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힙’하고 스타일리쉬한 다큐가 된 ‘12.3 비상계엄’
보좌관·시민 등 283명에 받은 파편화된 영상
애니·웹툰·AI 등 활용해 기존 다큐 공식 탈피
무성영화·홍콩영화 등 스타일리쉬한 연출 탁월
후반부 정치 풍자 만평 떠올리게 하는 애니도 백미

다큐멘터리의 미덕은 리얼리티다. 그래서 다큐멘터리에는 실존 인물의 내레이션, 재연, 인터뷰가 필수다. 그러나 ‘란 12.3’은 이 모든 것이 배제됐다. 애니메이션, 게임, 웹툰, 인공지능(AI)을 활용하고 영상과 음악 위주로 편집됐다. 그래서 다큐멘터리의 정체성을 의심하게 되지만 영화가 끝나면 완벽한 미장센, 탐미주의적 형식을 추구하며 한국을 대표하는 스타일리스트로 불리는 이명세 감독이 ‘힙’하게 변주한 ‘시네마틱 다큐멘터리’에 손을 들어줄 수밖에 없다. ‘힙하고 스타일리쉬한’ 이명세 다큐멘터리의 탄생이라고 할 수 있다.
‘란 12.3’은 2024년 12월3일 윤석열 전 대통령의 비상계엄 선포에 맞서 민주주의를 지키기 위해 나섰던 시민들의 현장에 대한 기록이다. 한밤 중의 비상계엄 선포부터 해제 요구 결의안 가결까지의 과정을 시간 순으로 따라가며 그날의 긴박한 현장을 밀도있게 담아냈다.
그날의 현장은 시민, 국회의원, 보좌진 등 283명으로부터 전해받은 파현화된 영상, 사진, 기록들이다. 이미 기사를 통해서 접했던 영상들이 대부분이다. 그러나 흑백 무성영화를 떠올리게 하는 장면들이 이 감독의 ‘시네마틱 다큐멘터리’라는 장르의 필터를 통과하면서 더욱 담담하면서도 한편으로 더욱 극적이기도 한 모순적인 감정을 만나게 해 독특한 영화적 경험을 선사하다.

음소거를 한 듯한 그날의 영상들이 흐느적거리듯 흐르는 장면들은 양가위 감독 등 홍콩 영화 스타일은 아련한 정서까지 소환해 12.3 비상계엄으로 인해 우리가 잃고 얻은 것들은 돌아보게 하는 장치가 됐다. 또 다큐멘터리의 공식을 탈피해 대사를 최대한 배제하고 애니메이션, AI 등을 활용한 연출 방식이 오히려 12.3 비상계엄이라는 비현실적인 역사를 복귀하는 데 아이러니하게도 가장 적합했다는 평가다. 이 감독은 “편집의 목표는 외국인도 보면 알아차릴 정도로, 직관적이어야 한다는 것이었다”며 “현실을 드라마화하는 데 중점을 뒀다. 그 과정에서 컴퓨터그래픽(CG)보다 가성비가 좋은 AI를 썼다”고 설명했다. 그는 이어 “계엄 실행을 위한 준비가 담긴 것으로 알려진 노상원 전 국군정보사령관의 수첩 등 비현실적으로 느껴지는 일은 만화로 표현했다”고 덧붙였다.
이 작품은 음악도 비중 있게 활용돼 내레이션과 인터뷰 대신 극을 끌고 나가는 역을 톡톡히 한다. 음악감독은 ‘인정사정 볼 것 없다’부터 이 감독과 함께 해온 조성우가 맡았다. 조성우 감독은 “인터뷰가 들어가지 않는 다큐멘터리이기 때문에 무성영화의 대화 방식을 사용하고 있었다”며 “그래서 다큐멘터리에서 잘 사용하지 않는 디즈니 영화에서 사용하는 미키 마우징(영화나 애니메이션 표현에서 만화적 움직임과 음악, 목소리와 완벽하게 맞아 떨어지게 하는 영화 음악기법) 동작에 맞추는 그런 음악들을 사용했다”고 설명했다.

영화의 후반부와 엔딩은 이 ‘힙’하고 스타일리쉬한 ‘시네마틱 다큐멘터리’의 하이라이트라고 할 수 있다. 애니메이션으로 표현된 윤석열 전 대통령과 김건희 씨를 둘러싼 각종 의혹과 소송 등은 마치 정치 풍자 만평을 떠올리게 하며 웃음을 자아낸다. 그리고 마지막 장면에 빼곡히 올라가는 서포터즈들의 이름들은 그 자체가 이 작품의 메시지라고 할 수 있을 정도로 묵직한 울림을 전한다. 지난해 12월 후반 작업 지원을 위해 10억원 규모의 크라우드 펀딩을 진행했고 시민 1만5000명의 이름을 올린 것이다. 이 감독은 “저는 영화감독으로서 ‘놀면 뭐 하니, 영화나 만들자’는 사람인데, 보내주신 성원에 무게감을 느꼈다”며 “민주주의에 대한 지지라고 생각된다”고 말했다. 조 감독은 “영화의 음악 작업을 함께 해 영광이었다”며 “한국 민주주의에 대한 기록으로 남았으면 한다”고 밝혔다. 22일 개봉.
연승 기자 yeonvic@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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