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럼프만 물러나면 끝? 우방·상호주의·다자주의… 글로벌 패러다임 깨졌다[월드 타이드, 사상의 썰물과 밀물]
MAGA 중심 트럼프 2기, ‘파괴적 변곡점’ 직면
민주주의는 관용·미덕 발휘할 때만 지속 가능
이젠 그 미덕을 약점으로 규정하고 자기이익 관철
현재의 사태, 트럼프 개인 때문만은 아냐
극단적 양극화 계속되고, 상호관용 무너진 영향

“싸우자 싸우자 싸우자(Fight Fight Fight).” 2024년 7월 13일 미국 펜실베이니아주(州) 버틀러에서 대선 유세 도중 총격을 당한 도널드 트럼프 공화당 후보가 피투성이가 된 얼굴로 불끈 쥔 주먹을 치켜들었다. 충격과 공포에 질렸던 지지자들은 “USA(미국), USA, USA”를 연호하는 것으로 화답했다. 뉴욕타임스가 ‘역사에서 잊히지 않을 이미지를 본능적으로 만들었다’고 평가한 이 장면은 ‘미국 우선주의(America First)’를 기치로 건 트럼프가 또다시 미국 대통령에 당선되는 발판이 됐다.
◇“파괴적 변곡점”… 트럼피즘 왜 나타났나 = 로널드 레이건 등 미국 대통령의 과거 피격 사례를 보자. 총격을 당하더라도 유머로 되받거나 상대 세력을 포용하는 메시지를 내는 것이 미덕이다. 속내는 다를지라도, 공공의 리더로서 관용과 포용을 내세우라는 문화적 강요다. 그런데 “싸우자”라니. 트럼프는 구사일생의 순간을 지지층 결집을 위한 무기로 삼았다. 탁월한 정치 감각일까. 피할 수 없는 시대적 흐름일까.
세계 석학들은 둘 다로 봤다. 저명한 학자 8명이 트럼프 2기 정부 출범 직전인 2024년 12월, 트럼프 당선을 전제로 저서 ‘초예측 트럼프 2.0 새로운 시대’를 공동 발간했다. 이들은 트럼프가 대통령이 되면 미국이 더 독재적인 나라가 되고, 세계가 혼란스러워지며, 분열이 가속화될 것이라고 입을 모았다.
‘트럼피즘’은 트럼프가 두 차례 미국 대통령에 당선되는 과정과 대통령 취임 전후 생겨난 현상 및 이념을 의미하는 신조어다. ‘미국을 다시 위대하게(MAGA)’라는 캐치프레이즈로 압축되는 보수주의·포퓰리즘·대중영합주의·내셔널리즘·보호무역주의 등을 포괄하면서 하나의 사조로 떠올랐다. 석학들은 ‘트럼프 2.0’의 핵심 키워드로 ‘불확실성’을 꼽았다. 어려운 말로 포장했지만 어떻게 흘러갈지 정확히 모르겠다는 실토다. 대신 트럼프가 미국 대통령에 취임한 시점에 ‘시대의 파괴적 변곡점’이라고 좌표를 찍었다. 대대적인 변화가 시작됐다는 경고다.
그런데 ‘트럼피즘’의 배경이 트럼프만인 것은 아니라고 한다. 세계적 석학인 제프리 삭스는 “미국이 주도하는 세계라는 생각은 완전히 시대에 뒤떨어진 위험한 발상이다. (이미) 깊은 당파 간 대립으로 시장에 불확실성이 커질 우려가 있다”며 “민주당 후보가 대통령이 되든 트럼프가 대통령이 되든 새로운 지정학적 질서가 필요하다”고 진단했다.
◇각자도생의 시대… 민주주의가 무너진 결과 = 프랜시스 후쿠야마가 포스트 냉전 시대를 ‘인류사에서 가장 진화된 이데올로기인 미국의 자유주의 이념이 공산주의에 최종적으로 승리했다. 역사의 종언이다’라고 정의했을 때, 그 중심에는 월등한 군사력과 경제력으로 세계 경찰국가를 자임한 미국이 있었다. 하지만 트럼프의 지지자들은 정반대를 가리키며, ‘민주주의(정치)’도 ‘신자유주의(경제)’도 각자 알아서 하자고 한다. 거대 시장과 힘에 기반한 보호무역주의를 내세우며 리더가 우방 국가도 거침없이 압박하기를 원한다. 트럼프는 정당이든 타국이든 상대 진영을 공존의 대상이 아닌 ‘섬멸해야 할 적’으로 규정하면서 모든 수단을 동원해 이익을 관철하는 모습도 보인다. 대외적 ‘미국 우선주의’와 대내적 ‘편 가르기’ 전략에 상호주의를 기대했던 상대편은 속수무책이다. 궁극적으로는 상호협력이 생존과 국가발전에 유리하다는 글로벌 패러다임 자체를 흔들고 있다.
미국 하버드대 정치학과 교수 스티븐 레비츠키와 대니얼 지블랫은 저서 ‘어떻게 민주주의는 무너지는가’에서 이러한 변화의 원인을 분석했다. 독재자가 될 가능성이 다분한 포퓰리스트들이 어떤 조건에서 리더로 선출되는지, 선출된 독재자들이 어떻게 합법적으로 민주주의를 파괴하는지를 자세히 다룬 것이다. 그러면서 “트럼프의 등장으로 전 세계 민주주의가 중대한 도전 과제를 맞았다. 냉전 이후 처음으로 민주주의 수호자 역할을 저버렸다”며 “트럼프 이후 미국이 더욱 뚜렷한 양극화 사회로 접어들고 제도 전쟁이 치열해질 것”이라고 진단했다.
이들 역시 원인을 트럼프 개인에게서 찾지는 않았다. 한 정당이 상대 정당을 하나의 경쟁자로 인정하는 ‘상호 관용(mutual toleration)’, 그리고 권리를 신중하게 행사하는 ‘자제(forbearance)’가 도외시되는 극단적 양극화가 민주주의를 병들게 했다고 강조했다. 이러한 흐름은 냉전 이전인 2차 세계대전 이후부터 차츰차츰 진행됐지만, 절제하지 않는 포퓰리스트를 리더로 세울 때 더욱 두드러지게 된다.
◇모든 것의 무기화, 트럼피즘의 연료 = 영국의 안보 전문가 마크 갈레오티의 저서 ‘모든 것의 무기화(The Weaponisation of Everything)’에 트럼프 현상을 설명할 또 다른 단초가 있다. 18세기 군사 사상가 클라우제비츠는 일찍이 전쟁은 본질적으로 정치적인 목적을 위한 폭력적인 수단(전쟁의 정치화)이므로, 만약 전쟁의 목적이 불분명해지면 정치가 자신의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전쟁의 수단인 적대감을 내부로 가져오게 된다(정치의 전쟁화)고 말했다. 갈레오티는 ‘전쟁 같은 정치’와 ‘정치 같은 전쟁’이 현대사회에서 맞물리기 시작하는 메커니즘에 대해 분석했다. 총칼뿐만 아니라 경제·정보·문화·인프라 등 일상의 모든 요소가 무기로 활용되며, 공급망 기술·가짜 뉴스(허위 정보)·이민자·코로나19 백신 등 문화적·경제적 수단들이 정치적 목적을 위해 동원되는 경향이 짙어진다는 것이다. 이 과정에서 상대를 굴복시켜야 하는 전쟁과 상대와 공존해야 하는 정치의 경계가 불분명해지면 승자독식 구조 역시 자연스럽게 정당화된다. 트럼프 역시 적을 직접 타격하기보다는, 상대의 내부 균열을 조장하거나 상대 국가의 사회 시스템을 장악하는 방식을 통해 우위를 점한다는 평가를 받는다. 정치적 라이벌을 타도해야 할 원수처럼 대하고, 생각이 다른 집단을 적으로 취급하면서 극단 대립을 부추긴다는 비판에 직면해 있다. 미국-이란 전쟁은 결국 라이벌 간 대립이 상호 불신 속에 극단으로 치닫고, 정치와 전쟁의 경계가 불분명해지면서 정체를 드러낸 트럼피즘의 최악의 결과라고 할 수 있다.
■ 광인 출현? ‘룰’ 변화
“오늘 밤 한 문명 전체가 멸망할 것.”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8일 ‘2주간 공격 중단’을 전격 선언하기 직전까지 소셜미디어 트루스소셜에 이란을 향해 초강경 압박 메시지를 뱉었다. 자신이 정한 시한(미국 현지시간 7일 오후 8시)까지 이란이 호르무즈 해협을 개방하지 않으면 핵심 인프라를 초토화시키겠다고 압박했다. 막말도 서슴지 않는다. “지옥문이 열릴 때까지 48시간 남았다(4월 4일)” “미친놈들아 호르무즈 해협을 당장 개방하라(4월 5일)”며 이란과 치킨게임을 벌이는 사이 글로벌 경제지표와 미국 국내 지지율이 요동쳤다.
미국은 지난 2월 28일 선전포고 없이 대이란 전쟁을 개시했다. 게임이론에 따르면 트럼프의 행보는 극단적 치킨게임으로 항복받으려는 전략이나 광인 전략으로 분석된다.
전문가들은 ‘트럼프라는 독특한 리더십의 출현’이 아니라 ‘미국이라는 거대 체제의 거시적 변화’로 본다. 손열 동아시아연구원 원장은 공동 저서 ‘트럼프의 귀환, 미국의 미래’에서 “미국이 지구 거버넌스에 적극적으로 참여하는 대신 국가주권을 강조하며 물질적 이익을 최우선시하는 외교 정책을 보일 것”이라고 전망했다. 그러면서 “국력이 쇠퇴하고 있는 미국이 공공재 제공이라는 패권적 책무를 감경하면서도 패권적 지위가 주는 특권은 유지하려고 하는 것”이라고 분석했다.
국제 체제 변화가 약소국에는 재앙이라는 우려도 나온다. 슬라보예 지젝은 비영리 미디어 ‘프로젝트 신디케이트’에 게재한 칼럼에서 “인권을 보장하는 복잡한 규칙이 붕괴되고 있다. 순수한 경제적·군사적 힘만이 중요한 잔혹한 신세계”라며 “인권이나 주권 존중과 같은 가면이 벗겨졌다. 작은 나라라면 두려움 속에서 살아야 한다는 사실을 받아들여야 한다”고 꼬집었다.
트럼피즘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정치 철학과 통치 스타일을 집약한 우파 포퓰리즘 체제를 뜻하는 말. 엘리트 집단에 반대하는 반(反)기득권 정서를 동력으로 삼으며, 소외된 백인 노동자층의 분노를 조직화한 정치·사회적 현상으로 평가받고 있다.
미국 우선주의
미국의 국익을 국제 협력이나 타국의 이익보다 우선시하는 정치·외교 원칙. 19세기 고립주의에 뿌리를 둔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행정부에서는 자국민 보호 강화, 보호무역, 이민 통제, 동맹국 방위비 증액 요구 등의 형태로 나타나고 있다.
강한 기자
Copyright © 문화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 아들 4000만원 차 탓에 기초연금 탈락? 알고보니
- 배도 안 나오고 생리도 했는데…화장실 갔더니 출산[아하영국]
- 내일 ‘운명의 날’… 美 “핵포기 서약” 요구에 이란 “영구종전” 제시
- [속보]청주서 외국인 5명이 대낮에 납치…용의자 추적중
- “밥 안먹어도 배부르다” 400만 개미들 환호…‘20만전자’ 재탈환
- “전 가구에 10만원씩 더” 420억 긴급추경 성남시…정부 지원금과 별도
- [속보]꼭꼭 숨은 모즈타바, 위중한 상태?…“의식 불명, 통치 불가”
- “韓서 전쟁?” 진짜였네…이란전쟁, 韓이 최대 피해국 전망
- [속보]추미애 민주 경기지사 최종 후보…한준호·김동연 탈락
- [속보]외노자 항문에 ‘에어건’ 쏜 공장대표…李 “진상 철저 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