야 한다”고 지시했다.
재생에너지 중심의 에너지 전환은 새로운 것이 아니다. 문재인 정부가 밀어붙인 망국적인 ‘탈원전’의 대안이 바로 ‘에너지 전환’과 ‘탄소중립’이었다.
산업부의 에너지 정책에서 고작 20%를 차지하는 전력 부문만 따로 떼어내 ‘기후에너지환경부’를 만들고 재생에너지를 고집해 왔던 김성환 의원을 장관에 앉힌 것도 에너지 전환을 더욱 적극적으로 밀어붙이기 위한 포석이었다.
그런 뜻에서 기후부가 6일 내놓은 요란한 ‘추진 계획’은 오히려 때늦은 것이라고 할 수도 있다. 그러나 에너지 대전환이 중동 전쟁으로 촉발된 원유·나프타 등의 공급망 붕괴로 어수선한 상황에 어울리는 정책인지는 분명치 않다.
● ‘고유가·고환율·소재난’ 극복에 집중해야
현재 우리는 ‘전시 상황’에 살고 있다. 물론 중동에서 한 달이 넘도록 이어지고 있는 참혹한 폭격의 파편이 직접 우리에게 튀고 있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원유의 70%와 나프타의 35%를 중동에 의존하고 있는 우리에게 미치는 전쟁의 파장은 세계 최악이다. 국가 경제가 흔들리고 국민 생활이 어려워지고 있다. 경제를 살리고 국민의 고통을 덜어주기 위해 26조 원 규모의 ‘전쟁 추경’을 편성해야 할 정도로 심각한 위기 상황이다.
호르무즈 해협 봉쇄로 원유·천연가스·나프타·요소·알루미늄·헬륨의 공급망이 무너지면서 기름값과 환율이 천정부지로 치솟고 국민의 일상생활도 어려워지고 있다. 상황은 매우 심각하다.
한 번도 시행하지 않은 비상 수단인 ‘기름값 최고가격제’까지 밀어붙였지만 휘발유 가격은 이미 리터당 2000원을 넘어섰고 환율도 1500원을 넘어섰다. 종량제 봉투와 요소수·윤활유 품귀 조짐은 오히려 사소한 문제다. 약국에서 사용하는 포지(包紙)는 물론이고 병원에서 사용하는 주사기·수액백·의료용 장갑도 동이 나고 있다.
정부가 총력을 기울여 당장 해결해야 할 문제는 중동 의존도가 높은 ‘원유·천연가스·나프타·요소’ 등의 ‘소재난’을 해결하는 일이다. 중동 전쟁으로 전력 공급에 당장 심각한 문제가 생긴 것은 아니다. 물론 재생에너지(태양광·풍력) 설비가 늘어나면서 빠르게 증가한 LNG 발전소의 연료 확보가 어려워질 수는 있다.
그런데도 엄청난 규모의 사회적 투자가 필요하고 오랜 시간이 걸리는 ‘에너지 대전환’은 후순위로 미뤄둘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적어도 중동 전쟁의 파장이 잦아들 때까지는 그럴 수밖에 없다. 아무도 부정할 수 없는 분명한 사실이다.
● 원전이 빠진 대전환
정부의 원전에 관한 관심도 불확실하다. 본래 원전은 위험해서 포기해야 한다는 것이 이재명 대통령의 확고부동한 소신이었다.그런데 기후부와 한국수력원자력이 지난 30일 마감한 대형 원전 1기와 소형모듈원전(SMR) 1기의 부지 공모에 울주·영덕·경주·기장의 4개 지방자치단체가 유치 신청을 했다. 원전을 지을 부지를 찾을 수 없을 것이라는 대통령의 우려는 근거가 없는 것이었다.
그런데 이재명 대통령의 ‘유연한 실용주의’ 덕분에 기사회생한 원전이 1주일 후 공개된 ‘대전환 추진 계획’에서는 흔적도 없이 사라져 버렸다. 현재 기후부가 준비하고 있는 제12차 전력수급기본계획에 과연 원전이 포함될 것인지가 불확실해졌다는 뜻이다. 문재인 정부가 밀어붙였던 망국적인 탈원전의 망령이 되살아날 수도 있다는 우려를 지울 수 없다.
원전을 빼놓고 탈석탄까지 강조하는 ‘대전환’은 태양광·풍력 자원이 턱없이 부족한 우리에게 비현실적인 환상일 수밖에 없다. 그런 사실은 26기의 원전 중 10기를 세워 놓은 탓에 60%대로 떨어진 원전 가동률을 80% 이상으로 끌어올리고 석탄 발전 가동률 상한을 폐지하기로 한 정부의 비상 조치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실제로 “전 세계적으로 중동 전쟁 때문에 빠른 속도로 재생에너지 전환을 촉진하고 있는 상황”이라는 김성환 장관의 발언은 엉뚱한 사실 왜곡이다. 오히려 태양광·풍력에 영혼을 빼앗겨 맹목적으로 탄소중립을 외치던 국가들이 AI 시대의 급속한 도래를 앞두고 에너지 안보 강화를 위해 속속 원전으로 회귀하고 있다.
실제로 미국의 트럼프 대통령은 태양광·풍력을 단호하게 거부하고 있다. 심지어 1979년 스리마일아일랜드 사고 이후 원전 건설을 실질적으로 포기했던 미국이 이제는 ‘원전 르네상스’를 외치고 있다.
2030년까지 대형 원전 10기를 착공하고 2050년까지 원전 발전 용량을 현재의 4배로 확대하는 것이 목표다. 앞장서 탈원전을 외쳤고 ‘유럽 그린딜’을 설계했던 우르줄라 폰데어라이엔 유럽연합(EU) 집행위원장도 “탈원전은 전략적 실수였다”고 실토했다.
세계 최초의 상업용 원전을 건설했지만 1980년대 이후 태양광·풍력에 올인한 탓에 원전 건설 능력을 완전히 상실해 버린 영국도 2050년까지 원전 비중을 25%로 끌어올리기로 했다.
프랑스 역시 신규 원전 건설을 국가 전략으로 삼기로 했고 탈원전을 선언했던 이탈리아와 대만조차 원전 재개를 선언했다. 후쿠시마 원전 사고를 겪은 일본도 원전으로 회귀하고 있다.
● 재생에너지도 화석연료가 필요하다
태양광·풍력으로는 AI 데이터센터의 24시간 연속 가동이 불가능하다. 더욱이 사계절이 뚜렷한 우리의 기후 환경도 재생에너지 확대를 어렵게 만드는 걸림돌이다. 태양광·풍력의 전기가 남아도는 일은 짧은 봄·가을에 한정된다.
결국 겨울이나 장마철이 길어지는 여름에는 문제가 더욱 심각해질 수밖에 없다. 재생에너지의 극심한 간헐성과 변동성을 극복하는 일은 말처럼 쉽지 않다. 리튬이온 배터리를 이용한 에너지 저장 장치는 설치 비용이 감당하기 어려울 정도로 비싸고 끔찍한 화재 위험도 극복하기 어렵다.
양수발전소가 환경에 미치는 영향도 무시할 수 없으며 적합한 부지를 찾는 일도 쉽지 않다. 결국 현재 기술 중 현실적으로 가장 가능성이 높은 것은 기동성이 보장되는 LNG 발전뿐이다. 그러나 중동 전쟁으로 당분간 LNG 국제 시세가 감당하기 어려울 정도로 치솟을 것이 분명하다는 점이 문제다.
재생에너지 설비가 늘어나면 LNG 발전량도 함께 증가할 수밖에 없다. 현재 기술 수준에서는 피할 수 없는 현실이다. 수명이 20년에 불과한 태양광·풍력 설비의 폐기에도 막대한 비용이 필요하다는 점도 중요하다. 태양광 패널 재활용은 사실상 값싼 검은 플라스틱 소재의 솔라셀로 오염된 유리판 재활용을 의미한다.
강화플라스틱으로 제작된 풍력 블레이드 역시 재활용이 어렵고 매립이나 소각도 쉽지 않다. 재생에너지 발전 비용이 빠르게 떨어지고 있다는 주장은 간헐성 극복과 폐기 비용을 충분히 반영하지 않은 것이다.
우리의 에너지·소재 수급처가 중동에 집중된 것을 지나치게 탓할 필요는 없다. 일본 역시 중동 의존도가 우리보다 높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아직 더 많은 투자와 노력이 필요한 ‘미래 기술’인 재생에너지에 대한 과속 투자가 오히려 기술 발전을 저해하는 족쇄가 될 수 있다는 점도 잊지 말아야 한다.
※필자 소개
이덕환 서강대 명예교수(화학·과학커뮤니케이션). 2012년 대한화학회 회장을 역임하고 과학기술, 교육, 에너지, 환경, 보건위생 등 사회 문제에 관한 칼럼과 논문 3200여 편을 발표했다. 《같기도 하고, 아니 같기도 하고》 《거의 모든 것의 역사》《우리 몸을 만드는 원자의 역사》《질병의 연금술》《지금 과학》을 번역했고 주요 저서로 《이덕환의 과학세상》이 있다.
[이덕환 서강대학교 화학·과학커뮤니케이션 명예교수 duckhwan@sogang.ac.k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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