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은혜 부천아트센터 대표 "문화와 예술로 삶을 살 찌우는 플랫폼이 꿈" [나의 삶 나의 길]
‘브런치 콘서트’ ‘재즈시리즈’
다양한 시도로 시민에 다가서려
정명훈이 최고라고 만족한 무대서
부천만의 자랑인 파이프 오르간 무대
하반기에는 페스티벌로 만날 것
英 탄광도시 ‘게이츠헤드’ 롤모델
공연장이자 문화·여가공간으로
부천 시민들의 삶속에 녹아들고 싶어
국내 첫 오르가니스트 앙상블 창단
김덕수 명인과 오르간 협연 무대도
늘 처음을 만드는 삶… “너무 즐거워”
이제 막 완공된 콘서트홀을 처음 만난 순간, ‘여기서 일하고 싶다’고 생각했다. 오르가니스트로서 여러 무대에 서봤지만 부천아트센터(BAC) 콘서트홀에서 들린 소리는 달랐다. 밖으로 뻗쳐 나가는 소리가 아니라 안으로 감싸 들어오는 소리가 만드는 따뜻함에 반했다. 지난해 11월 BAC 대표이사에 취임한 박은혜 대표 이야기다.

BAC는 올해 5월이면 개관 3주년을 맞는다. 박 대표는 공연장의 성장을 아이의 성장에 비유했다. “아기가 태어나서 처음에는 엄마 젖만 먹잖아요. 여기도 마찬가지로 좋은 콘서트를 유치해서 무대에 올리는 것이 1단계라고 생각해요. 이제 세 살이 됐으니 이유식을 먹어야 하는 거 아닐까요. 다른 음식이 들어와야 해요. 클래식은 클래식대로, 다양한 장르가 조금씩 펼쳐지면서 같이 성장하는 거예요. 음악의 다양성과 시민들을 같이 끌고 하나씩 서서히 올라가는 거죠.”
그래서 올해부터 BAC의 새로운 시도가 시작된다. ‘브런치 콘서트’를 새로 만들었고, 재즈 장르를 담은 ‘BAC 재즈 시리즈’를 프로그램에 넣었다. 5월 개관 3주년 페스티벌 때부터는 로비 콘서트를 시작하고, 잔디광장에서 파크 콘서트도 연다. 하반기에는 BAC의 자랑인 파이프오르간을 중심에 놓은 ‘오르간 페스티벌’을 기획 중이다.
특히 BAC를 설명할 때 빠지지 않는 수식어가 ‘음향의 전당’이다. 설계 단계부터 최상의 클래식 연주를 위해 공들였는데 콘서트홀로서 숙성이 시작되면서 갈수록 소리가 좋아지고 있다. 음향만으론 최적인 슈박스 형태와 관객 친화적인 빈야드 형태가 결합한 구조에서 선예도 높은 콘서트홀이 완성됐다.
연주자로서 박 대표가 설명하는 BAC 콘서트홀의 진짜 강점은 잔향시간 등의 숫자가 아니라 ‘편안함’이다. 연주자가 자신이 내는 소리가 어떻게 퍼져나가는지 즉각적으로 느끼면서 편안함이 생기고, 이는 다시 좋은 연주로 선순환한다는 설명이다.
“콘서트홀이 어떤지는 연주자가 제일 먼저 알죠. 내가 연주할 때 편해야 하거든요. 어떤 홀은 피아노를 ‘땅’ 쳤을 때 소리가 나한테 전달이 안 돼요. 그러면 힘을 더 줘야 돼. 근데 여기는 편안하게 쳐도 그 소리가 나한테 잘 들어와요. 소리가 선명하면서 따뜻하게 들리면 연주가 날아가는 거죠.”
그래서 마에스트로 정명훈이 “여기가 최고”라고 만족했고 최근 연주를 한 WDR 쾰른 방송 오케스트라도 “어느 곳보다 좋았다”는 반응이었다고 한다. 한번 무대에 서 본 해외 연주자·단체가 “다음에 다시 한국 투어를 짤 때 부천을 꼭 넣어달라”고 요청할 정도다. 공연기획사도 개관 초기에는 서울과 너무 가까워서 부천 공연을 꺼렸는데 점차 관객층이 겹친다는 우려도 극복 중인 추세다.
그러나 각 지방자치단체가 운영하는 공연장은 늘 두 가지 목소리 사이에 선다. ‘대한민국 최고의 홀이 돼야 하지 않겠느냐’는 목소리와 ‘시민의 돈으로 지었으니 시민이 먼저’라는 목소리. 박 대표는 “둘 다 맞다”고 했다. “저는 ‘클래식의 대중화’를 너무 싫어해요. ‘대중의 클래식화’를 만들어야 돼요. 그렇다고 ‘클래식만이 좋은 거야’라고 해서는 안 되죠. 서서히 같이 끌고 올라가야 합니다.”
“결국 최고·최상의 예술은 누구에게나 감동을 줄 수 있다”는 것이 박 대표의 믿음이다. 현재 BAC 관객 비중은 부천 시민이 약 60%, 외부 관객이 40%다. 대관도 비슷한 비율이다. 부천필하모닉오케스트라와 합창단이 오랜 시간 쌓아온 관객 기반 위에 시립예술단 공연은 평일에, 기획 공연은 주말에 배치하다 보니 자연스럽게 균형이 잡혔다. 지역성과 보편성이 공존하는 구조다.

예술단체 기관장으로서 연주자는 드문 편인데 박 대표는 ‘강점’이 있다고 자신감을 나타냈다. “음악하는 사람들은 매우 솔직해요. 1만 시간, 10만 시간 연습해야 되니까 내가 어느 수준인지 다 알아요. 거짓말을 못 해요. 그래서 치밀하고, 계획성이 있고, 지구력이 있고, 인내심이 있어요.”
게다가 박 대표는 오르가니스트로서 특별한 장점을 지닌다. 세상에 똑같은 파이프오르간은 단 한 쌍도 없기 때문이다. 연주 때마다 새로운 악기 앞에서 대여섯 시간을 들여 악기 특유의 소리를 조정하고 곡을 새롭게 해석해야 한다. 오르간 곡은 악보에 오케스트레이션처럼 악기 지정이 쓰여 있지 않기 때문에 어떤 소리를 쓸지는 전적으로 연주자 몫이다. 그만큼 오르가니스트는 상황에 빨리 적응해서 최적의 결과를 뽑아내야 한다.
“오르간은 ‘나쁜 남자’인 거죠. 한 번도 나를 안심시키지 않아요. 매번 긴장하고, 매번 새롭기 때문에 어렵지만 그만큼 매력이 있죠.” 그래서 수십년간 여러 오르간에 적응하고 즉각적인 판단을 내려온 훈련이 여러 직원·관계자와 복잡한 이해관계를 이끄는 기관장의 일에도 고스란히 쓰인다는 것이다.
연세대 음대학장을 지낸 고 박재열 작곡가가 부친인 박 대표는 아버지가 성가대 지휘를 하던 정동제일교회에서 오르간을 만났다. 1918년 아시아 두 번째로 파이프오르간이 설치된 역사적 공간이다. 그곳에서 세종문화회관 최초 수석 오르가니스트 윤양희 선생 연주를 보며 자랐다. 그리고 세종문화회관에서 파이프 오르간의 압도적인 소리를 처음 들은 날 오르가니스트가 되기로 마음을 정했다.
이렇게 시작된 박 대표의 연주자 경력에는 ‘최초’라는 수식어가 여럿 따라붙는다. 오르가니스트로 구성된 앙상블 ‘오르투스’를 창단해 네 대의 오르간이 함께하는 무대를 만들었다. 김덕수 명인과 함께 오르간과 국악기의 협연을 기획한 ‘한국을 품은 오르간’ 공연을 선보였다. 국악과 오르간의 결합을 연구하는 프로젝트 ‘정람(正嵐)’도 꾸준히 이어왔다. 모두 오르간을 교회 밖으로 끌어내려는 시도였다.
“오르간 연주·관객의 저변을 넓히고 싶었습니다. 대중한테 가고 싶었어요. 관객에게 선택받을 때까지 기다리는 게 너무 싫은 거예요. 재미있게 다 했고, 성공적으로 잘했죠. 후배들이 제 도전을 보고 따라서 엄청나게 하고 있으니까 뿌듯합니다.”
이미 내년 공연 기획에 한창이라는 박 대표는 “기관장으로서 무게감은 크지만 너무 감사하다. 이 부족한 사람을 하나님이 여기까지 데려와서 이런 일을 시키려고 60년을 훈련시켰다고 생각한다”며 “저는 너무 즐겁고, 우리 직원들도 다 즐거웠으면 좋겠다. 그래야 아트센터도 행복할 것”이라고 말했다.
박성준 선임기자 alex@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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