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교육은 막고, 조기교육은 강화? 엇갈린 정책 신호가 영유아 교육을 흔든다

칼럼니스트 김영명 2026. 4. 8. 0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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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명의 아이들이 행복한 세상] 영유아 교육은 ‘더하기’가 아니라 ‘바로 세우기’

정부가 최근 영어유치원의 레벨테스트 등 과도한 사교육을 규제하는 법안을 추진하며, 영유아 사교육 문제에 대한 적극적인 개입 의지를 보였다. 이는 영유아 시기부터 시작되는 과열된 경쟁과 선행학습을 완화하려는 점에서 긍정적인 신호로 평가할 수 있다.
  
이번 대책에는 이른바 '4세·7세 고시'로 불리는 레벨테스트를 전면 금지하고, 강사가 주도하는 주입식 인지교습을 규제하는 내용이 포함되어 있다. 특히 36개월 미만 영아에 대해서는 인지교습을 전면 금지하고, 3세 이상 유아에 대해서도 하루 3시간, 주 15시간 이내로 제한하는 방안이 제시되었다. 
  
그러나 이러한 규제가 실제 현장에서 어떻게 받아들여질 것인가에 대해서는 우려의 목소리도 적지 않다. '3시간 제한'이라는 기준이 오히려 "3시간까지는 학습이 가능하다"는 신호로 해석될 수 있기 때문이다. 이 기준이 상한선이 아니라 일종의 '허용 기준'으로 작동할 가능성이 제기되는 것이다.  

정부가 최근 영어유치원의 레벨테스트 등 과도한 사교육을 규제하는 법안을 추진하며, 영유아 사교육 문제에 대한 적극적인 개입 의지를 보였다. 이는 영유아 시기부터 시작되는 과열된 경쟁과 선행학습을 완화하려는 점에서 긍정적인 신호로 평가할 수 있다. ⓒ베이비뉴스

◇ 사교육 억제와 조기교육 확대, 정책의 자기모순
  
그런데 더 큰 문제는 정부는 사교육을 억제하는 동시에 공교육 내에서 '부모의 요구를 반영한 교육 강화'라는 이름으로 조기교육 성격의 정책을 확대하고 있다는 것이다. 
  
대표적인 사례가 '5세 이음교육'이다. 정부는 초등학교 적응을 돕기 위한 취지로 이를 강조하고 있지만, 현장에서는 이미 다양한 방식으로 초등 적응 지원이 이루어지고 있다. 입학 전 초등학교 방문 및 교실 체험, 어린이집이나 유치원을 졸업한 졸업생과의 만남, 일과나 화장실 사용, 책상 배열 등 환경 변화 안내 등... 이러한 활동은 유아의 발달 수준에 맞게, 놀이와 경험 중심으로 충분히 운영되어 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5세 이음교육'을 별도의 정책으로 강조하면서 '5세는 준비해야 하는 시기'라는 메시지를 강화하고 결과적으로 부모의 불안과 조기교육 욕구를 자극하는 효과를 낳고 있다. 이는 교육부의 의도와 달리, 사교육을 억제하겠다는 정책 방향과 정면으로 충돌하는 것으로 여겨진다. 

◇ 독서교육 강화, 영유아 발달에 맞는 접근인가
  
정부가 강조하는 또 다른 축은 '독서교육'이다. 문해력의 중요성 자체를 부정할 수는 없다. 그러나 문제는 시기와 방식이다. 영유아기는 독서를 강조하기보다, 감각과 운동 경험을 바탕으로 세상을 탐색하고, 안정적인 애착과 정서를 형성하며, 타인과의 상호작용 속에서 사회성을 키워가는 데 초점이 맞추어져야 하는 시기이다. 이 과정에서 아이들은 놀이와 경험을 통해 자연스럽게 사고의 기초와 문제해결의 토대를 형성하고, 흥미를 바탕으로 한 집중과 동기 역시 점차 발달해 나간다. 
  
이러한 발달의 원리는 미국 국립과학아카데미가 발간한 From Neurons to Neighborhoods(2000) 보고서를 비롯해, 이후 하버드 아동발달센터와 American Academy of Pediatrics(미국소아과학회)의 연구들에서도 공통적으로 강조되고 있다. 영유아기에는 직접적인 경험과 사람과의 상호작용이 발달의 중심이 되어야 한다고 권고하고 있는 것이다. 따라서 영유아기에 독서를 '교육'의 형태로 강조하는 접근은, 발달의 흐름을 충분히 고려하지 않을 경우 오히려 교육의 중심을 잘못 설정할 위험이 있다.

◇ 방과후 특성화 프로그램 확대, 현장은 이미 과포화 상태
  
세 번째 문제는 방과후 프로그램 활성화다. 현재 현장은 이미 특별활동 및 특성화 프로그램 비중 증가, 기관 간 경쟁으로 인한 특별 프로그램 과잉, 놀이 중심 교육과정의 약화 등의 구조적 문제를 안고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정부가 방과후 프로그램을 추가로 개발·보급하고, 이를 기존의 '1일 1개 1시간 이내' 기준과 별도로 운영할 수 있도록 할 경우, 이는 사실상 특별활동 시간을 확대하는 결과를 낳을 수 있다. 이는 "불에 기름을 붓는 것"과 같다. 결과적으로 아이들의 일상은 더 분절되고, 놀이와 탐색의 시간은 더 줄어들 것이다. 이는 영유아기 교육의 핵심인 놀이와 경험 중심의 교육과정과 분명히 배치되는 흐름이다.

◇ 지금 필요한 것은 '추가'가 아니라 '정착'이다 
  
2019 개정 누리과정에서는 영유아 중심‧놀이 중심의 경험 기반 교육이 분명하게 제시되었다. 그러나 코로나 시기를 거치고, 이후 원아모집 경쟁이 심화되면서 이 교육과정은 아직 현장에 충분히 안착되지 못한 상태다. 지금 필요한 것은 새로운 정책이나 프로그램을 추가하는 것이 아니라, 기존 교육과정을 충실히 실행하고 안정적으로 정착시키는 일이다.

◇ AI 시대, 영유아 교육의 방향은 '조기학습'이 아니라 '뇌의 기초 형성'이다
  
뇌과학적으로 보면, 영유아기는 감각과 운동을 통해 세상을 경험하며 신경망의 기초가 만들어지는 시기이다. 아이가 만지고, 움직이고, 반복적으로 탐색하는 과정 속에서 뇌의 연결은 점차 촘촘해지고, 이후 학습의 기반이 되는 기본 회로가 형성된다. 여기에 더해, 안정적인 애착과 정서적 경험은 뇌 발달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친다. 정서적으로 안정된 상태에서 아이는 주변을 탐색하고 새로운 시도를 할 수 있으며, 이러한 경험이 쌓이면서 스스로 조절하고 계획하는 힘, 즉 전두엽의 기능이 점진적으로 발달하게 된다.
  
즉, 영유아기의 발달은 특정 지식을 미리 배우는 과정이 아니라, 몸과 감각, 정서와 관계, 놀이와 경험이 유기적으로 연결되면서 뇌의 구조 자체를 형성해가는 과정이다. 이러한 토대가 충분히 마련될 때 비로소 이후의 학습이 원활해지며, 그 위에서 지속적인 성장과 발달이 이루어질 수 있다.
  
또한 놀이와 상호작용은 단순한 활동이 아니라, 사고와 행동을 조직하는 능력을 키우는 핵심적인 과정이다. 또래와의 놀이, 교사와의 상호작용 속에서 아이는 자신의 행동을 조절하고, 타인의 반응을 이해하며, 다양한 상황에 맞게 대응하는 경험을 반복한다. 이러한 경험이 축적되면서 이후 학습의 핵심이 되는 실행기능과 문제해결의 기초가 형성된다.  
  
아이들은 몸을 움직이며 주변을 탐색하고, 일상 속 다양한 어려움을 스스로 시도하며 풀어보고, 타인과의 관계 속에서 감정을 나누고 조율하며, 흥미를 느끼는 활동에 몰입하고 반복하는 과정 속에서 비로소 이후의 학습과 문제해결의 토대가 되는 뇌의 구조를 형성해 나가는 것이다. 

현재의 영유아중심‧놀이중심 교육과정이 현장에 충분히 안착되지 못한 상황에서, 부모의 요구를 수용한다는 명분으로 추가적인 요소들을 확대하는 것은 교육의 중심을 흐릴 위험이 있다. ⓒ김영명

◇ 정책은 부모의 불안을 따라갈 것인가, 방향을 제시할 것인가
  
지금의 정책은 부모의 요구를 반영한다는 명분 아래, 조기교육의 요소를 공교육 안으로 끌어들이고 있다. 그러나 공교육의 역할은 불안을 따라가는 데 있지 않다. 발달에 맞는 기준을 제시하고, 사회 전체의 방향을 바로잡는 데 있다.
  
물론 정부가 영유아의 발달을 고려하지 않은 채 지식 습득 위주의 교육을 확대하려는 것은 아닐 것이다. 그러나 사교육과 조기교육이 이미 과열되어 있는 현실을 고려할 때, 정책은 매우 신중하게 설계되어야 한다. 자칫 잘못된 신호를 줄 경우, 부모의 불안을 더욱 자극하고 조기교육을 정당화하거나 강화하는 결과로 이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
  
더욱이 현재의 영유아중심‧놀이중심 교육과정이 현장에 충분히 안착되지 못한 상황에서, 부모의 요구를 수용한다는 명분으로 추가적인 요소들을 확대하는 것은 교육의 중심을 흐릴 위험이 있다. 지금 필요한 것은 왜곡된 곁가지가 무성하게 자라지 않도록 중심을 바로 세우는 일이다.
 
◇ 영유아 교육은 '더하기'가 아니라 '바로 세우기'다 
  
사교육 규제는 올바른 출발이다. 그러나 그 다음 방향이 흔들리고 있다. 지금 필요한 것은 5세 이음교육 확대가 아니라 영유아의 발달에 맞는 경험 설계이며, 독서교육 강화가 아니라 감각·운동‧정서·사회성 기반의 강화이고, 방과후 프로그램 확대가 아니라 놀이 시간의 확보다. 그리고 무엇보다 영유아의 뇌 발달에 기반한 교육의 재정립이다. 정책이 이 기준 위에 설 때, 비로소 사교육 문제도 근본적으로 해결될 수 있다.

*칼럼니스트 김영명은 영유아교육·보육 현장과 학계를 오가며 30년 가까이 연구와 실천을 이어온 아동 보육·교육 전문가다. 국공립 어린이집 원장을 비롯해 중앙보육정보센터, 인천광역시 보육정보센터 센터장을 역임하며 정책과 현장을 두루 경험했다. 현재 영유아 권리 존중 단체 '아이들이행복한세상' 공동대표로 활동하며, 베이비뉴스 칼럼을 통해 아이의 일상과 권리를 중심에 둔 보육·교육 정책과 현장의 목소리를 전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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