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케데헌' 5억뷰 이면엔...K콘텐츠, 'IP 주권' 시험대 [엔터코노미]

이해정 기자 2026. 4. 8. 09: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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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공=넷플릭스

콘텐츠 산업을 떠올리면 많은 이들이 히트작을 이야기하지만, 정작 기업과 산업의 성패를 가르는 기준은 따로 있다. 단일 흥행이 아닌, 그 이후에도 돈을 만들어내는 구조. 다시 말해 IP(지식재산권)를 중심으로 한 지속적인 현금 흐름이다.

최근 문화체육관광부(문체부)가 발표한 '2026 해외한류실태조사(2025 기준)'에 따르면 외국인들은 한국의 문화콘텐츠를 인식하는 가장 중요한 요인으로 '한국 요소가 반영된 콘텐츠'를 꼽았다. 이어 '한국 사람이 다수 등장', '한국이 배경'이 뒤를 이었다. 반면 '한국 감독 및 제작사에서 제작한 콘텐츠'는 4위에 그쳤다. 이는 한류를 소비하는 글로벌 이용자들이 누가 만들었는지보다 무엇을 담았는지, 즉 콘텐츠의 정체성을 더 중요하게 여긴다는 의미다.

문제는 여기서 발생한다. 콘텐츠의 내용은 한국적이지만, 그 권리, 즉 IP는 한국에 남지 않는 경우가 늘어나고 있기 때문이다. 대표적인 사례가 넷플릭스 애니메이션 영화 '케이팝 데몬 헌터스'('케데헌')다. 작품은 아이돌 걸그룹이자 악령 사냥꾼인 헌트릭스가 악령 보이그룹 사자 보이즈에 맞서 싸우는 이야기를 그렸다. 지난해 6월 넷플릭스에서 시즌1이 공개된 뒤 글로벌 누적 시청 5억회를 넘기며 역대 넷플릭스 콘텐츠 최고 흥행을 기록했고, 극 중 헌트릭스가 부른 노래 '골든(Golden)'은 빌보드 싱글 차트 '핫 100'에서 8주간 1위에 오르는 등 전 세계 최고 인기곡으로 사랑받았다.

제공=넷플릭스, 소니 픽처스

이를 두고 K콘텐츠의 외연을 넓혔다는 평가가 나오지만, 이 축배를 누가 터뜨릴지를 생각해 보면 어딘가 석연치 않은 부분이 있다.

'케데헌' IP는 넷플릭스와 소니 픽처스가 공동 보유하고 있으며, 대표곡 '골든'의 권리는 소니 뮤직 엔터테인먼트가 가지고 있다. 제작 과정에 6~700명의 스태프가 참여했고 이 중 한국 인력이 적지 않지만, 작품을 통해 발생하는 2차 사업과 부가 수익은 해외 기업에 귀속된다. 한국 인력이 참여해 한국 문화를 기반으로 한 콘텐츠를 만들었음에도, 권리와 장기 수익은 해외 기업이 가져가는 구조인 셈이다.

더 큰 문제는 한국 기업이 만든 콘텐츠 IP도 글로벌 기업에 넘어가는 사례가 늘고 있다는 점이다. 한국은행이 발표한 '2025 지식서비스 무역통계(잠정)'에 따르면 지난해 콘텐츠 수출은 112억9000만달러로 전년 대비 6억5000만달러 증가했다. 드라마·영화가 포함된 방송·영상 부문 역시 16억1000만달러로 소폭 증가했다.

표면적으로는 흑자지만, 이는 단순 수출 실적일 뿐 IP를 장기적으로 활용해 발생하는 부가가치까지 반영한 것은 아니다. 다시 말해 단기적인 수익은 확보했지만, 이후 이어질 수 있는 장기적인 수익 파이프라인은 상당 부분 내어줬다는 것이다. 실제 글로벌 OTT 플랫폼들은 제작비와 일정 수준의 수익을 보장하는 대신, 전 세계 독점 방영권과 2차 저작물 작성권 등 영상 콘텐츠에 대한 모든 권리를 귀속 받는 구조를 취하고 있다.

이 같은 구조가 고착화될 경우 문제는 더 심각해진다. 제작사는 안정적인 제작비 회수를 위해 IP를 글로벌 플랫폼에 넘기고, 플랫폼은 이를 기반으로 협상력을 키우는 구조가 반복된다. 결국 콘텐츠를 만드는 주체는 점점 '하청 제작자'로 전락하고, 유통과 IP를 쥔 해외 플랫폼 기업이 산업의 주도권을 장악하는 결과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 재주는 한국인과 K콘텐츠가 부리고, 수익은 해외 기업이 가져가는 흐름이 굳어진다는 이야기다.

제공=CJ ENM

이 지점에서 국내 기업 중 선제적으로 대응에 나선 곳이 CJ ENM이다. CJ ENM은 IP 확장 전담 조직을 운영하며 콘텐츠를 굿즈, 팝업스토어, 공연, F&B 등 다양한 2차 사업으로 연결하고 있다. 하나의 작품을 완결된 결과물이 아니라 '확장 가능한 자산'으로 바라보고 있는 것이다.

CJ ENM이 'IP 주권'이라는 개념을 강조하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단순히 콘텐츠를 제작하는 데 그치지 않고, 그로부터 파생되는 권리와 수익 구조를 지키겠다는 의미다. OTT 자회사 티빙이 일본 디즈니+, HBO Max(아시아태평양 17개 지역)에 진출할 때, 플랫폼 자체가 통째로 입점하는 '숍인숍(Shop-In-Shop)' 방식을 택한 것도 같은 이유다. 내부 관계자는 머니투데이방송 MTN에 "'IP 주권'을 확보하고 있으면 콘텐츠가 성공했을 때 굿즈, OST, 팝업 스토어 등 다양한 부가 사업을 진행할 수 있다. 판권을 넘기면 흥행해도 남 좋은 일에 그치는 경우가 많은데, CJ ENM이 제작하고 해외 플랫폼 내 티빙관에서 공개하는 구조를 구축하게 되면 해외에서 새로운 비즈니스 모델을 발굴할 수도 있을 것"이라고 밝혔다.

콘텐츠 산업의 경쟁력은 더 이상 얼마나 잘 만드느냐에만 달려 있지 않다. 그 콘텐츠를 통해 발생하는 권리를 누가 쥐고, 얼마나 오래 활용하느냐가 핵심이다. IP를 확보하지 못한 흥행은 일회성 성과에 그치지만, IP를 쥔 콘텐츠는 시간이 지날수록 새로운 수익을 만들어낸다. 결국 질문은 명확하다. 우리는 콘텐츠를 잘 만드는 제작자에 머물 것인가, 아니면 IP를 확보해 장기적 수익 구조를 설계할 수 있는 산업의 중심으로 나아갈 것인가.

이해정 머니투데이방송 MTN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