머지의 ‘다큐 레이팅’ 프로젝트가 던지는 예술적 성찰
10일까지 이태호 개인전 ‘결, 또 다른 결’
이세훈·김응기·김영순 작가도 연내 조명


이 시대 작가란 어떤 사람이어야 할까. 부산의 원로 미술가 디지털 아카이빙 ‘다큐 레이팅’ 프로젝트를 지속하는 ‘오픈아츠 스페이스 머지’(이하 머지)가 2026년도 사업을 시작하며 첫 작가로 1950년생 이태호 작가를 선정했다. 지난 5일 오후 6시 부산 금정구 복합문화예술공간 MERGE?(머지)에서 열린 이태호 초대 개인전 ‘결 또 다른 결’ 작가와의 대화는 이 프로젝트의 의미이자 작가로 살아간다는 것의 본질을 들여다보게 했다.

머지 공간 대표를 맡고 있는 성백 작가는 “이번 전시는 단순한 일회성 작품 감상에 그치지 않는다. 전시 현장과 더불어 작가의 예술 세계를 담은 전자책(e-book) 제작, 작가의 삶과 철학을 밀도 있게 조명하는 다큐멘터리 영상 기록을 입체적으로 병행한다”면서 “이는 지역 예술가들의 귀중한 유산이 디지털 콘텐츠 형태로 다음 세대에 안전하게 계승될 수 있도록 돕는 실천적 장치”라고 설명했다.
2023년과 2024년에 이어 3차 연도가 된 2026년 ‘다큐 레이징’은 이태호 작가 외에도 이세훈, 김응기, 김영순 등 총 4명의 작가를 기록할 예정이다. 다큐 레이징은 영상 기록물인 다큐멘터리(Documentary)와 전시 기획을 뜻하는 큐레이팅(Curating)을 결합한 합성어이다.


특히 인상적이었던 대목을 옮기면 이렇다. ▷30대 중반이 되어서도 늘 나한테 하는 질문이, 제대로 보는 건 뭘까였다. 우리가 나무를 본다는 건, 줄기와 잎을 보는 것이다. 그런데 뿌리는 못 본다. 그런데 봤다고 할 수 있는가 하는 질문이 맴돌았다. 미술은, 작가는 근원에 대한 질문을 계속해야 한다. ▷1996년 ‘우리 시대의 초상’ 시리즈를 시작한다. 기후 위기와 환경에 대해 생각했다. 나름의 해법을 제시한 게, 내가 나무이고, 바람이고, 새라는 생각이었다. 궁극적으로 내가 너라는 생각에 닿았다. ▷1999년 ‘숲으로-수색’을 계기로 유화 작품을 안 하게 된다. 평화유지군이라고 하면서, 총 들고 평화 유지하는 게 무슨 의미가 있나 싶었다. ▷2000년 나이 오십에 접어들면서 경제적으로 궁핍해졌다. <부산일보> 연재소설 김영현의 ‘바람에게 물어봐’ 삽화를 그리기도 했다. ▷2004년 부산시립미술관 전시는 먹을 잔뜩 쓸 수 있는 전시였고 도전이었다. ▷2006년 ‘억새’. 청도 운문사 화단에서 억새를 발견했다. 저토록 대접해서 귀하지 않은 존재가 있겠는가 싶었다. 하물며 사람은 얼마나 대접하나 생각했다. ▷2022년 ‘물-결’. 표면을 보며 중심을 느껴보고 싶었는데 실패했다. 표면만 그리고 있었던 거다. 그리고 깨달았다. 작업 과정을 통해 의미를 생성할 수 있어야 하고, 그게 내가 살아야 하는 이유고 작업하는 이유이다.

이런 이태호 작가에게 화답이라도 하듯 오랜 미술지기인 정철교 작가가 말했다. “자기 길을 꼿꼿하게 걸어가는 모습이, 큰 변화가 있는 것도 아니고, 조금씩 틀어가며 자기가 해야 할 일, 하고 싶은 일, 할 수 있는 일을 꾸준히 해나가는 게 너무 보기 좋습니다.” 후배 이선경 작가도 “이태호 선생님 말씀을 들으면서 가슴 한쪽에 묵직한 뭔가가 꿈틀거리는 게 정말 좋은 시간이었다”고 말했다. 전시는 오는 10일까지이다. 한편 11월에는 부산 금정구 디오티미술관이 전관을 통틀어 이태호 개인전을 열 예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