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학창시절 물심양면으로 챙겨주신 사랑 잊지 못합니다[그립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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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조카 목소리가 다급하게 들려왔다.
혼인 예물로 받은 것을 나에게 주는데도 형수님은 곁에서 빙긋 웃기만 하셨다.
지금도 시계를 생각하면 그때 형님 모습이 생각나고, 유년 시절의 아버지 모습이 떠오른다.
응급실에 도착했을 때 중형님은 눈은 뜨고 있었으나 의식이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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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조카 목소리가 다급하게 들려왔다.
“숙부님, 아무래도 숙부님이 내려오셔야 할 것 같아요. 아버지가 누구를 기다리시는지 일주일 넘게 눈을 뜨고 계세요.”
고속열차를 타고 달리는데 반세기 전 추억들이 달리는 기차 밖 풍경처럼 동영상으로 이마를 스친다.
나는 유년 시절에 부친과 사별하고 중형님 댁으로 갔다. 학교가 가깝다는 이유였다. 형님 서재엔 “盛年不重來 一日難在晨(성년부중래 일일난재신)”이라는 표구가 걸려 있었다. 좋은 시절은 거듭 오지 않고, 하루에 새벽은 두 번 오지 못한다는 뜻이다.
하루는 등굣길에 형님이 차고 있던 ‘부로바’ 시계를 내 손목에 채워 주셨다. 혼인 예물로 받은 것을 나에게 주는데도 형수님은 곁에서 빙긋 웃기만 하셨다.
지금도 시계를 생각하면 그때 형님 모습이 생각나고, 유년 시절의 아버지 모습이 떠오른다. 내가 상장을 받아 와도 말씀 한마디 없이 물끄러미 바라만 보시던 아버지. 친구들과 서리하다 밤늦게 귀가할 때도 사랑(舍廊)에서 큰기침 한 번으로 꾸중하시던 나의 아버지. 아버지는 참으로 무뚝뚝한 편이었다. 집안 내력일까, 나도 내 아이들에게 표현이 매우 서툴다.
응급실에 도착했을 때 중형님은 눈은 뜨고 있었으나 의식이 없었다. 아들같이 챙겨 준 막냇동생이 손목을 잡아도 마찬가지였다. 손은 아직 따뜻했다. 형님은 며칠째 눈을 뜨고 주무신다고 했다. ‘누가 보고 싶어 떠나지 못하실까?’ 장조카를 쉬게 하고, 형님 곁에서 하룻밤을 보냈다. 그 밤, 나의 학창 시절에 물심양면 챙겨 주신 은혜와 사랑을 회상하며 형수님과 조카들을 잘 챙기겠다고 다짐했다.
이른 아침 퉁퉁 부은 내 얼굴을 본 형수님은 나를 위로하시고, 나는 형수님을 위로했다. 그러고는 주말에 다시 들르겠다고 약속하고 응급실을 나섰다.
삽상한 새벽 공기를 마시며 Y 병원 앞 언덕을 내려오는데 형님 덕분으로 다니던 중고교 담장이 정겹게 보였다. 나도 모르게 발길 닿는 대로 교문에 들어서자 교목(校木)인 백수십 년 된 은행나무들이 마치 사열하듯 물든 이파리들을 떨구며 반겨 주었다.
학교 역사(歷史)와 함께한 은행나무들을 껴안아도 보고 곱게 물든 이파리 몇 개를 주워 책갈피에 꽂았다. 아버지가, 내가, 내 큰아들이 꿈을 키우던 상아탑이다. 마침 교장으로 있던 고교 후배가 고향에 내려오거든 꼭 한 번 들르라고 하던 생각이 나서 전화를 했더니 아쉽게도 지난여름에 퇴임했다고 하였다.
나의 큰아들을 가르쳤기에 아들 근황도 전해 주었다. 내 아들이 고교 2학년 때 ‘아버지’란 시를 써서 도내 고교백일장에서 교육감상을 받아 기억이 선하다고 했다.
100여 년 전 미국인 리처드슨 선교사가 기증한 대강당에 들어갔다. 현제명 선생이 음악 교사로 재직할 때 호남 최초로 합창단을 만들어 연주회를 했다는 대강당 무대는 반세기 전 내가 다니던 그때 그 모습 그대로였다.
마침 형님 손윗동서가 음악 교사로 계셨는데 나의 형님만큼이나 인자하셨다. 방과 후엔 음악실로 불러 피아노를 가르쳐 주고 어느 땐 음악 연주회 초대권도 주셨다. 우리도 합창할 때가 있었는데 그때 학우들 음성이 들리는 듯하여 ‘동무 생각’을 불러 보았다. 반세기 전이 엊그제 같았다.
김진모(금아피천득선생기념사업회 사무총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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