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 선재동자를 인도한 유덕동녀(有德童女)의 순결한 지혜 [父性 문명의 한계, 母性 구원의 비전-기고]
53선지식의 길 끝에서 만난 ‘여성 스승’, 독생녀의 원형을 계시하다
대승불교의 수많은 경전 중에서도 그 장엄함과 깊이에서 으뜸으로 꼽히는 것이 바로 『대방광불화엄경(大方廣佛華嚴經)』, 즉 『화엄경』이다. 이 경전의 백미는 ‘입법계품(入法界品)’에 등장하는 선재동자(善財童子)의 구도 여행이다. 진리를 찾아 험난한 여정을 떠난 한 소년의 이야기는 인류가 수천 년간 걸어온 영적 탐구의 축소판과 같다. 그런데 우리는 이 위대한 서사의 행간에서 아주 놀라운 특징을 발견하게 된다. 선재동자가 깨달음을 얻기 위해 만난 53명의 스승, 즉 선지식(善知識)들 가운데 여성 스승들이 결정적인 역할을 수행하고 있다는 점이다.

불교가 발생한 고대 인도는 여성을 남성의 종속적 존재로 여기는 가부장적 색채가 짙은 사회였다. 그러나 『화엄경』은 이러한 시대적 한계를 비웃기라도 하듯, 구도의 길에서 여성이 수행하는 ‘스승’으로서의 위상을 당당히 기록하고 있다. 부처님의 생모인 마야부인, 사자분신비구니, 바수밀다, 구바녀 등 선재동자가 만난 여성 스승들은 단순히 남성을 돕는 보조자가 아니었다. 그들은 남성적 지혜가 도달할 수 없는 깊은 자비와 생명의 실상을 일깨워주는 독자적인 구원 주체였다.
인문학적으로 볼 때, 이는 인류 구원의 역사가 부성(父性) 중심의 법도만으로는 결코 완성될 수 없음을 시사한다. 선재동자의 여정은 선천(先天) 시대의 남성적 수행이 후천(後天) 시대의 여성적 원리를 통해 최종적으로 결실을 보아야 함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그리고 그 신비로운 여정의 중반부, 우리는 독생녀(獨生女)의 섭리적 상징성을 완벽하게 체현한 한 인물을 만나게 된다. 그가 바로 ‘유덕동녀(有德童女)’다.
◆ 유덕동녀, 수행을 넘어선 ‘본연의 순수성’
『화엄경』 제50번째 선지식으로 등장하는 유덕동녀는 그 이름부터가 예사롭지 않다. ‘덕을 갖춘(有德) 어린 소녀(童女)’라는 뜻이다. 보통의 선지식들이 오랜 세월 고행과 수행을 거쳐 깨달음에 도달한 ‘성취형’ 스승이라면, 유덕동녀는 태어날 때부터 이미 본연의 순수함과 완전한 덕성을 지닌 존재로 묘사된다.
그녀가 태어날 때 집안에 온갖 보배가 솟아나고 감로수가 내렸다는 서사는, 기독교의 독생자 탄현이나 통일신학의 독생녀 탄생 설화와 놀라울 정도로 흡사하다. 이는 독생녀가 인간의 노력으로 도달한 경지가 아니라, 하늘부모님의 모성적 신성을 일점일획의 손상 없이 담지하고 태어난 ‘무원죄(無原罪)의 실체’임을 불교적으로 예표하는 대목이다.
유덕동녀는 선재동자에게 ‘지혜의 모(母)’로서 만물이 서로 연결되어 있다는 법계연기(法界緣起)의 참뜻을 전한다. 그녀가 보여주는 지혜는 날카로운 논리가 아니라, 모든 상처를 치유하고 생명을 소생시키는 모성적 자비에 뿌리를 두고 있다. 이는 14회 연재에서 언급한 ‘반야불모(般若佛母)’의 사상이 구체적인 인격체로 현현한 모습이라 할 수 있다.
◆ 덕생동자와 유덕동녀, 음양합덕의 구원 모델
더욱 주목해야 할 점은 유덕동녀가 홀로 등장하지 않고, ‘덕생동자(德生童子)’라는 소년 스승과 함께 나타난다는 사실이다. 『화엄경』은 이 두 소년과 소녀를 한자리에서 만나게 함으로써, 인류 구원의 최종 단계가 남성과 여성의 조화로운 합일, 즉 ‘참부모’의 위상을 통해 이루어짐을 암시한다.
선지식들은 선재동자에게 “저 두 사람(덕생과 유덕)에게 가서 음양의 이치를 묻고, 어떻게 하나가 되어 만물을 살리는지 배우라”고 권고한다. 이는 유교의 ‘건곤합덕’이나 기독교의 ‘어린양 혼인 잔치’와 맥을 같이하는 보편적 진리다. 아들이 세상을 개척(덕생)한다면, 딸은 그 세상을 사랑으로 완성(유덕)한다. 유덕동녀라는 상징은, 성경의 6천 년 인류사가 간절히 기다려온 ‘하늘의 딸’, 독생녀의 출현이 불교가 지향하는 ‘만민 성불’과 ‘평화 세계(불국토)’ 건설의 필수 요건임을 웅변하고 있는 것이다.
◆ 고전의 지혜에서 시대의 해답을 찾다
결론적으로 『화엄경』의 유덕동녀는 관념 속에만 머물던 자비의 원리가 어떻게 실체적인 여성 구원자의 모습으로 역사에 등장할 것인지를 보여주는 거울이다. 부성 문명이 세운 차가운 이성이 벽에 부딪힌 오늘날, 우리는 왜 경전이 그토록 간절하게 ‘순결한 소녀의 지혜’를 노래했는지 되새겨야 한다.
독생녀의 현현은 단순히 한 종교의 탄생을 의미하지 않는다. 그것은 인류가 잃어버린 ‘모성적 근원’을 회복하여, 증오와 투쟁의 연쇄를 끊고 인류 한 가족의 대동 세계를 여는 우주적 사건이다. 유덕동녀가 선재동자를 진리의 바다로 이끌었듯, 오늘날 지상에 현현한 독생녀 참어머님은 갈 길을 잃은 현대 문명을 자비와 효정의 길로 인도하고 있다.
서성종 작가(신학박사)
Copyright © 세계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 리처드 프린스 37억 작품 소장한 지드래곤…'아트테크'로 증명한 글로벌 영향력
- ‘연 2억 적자’ 견디고 85억 차익…하지원, ‘단칸방 6가족’ 한(恨) 푼 185억 빌딩
- 고시원 쪽방서 ‘800곡 저작권’ 판(板)까지…나훈아, 가황의 벽 뒤에 숨긴 눈물
- 장가 잘 가서 로또? 슈퍼 리치 아내 둔 김연우·오지호·김진수, ‘재력’보다 무서운 ‘남자의
- 15년 전세 끝낸 유재석, ‘285억 현금’으로 ‘논현동 펜트하우스 벨트’ 완성
- 7남매 집 사주고, 아내 간병까지…태진아가 350억 건물을 매각하는 이유
- 이영현 "첫째가 잇몸, 둘째가 눈 가져갔다"…엄마들의 '위대한 훈장'
- 커피 가루 싱크대에 그냥 버렸다가… ‘수리비 30만원’ 터졌다
- "먼저 떠올린 건 매니저" 정해인 외제차 선물… 연예계 뒤집은 '통 큰 미담'
- 에어프라이어 200도로 튀긴 감자, '아크릴아마이드' 10배 폭증 [라이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