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서진, 연극 첫 도전에 마지막 선언…“지금의 나를 연기 중”
“갱년기라 중년의 비애, 이해 완벽”
손 연출 “불평해도 연극 좋아하는 듯”
![‘바냐 삼촌’으로 데뷔 27년 만에 처음으로 연극에 도전하는 배우 이서진 [LG아트센터 서울 제공]](https://img4.daumcdn.net/thumb/R658x0.q70/?fname=https://t1.daumcdn.net/news/202604/08/ned/20260408095115624bdgo.jpg)
[헤럴드경제=고승희 기자] “너무 힘들어요. 후회하고 있습니다. (연극은) 이번이 마지막 작품이 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투덜대는 얼굴 위로 바냐가 겹쳤다. 데뷔 27년 만에 무대에 서는 배우 이서진. 그것도 안톤 체호프의 고전 ‘바냐 삼촌’이다. 캐스팅이 공개되자 업계 안팎에서 호기심과 기대가 컸다. 정작 주연 배우는 고개를 저었다.
이서진은 해마다 5월이면 찾아오는 LG아트센터 서울의 ‘연극’ 시리즈가 이번엔 이서진 고아성의 ‘바냐 삼촌’(5월 7일 개막)으로 돌아왔다. 서울 강남에서 마곡으로 이전한 2024년 전도연의 ‘벚꽃 동산’, 2025년 이영애의 ‘헤다 가블러’를 잇는 야심작이다.
이서진은 7일 오후 기자들과 만나 “처음엔 거절했다. 요즘 예능인으로 살고 있어 연기를 오래 쉬었기에 부담이 컸다”며 “주변의 권유와 스태프들의 열정을 보고 결정했는데, 이번이 마지막이길 기대한다”고 말해 폭소를 터뜨렸다. 예능 프로그램에서 워낙 ‘투덜이’ 캐릭터로 유명했지만, 그의 답변엔 ‘바냐 삼촌’으로 살아가고 있는 지금에 대한 고뇌가 묻어있었다.
체호프의 ‘바냐 삼촌’은 매부인 세레브랴코프 교수를 위해 평생을 헌신했지만, 남은 것은 허탈과 상실뿐인 바냐의 삶을 그린다. 삶의 허무와 환멸, 뒤늦은 후회를 안고 살아가는 바냐는 ‘여유의 아이콘’ 이서진과는 완전히 다른 인물로 보이지만, 기묘한 교집합이 포착된다. 불평과 냉소로 가득 차 있으면서도, 책임과 애정을 놓지 못하는 중년의 비애가 묻어난다.
이서진은 “바냐를 만나기 전부터 갱년기를 겪고 있어 중년의 비애와 바냐의 심경을 이해하는 것이 어렵지 않았다”며 웃었다. 그러면서 “사람들과의 관계, 지금 현대에서 느끼는 것과 비슷한 상황이 많다. 생소한 인물을 연기하기보다, 현대의 나를 연기한다는 생각으로 하고 있다”고 말했다. 다만 그는 “불평불만 가득한 바냐는 나와 달라 100% 연기로 커버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연출을 맡은 손상규는 이서진이 그간 보여왔던 독특한 캐릭터 때문에 그에게 러브콜을 보냈다. 그는 “저렇게까지 불평하면서도 열심히 한다는 것은 대단한 책임감”이라는 생각에서다.

손 연출가는 “투덜대고 불평불만을 가지면서도 책임감 있는 모습이 TV에서 보던 그대로였다”며 웃었다. 이서진은 온통 후회뿐이라고 말하지만 손 연출이 보는 그는 “코까지 헐어가며” 최선을 다하는 배우였다. “챙기는 것 같지 않으면서도 다 챙기고 악의 없는 농담들이 재밌어 연습실에서 많이 웃는다”는 손 연출은 “불평은 하지만 누구보다 열심히 연습한다. 연기하는 것도 연극도 좋아하는 것 같다”고 말했다.
바냐의 조카이자 극의 또 다른 중심축인 ‘소냐’ 역에는 배우 고아성이 낙점됐다. 고아성 역시 이번이 첫 연극 도전이다. 그는 “연극 무대와 배우들을 향한 선망과 존경심이 있었다”며 “이서진 선배님의 조카 역할을 언제 또 해보겠나 싶어 하게 됐다. 선배님은 후회한다고 하시지만 이렇게 다정하신 분인지 몰랐다. 열심히 연습하고 있다”며 기대를 당부했다.
평소 ‘다독가’로 유명한 고아성은 그간 원작 소설을 영화로 옮긴 작품의 단골 주인공이었다. 이번엔 고전. 특히 체호프의 희곡은 고아성이 오래도록 손에 쥐고 있던 작품들이다. 그는 “대본을 받고 ‘바냐 삼촌’을 다시 읽었다. 이 대사를 한 달여 동안 내 입으로 내뱉을 수 있다는 것이 감사했다”며 “고전을 읽을 때는 이것을 연기하겠다고 상상해 본 적이 없었는데, 지금 다시 읽으니 현재와 통하는 맥락과 위로의 지점이 있어 그대로 전달하려 한다”고 말했다.
언젠가는 다가올 개막일을 긴장 속에 기다리는 연극 연습 과정은 매일이 압박이다. 이서진은 “매일 규칙적으로 반복되는 생활이 가장 힘들다. NG 없이 한 번에 모든 걸 해내야 한다는 부담도 크다”며 “대체 ‘긴장감이 언제 없어지냐’고 물으니, ‘공연이 시작하면 없어진다’는 답을 들었다. 개막날은 오지도 않고 있다”고 말해 다시 한번 웃음이 터졌다.

19세기 러시아는 2026년의 무대에 올라도 동시대 감각을 잃지 않는다. 손 연출은 이번 ‘바냐 아저씨’를 전형적인 고전극의 틀에서 탈출시키려 했다. “체호프의 희곡은 슬픔과 희극이 동시에 존재한다”는 손 연출은 이서진의 건조한 유머 감각을 극에 적극적으로 녹여냈다.
손상규 연출은 이번 작품을 단순한 고전의 재현이 아닌 ‘현재의 이야기’로 끌어온다. 그는 “가족을 책임지느라 여행 한 번 못 가보셨던 아버지를 보며 그 인생을 내가 감히 어떻다고 함부로 말할 수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며 “마찬가지로 극 중 바냐가 우당탕거리며 실수하고 망신당하지만, 과연 그가 잘못 살았다고 누가 말할 수 있겠냐”고 반문했다.
그러면서 “나무마다 생김새가 다르고 굽었다고 욕하지 않듯 타인의 시선이나 비교 때문에 자신에게 너무 엄격할 필요는 없다”며 “남의 인생을 너무 쉽게 평가하고 상처 주는 시대에, 자기 삶에 조금은 관대해져도 좋다는 위로를 전하고 싶다”고 말했다.
교수 역을 맡은 배우 김수현은 “체호프는 사건 뒤에 무엇이 있는지에 관심을 가진 사람 같다. 벌어진 일보다 그것을 겪는 사람의 심정, 인간 내부에 관심이 많았던 것 같다”며 “질투, 욕심, 절망, 괴로움. 그게 요즘에도 똑같이 일어난다는 걸 느낄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공교롭게도 ‘바냐 삼촌’은 5월 말 국립극단 무대에도 오른다. 조성하·심은경이 낙점, ‘반야 아재’라는 제목으로 한국적 정서가 투영됐다. 이현정 LG아트센터 센터장은 “지금 시대가 바냐 삼촌을 불러내고 있는 게 아닌가 싶다”며 “누구나 살면서 잃어버린 길과 놓쳐버린 꿈이 있지만 ‘그래도 괜찮다’는 따뜻한 위로를 전할 것“이라고 했다.
생애 첫 무대에서 만난 고전은 이서진에게도 새로운 울림으로 다가왔다. 그는 “연습을 하며 이 고전이 우리 주변 사람들의 이야기라는 것을 체감하고 있다. 우리가 그동안 몇십 년째 만드는 것들이 희곡, 고전에서 온 이야기라는 것을 느끼는 중이다”며 “익숙한 상황들이 많은 만큼 모두가 공감할 수 있는 이야기가 될 것”이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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