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프타도 NCC도 없다…그래서 버틴다’ 금호석유화학 ‘역설의 생존법’

안옥희 2026. 4. 8. 06: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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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즈니스 포커스]

금호석유화학 여수 고무2공장. 사진=금호석유화학

나프타도 없고 NCC(나프타분해설비)도 없다. 그런데 살아남는다. 전례 없는 위기 상황에서 ‘나 홀로 승자’로 굳어지는 모양새다.

글로벌 석유화학 업계가 중동발 전쟁 리스크와 중국발 공급과잉이라는 퍼펙트 스톰에 직면해 생산 라인을 멈춰 세우는 가운데 금호석유화학의 독특한 사업 구조가 위기 시대의 강력한 내진 설계로 재평가받고 있다.

 불가항력 도미노, 금호만 무풍지대?

나프타 가격은 이란 사태가 본격화된 지난 2월 말 톤당 633달러에서 3월 말 1089달러로 한 달 사이 72% 폭등했다. 원가 부담을 이기지 못한 LG화학은 3월 23일부터 여수 2공장 가동을 중단했고 롯데케미칼은 감산에 돌입했다.

여천NCC마저 가동률을 60%대까지 낮추며 고객사에 불가항력(Force Majeure) 선언 가능성을 통보하는 초유의 사태가 벌어졌다. 수입 나프타의 절반 이상을 호르무즈해협 통행에 의존하는 업스트림 사업자들에겐 피할 수 없는 재앙이었다.

국내 석유화학 빅4 가운데 유독 한 곳의 이름이 셧다운 명단에서 빠졌다. 금호석유화학이다. 이 회사는 나프타를 직접 끓여 에틸렌을 뽑아내는 NCC 설비가 없다. 대신 NCC 업체들이 크래킹 공정에서 뽑아내는 C4 계열 부산물 부타디엔(BD)을 사다가 합성고무라는 고부가 완제품을 만든다.

최근 중동 리스크로 원유·나프타 수급 불안이 커지면서 NCC 업체들은 직접 타격을 받았지만 NCC 설비가 전무한 금호석유화학은 상대적으로 영향권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산업계에 따르면 국내 나프타 수요 중 45%가 수입에 의존하며 이 수입분의 절반이 이란이 봉쇄 중인 호르무즈해협을 통과한다. 국내 나프타 수급의 25%가 중동 상황에 직접 노출된 셈이다.

이란의 통행료 부과로 호르무즈가 ‘유료 톨게이트’로 변모할 경우 나프타 가격 고착화는 피할 수 없다. 이는 원유를 들여와 직접 나프타를 뽑아내는 NCC 경쟁사들엔 영구적인 비용 상승이자 치명적인 수익성 악화다.

반면 나프타 공정이 없는 금호석유화학은 이 원가 폭탄에서 한발 비껴나 있다. 경쟁사들의 원가 경쟁력이 무너질수록 금호석유화학의 ‘상대적 우위’가 오히려 굳건해지는 기회라는 게 석유화학 업계의 중론이다.

트럼프의 고립주의와 이란의 자원 무기화가 맞물릴수록 유연한 다운스트림 강자의 가치가 더 오를 것이라는 관측이다. 석유화학업계 관계자는 “상단(업스트림)이 무너질수록 하단(다운스트림)에서 독보적 지위를 가진 금호석유화학의 희소성이 오히려 부각되는 국면”이라고 했다.

'나프타 사슬' 유무에 따른 수익 구조 차이. 그래픽=정다운 기자

 부타디엔 급등, 원가 압박인가 반사이익인가

변수가 없는 것은 아니다. 가파른 원재료 가격 상승 속도는 변수다. 중국 원자재 데이터업체 선서즈 집계에 따르면 금호석유화학의 주력 제품인 스티렌부타디엔고무(SBR) 가격은 1월 초 톤당 1만1575위안에서 3월 말 1만7850위안으로 54% 치솟았다.

특히 3월 초 호르무즈 봉쇄 직후부터 가격 곡선이 수직 상승하며 3월 말 고점 기준 연초 대비 약 57%의 급등세를 기록 중이다. 국내외 NCC(나프타분해시설) 가동률 하락이 부산물인 부타디엔(BD) 공급 감소로 직결되며 발생한 ‘원재료 확보 전쟁’의 결과다.

합성수지 부문(GPPS·HIPS·ABS)의 필수 원료인 스티렌모노머(SM) 역시 에틸렌·벤젠 계열의 수급 차질 여파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나프타 공급망 불안으로 인해 합성고무 생산의 핵심 혈관인 부타디엔 수급이 흔들릴 경우 다운스트림 외길을 걸어온 금호석유화학 역시 가동률 조정 등 직접적인 영향권에 들 수밖에 없다는 우려가 나오는 이유다.

다만 현재의 국면이 단순한 비용 전가를 넘어선 ‘공급 쇼크’ 단계에 진입했다는 점은 금호석유화학에 오히려 유리한 고지다.

산업계 관계자에 따르면 호르무즈 봉쇄 장기화로 글로벌 나프타-고무 밸류체인이 마비되면서 전방 업체들 사이에서는 “가격이 문제가 아니라 물량 확보가 우선”이라는 ‘패닉 바잉’ 현상이 확산하고 있다.

2025년 4분기 영업이익이 15억원대까지 추락하며 바닥을 쳤던 실적은 올 1분기 원가 상승분을 판가에 반영하는 ‘역래깅’ 현상이 해소되며 정상화 궤도에 올라섰다는 분석이다.

SSBR 제품. 사진=금호석유화학

특히 제품의 ‘질적 차이’가 승부처다. 중국산 저가 폴리에틸렌(PE)이나 폴리프로필렌(PP) 같은 범용 플라스틱은 공급과잉 국면에서 언제든 대체재를 찾을 수 있지만 금호석유화학이 주력하는 고성능 전기차 타이어용 SSBR이나 의료용 NB라텍스는 사실상 ‘기술적 무(無) 대체재’에 가깝다.

타이어, 자동차부품, 의료용 소재 등은 제품의 성능과 안전성을 좌우하는 핵심 요소로 가격 민감도보다 품질 신뢰도가 우선시되는 영역이다.

고성능·전기차용 타이어 영역은 글로벌 완성차 업체의 엄격한 인증과 장기간의 필드 테스트가 진입장벽으로 작용한다. 고객사가 단순히 원가를 낮추기 위해 검증된 공급사를 교체하기 어려운 구조적 특성상 금호석유화학은 업황 부진 속에서도 견고한 수요 안정성을 유지할 수 있다.

수급 불안이 커질수록 제조사의 협상력(바게닝 파워)이 극대화되는 ‘셀러즈 마켓’이 형성되는 것이다. 지난해 4분기 기록했던 전년 동기 대비 84% 이상의 이익 급감 사태가 오히려 올해 상반기 ‘턴어라운드’를 극대화하는 강력한 기저효과로 작용하고 있는 셈이다.

이에 따라 시장의 눈높이도 상향 조정되고 있다. KB증권은 금호석유화학의 2분기 영업이익이 1317억원에 달하며 실적 퀀텀점프에 성공할 것이라는 전망을 내놨다. 강동진 현대차증권 연구원은 “호르무즈해협의 통항 이슈가 해소되면 거래처의 재고 확보 수요로 실적 개선이 가능할 것”이라고 진단했다.

금호석유화학 연구원이 합성고무 NB라텍스 연구개발을 하고 있다. 사진=금호석유화학

 발전소는 방어선, CNT는 공격선

사업 구조 이야기를 합성고무로만 끝내면 금호석유화학을 절반만 아는 것이다. 금호석유화학은 여수국가산업단지 내에 열병합발전소 두 곳(제1·2에너지)을 직접 운영한다. 여기서 만든 전기와 스팀을 자체 공장에 공급하고 잉여분은 외부에 판매한다.

경쟁사들이 에너지 비용 급등에 가동률을 낮추는 동안 금호석유화학은 오히려 에너지 판매 수익이 늘어나는 방향이다. 유가가 오를수록 전기요금 부담에 허덕이는 타사와 정반대다. 낮은 부채비율로 유지되는 재무 건전성의 배경이기도 하다.

금호석유화학이 3월 25일 포스코퓨처엠, 비이아이(BEI)와 차세대 배터리 기술 협력을 위한 3자 양해각서(MOU)를 체결했다. 사진=금호석유화학

탄소나노튜브(CNT) 사업도 봐야 한다. 지난 3월 25일 금호석유화학은 포스코퓨처엠·비이아이(BEI)와 3자 업무협약(MOU)을 체결하고 무음극 리튬메탈배터리 공동개발에 나섰다. 에너지밀도를 기존 대비 30~50% 높인 차세대 배터리 공정에서 금호석화의 CNT는 충전 속도와 수명을 결정짓는 핵심 소재 역할을 담당한다.

드론·로보틱스·항공모빌리티(UAM) 시장까지 겨냥한 포석이다. 다만 이번 MOU는 아직 초기 단계이고 양산 시점이나 구체적 투자 규모가 공개되지 않아 단기 실적 기여보다 중장기 기술 포트폴리오 확보 성격이 강하다는 게 업계 평가다.

여기에 로봇 산업의 부상도 합성고무 수요 전망을 바꾸는 변수로 거론된다. 산업용로봇의 관절·씰(seal) 부품에 내열성·내구성 고무 소재가 필수적으로 쓰이기 때문이다. EPDM 등 기능성 합성고무 수요의 새로운 축으로 주목받는 영역이다.

박준경 금호석유화학 총괄사장. 사진=금호석유화학

 박준경의 베팅, 지금 결과가 나오고 있다

지금의 결과는 하루아침에 나온 게 아니다. 박준경 총괄사장은 부사장이던 2022년부터 경기침체 국면에도 자회사 금호폴리켐의 기능성 합성고무(EPDM) 설비 증설을 결정하는 등 합성고무 생산량 확대를 밀어붙였다.

2022년 12월 총괄사장으로 취임한 뒤에는 전기차 타이어 소재로 쓰이는 SSBR 증설을 추진했고 올해 1분기부터 신규 SSBR 설비의 가동이 본격화됐다. 경쟁사들이 범용 설비를 줄이는 구조조정을 고민하던 시기에 정반대 방향으로 베팅했다.

금호석유화학은 2021년 NB라텍스 수요 폭등에 힘입어 영업이익 2조4000억원을 달성했지만 이 이익을 공격적인 투자 대신 차입금 상환에 활용하며 재무구조를 꾸준히 개선해왔다. 호황기에 쌓은 방어력이 위기 국면에서 버티는 힘이 됐다. 업계에서 ‘100분기 연속 흑자’로 부르는 기록의 배경이다.

주주환원도 빠지지 않는다. 금호석유화학은 2024년 3월 보유 자사주의 50%를 3년간 분할 소각하는 계획을 발표하고 2024년·2025년에 각각 87만5000주를 소각했다. 2026년에도 같은 규모를 소각할 예정이다.

이번 주총에서는 자사주 소각 예외 사유를 주주총회 승인 사항으로 정관에 명문화했다. 경영권 방어 수단으로 자사주를 활용할 수 있다는 시장의 의구심을 정면에서 차단한 방침이다.

최영광 NH투자증권 애널리스트는 “원가 급등으로 실적 눈높이를 일부 조정했지만 합성고무 수급 개선 등 투자 포인트는 여전히 견고하다”며 “순현금 규모와 적극적인 자사주 소각이 주가 하락폭을 제한할 것”이라고 분석했다.

금호석유화학그룹 사옥. 사진=금호석유화학

 ‘원료 주권’ 상실과 중국발 공습은 아킬레스건

하지만 이러한 독보적 생존법 이면에는 풀어야 할 숙제도 적지 않다. 가장 큰 아킬레스건은 ‘원료 주권 상실’과 ‘중국발 공습’이다. 금호석유화학은 경쟁사들이 나프타를 분해하고 남은 부산물을 사다 쓴다.

석화 업황 악화로 NCC 가동률이 50%대까지 떨어지면 정작 제품을 만들 ‘재료’ 자체가 시장에서 사라지는 수급 불균형에 직면할 수 있다.

중국 기업들의 다운스트림 증설도 위협적이다. 그동안 기초유분에 집중했던 중국 석유화학 회사들이 최근 합성고무와 NB라텍스 영역으로 공세를 넓히는 추세다.

범용 고무 시장에서 저가 물량이 쏟아질 경우 금호석유화학의 고부가 전략도 가격 압박을 피하기 어렵다는 게 업계의 분석이다.

포스코퓨처엠과 손잡은 탄소나노튜브(CNT) 등 신사업이 전체 매출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아직 한 자릿수에 불과해 업황 부진을 완전히 상쇄하기엔 시차가 필요하다는 분석이다.

안옥희 기자 ahnoh05@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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