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공지능기본법에 ‘경쟁’ 한 스푼 [이창훈의 경쟁법인사이트]

동네 치킨집 이야기를 해보자. 위생도 좋고, 가격도 투명하고, 사장님도 친절한 ‘착한 치킨집’이 하나 있다고 하자. 리뷰도 늘 별 다섯 개다. 그런데 그 치킨집이 장사가 잘되다 보니 동네로 공급되는 닭을 다 사들여버렸다. 다른 치킨집은 닭을 못 구해서 결국 문을 닫는다. 이 치킨집은 나쁜 짓을 한 것이 아니다. 너무 잘했을 뿐이다. 그런데 결과는 묘하다. 그 동네 치킨 소비자들의 선택권은 사라진다.
AI 시장도 이런 방향으로 흐를 수 있다. AI 경쟁은 흔히 “누가 더 똑똑한 알고리즘을 만들었느냐”의 문제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훨씬 복잡할 수 있다. 핵심은 세 가지다. 누가 더 많은 데이터를 가지고 있는가. 누가 더 많은 사용자를 모았는가. 누가 더 좋은 컴퓨팅 자원을 확보했는가.
데이터는 AI의 연료다. 많이 먹고, 다양한 것을 먹고, 질 좋은 것을 먹은 AI가 더 똑똑해진다. 번역 AI를 떠올려보자. 수십억 개 문장을 학습한 AI와 몇 백만 개만 학습한 AI가 같은 결과를 내기는 어렵다. 책을 천 권 읽은 사람과 열 권 읽은 사람이 같은 깊이로 말하기 어려운 것과 비슷하다. 더 중요한 점은, 데이터를 많이 가진 쪽이 다시 더 많은 데이터를 얻게 된다는 사실이다. 사용자가 많을수록 질문이 쌓이고, 피드백이 쌓이고, 그게 다시 성능으로 돌아온다. 데이터는 출발점이면서 동시에 도착점이다.
이러한 맥락에서 AI 사용자는 단순한 고객이 아니다. 사용자가 많아질수록 데이터가 더 쌓이고, 그 데이터로 AI는 더 좋아지고, 더 좋아진 AI는 다시 사용자를 불러온다. 좋은 AI → 많은 사용자 → 더 많은 데이터 → 더 좋은 AI. 이 구조는 혁신의 순환구조이면서도 다른 한편 쏠림의 순환구조다.
컴퓨팅 자원은 AI의 엔진이다. 아무리 좋은 데이터가 있어도, 그것을 돌릴 GPU와 서버와 전력이 없으면 무용지물이다. 최신 AI 모델 학습에는 막대한 비용이 들어간다. 이쯤 되면 경쟁은 기술 싸움이라기보다 체력 싸움에 가깝다. 아이디어는 누구나 낼 수 있지만, 그 아이디어를 천 번 실험할 수 있는 기업과 열 번밖에 못 해보는 기업의 승부는 대체로 뻔하다. 정부가 최근 발표한 ‘대한민국 인공지능 행동계획’에서 “인공지능 경쟁의 승패는 일차적으로 인프라 역량의 보유규모와 활용역량에 좌우된다”고 적시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제미나이]](https://img3.daumcdn.net/thumb/R658x0.q70/?fname=https://t1.daumcdn.net/news/202604/08/mk/20260408093009329jrwh.png)
문제는 현행 인공지능기본법이 이러한 AI 시장의 공정경쟁에 관한 구조적 이슈를 정면으로 다루고 있지 않다는 데 있다. 이 법은 AI가 “안전한가”, “투명한가”, “신뢰할 수 있는가”에 대해서는 꽤 좋은 방향들을 제시하고 있다. 하지만 AI 시장에서 “공정한 경쟁이 가능한가”라는 질문에는 조용하다. 실제로 이 법 제정 당시의 논의를 보면 중심축은 산업 진흥, 신뢰, 안전, 국가경쟁력이었고, 공정경쟁은 법의 전면에 놓이지 않았다.
예를 들어 공공 예산으로 만든 데이터라면 이야기는 비교적 단순하다. 세금으로 만든 데이터라면 특정 기업만 사실상 독점하는 구조보다, 일정한 기준 아래 더 넓게 활용할 수 있도록 하는 편이 자연스럽다. 세금으로 만든 도로를 특정 회사 트럭만 달리게 하는 것이 이상하듯, 공공재원으로 만든 학습 기반도 지나치게 편중되면 안 된다. 현행법도 학습용데이터 시책과 공공데이터 활용을 강조하고 있으니, 여기에 “공정한 접근환경”만 명시해도 방향은 크게 달라진다. 물론 민간 데이터는 좀 다르다. 기업이 투자해서 축적한 데이터를 무조건 열라고 하는 것은 무리다. 혁신 유인을 꺾을 수 있다. 그러나 그렇다고 모든 민간 데이터를 성역처럼 둘 필요도 없다. 중요한 것은 “모든 데이터를 열자”가 아니라, 데이터가 경쟁을 막는 벽이 되지 않게 하자는 데 있다.
둘째는 상호운용성이다. 이 말은 어렵게 들리지만 뜻은 단순하다. 갈아타기 쉽게 만들자는 것이다. 지금은 하나의 AI 서비스를 쓰기 시작하면 그 안에 머무르게 되는 경우가 많다. 설정을 다시 해야 하고, 기록을 옮기기 어렵고, 인터페이스를 새로 익혀야 한다. 그런데 서비스끼리 어느 정도 연결되고, 내가 쌓은 데이터를 더 쉽게 옮길 수 있다면 상황은 달라진다. 기업은 사용자를 붙잡아두는 경쟁이 아니라, 더 나은 서비스를 제공하는 경쟁을 하게 된다. 현행법 제14조는 이미 표준화를 다루고 있으니, 여기에 상호운용성과 전환가능성을 덧붙이는 것은 그리 무리한 일이 아니다.
셋째는 경쟁 영향이라는 기준을 추가하는 것이다. 지금까지 정책은 보통 이렇게 물었다. “안전한가?”, “유용한가?”, “보급을 늘릴 수 있는가?” 이제는 질문을 하나만 더 보태면 된다. “이 정책이 경쟁에는 어떤 영향을 미치는가?” 정부가 AI를 도입하거나, 인프라를 지원하거나, 데이터센터를 구축할 때 그 효과가 특정기업 쏠림을 심화시키는지, 아니면 새로운 기업의 시장 진입을 돕는지 한 번만 더 따져보자는 것이다. 이 질문 하나가 들어가면 정책은 단순한 지원책이 아니라 시장 구조를 설계하는 도구가 된다.
여기서 한 가지 중요한 해법을 더 보태고 싶다. 국가인공지능전략위원회 안에 ‘경쟁분과’를 따로 두자는 것이다. 이미 위원회는 법 시행 이후 역할이 커졌고, 지난 3월에는 10개 분과위원회, 2개 특별위원회, 1개 TF로 확대 개편됐다. 그런데 정작 AI 시대의 핵심 쟁점인 AI 시장에서의 공정경쟁 자체를 전담해서 다루는 분과는 보이지 않는다. 왜 경쟁분과가 필요할까. 이유는 간단하다. AI 시장의 경쟁 문제는 한 부처가 혼자 볼 수 있는 문제가 아니기 때문이다. 과기정통부는 산업을 보고, 공정위는 경쟁을 보고, 다른 부처들은 조달·데이터·클라우드를 본다. 그런데 AI 시장의 현실은 “기술”, “산업”, “경쟁”, “공공조달”이 한 냄비에 다 들어가 끓고 있다. 이런 문제를 지금처럼 나눠서 보면, 누구나 조금씩 보지만 아무도 전체를 보지 못하는 상황이 생긴다. 경쟁분과는 바로 그 사각지대를 메우는 장치가 될 수 있다.
우리는 이미 착한 AI를 만드는 데 많은 노력을 들이고 있다. 그것은 맞는 방향이다. 다만 착한 AI만으로는 부족하다. 아무리 착하고 유능한 AI라도, 시장이 외길이면 결국 소비자는 하나의 답만 듣게 되고 혁신의 속도는 느려진다. 혁신은 경쟁에서 나오고, 경쟁은 선택지에서 나오며, 선택지는 잘 설계된 시장에서 나온다.
중요한 것은 기술의 성능만이 아니다. AI가 경쟁하는 환경이, AI의 미래를 결정한다. 착한 AI를 만드는 데서 멈출 이유는 없다. 그 AI들이 서로 공정하게 경쟁할 수 있는 시장까지 법에 담아야 한다. 이제는 인공지능기본법에 ‘경쟁’ 한 스푼을 추가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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