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최초의 리츠칼튼 리저브, 리사이밸리에서 보낸 하루
내 마음 속 어느 마을에의 하루
때론 이유 없이 마음이 붙잡히는 장소가 있다. 창밖으로 스쳐 지나가는 작은 마을, 지도에 이름만 적혀 있는 어느 계곡, 또는 산길 끝에 나타나는 허름한 마을. 그런 풍경을 마주할 때면, 막연하게도 며칠 살아 보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 다만 그런 생각들은 몇 걸음 지나지 않아 현실로 돌아오곤 한다. 삶과 다른 생활은 낭만으로 버티기엔 참 거칠다. 그래서 우리는 그 마음을 사진 한 장쯤으로 타협한다. 어쩌면 여행에서 가장 오래 남는 마음은, 그곳에 머물지 못한 애틋함일지도 모르겠다. 그래서 어떤 호텔은 그 마음을 위해 세워진다. 주자이거우는 '아홉 개 마을이 있는 계곡'이란 뜻이다. 오래전 이 계곡에는 실제로 티베트족 마을이 흩어져 있었다고 한다. 계곡 어딘가에 있는 마을에서의 하룻밤을 상상해 본다. 막연히.

메리어트의 최상위 럭셔리 브랜드인 '리츠칼튼 리저브'의 여섯 번째 선택은 주자이거우의 깊숙한 골짜기 마을이다. 희소성과 아름다움으로는 입지를 설명하기에 충분하지 않다. 리츠칼튼 리저브는 그저 이곳의 마을이 되고자 했다. 하늘과 땅, 설산과 돌산, 그리고 원주민 마을과 이방인의 마을. 이곳은 리츠칼튼 리저브 '리사이밸리'다.
'리사이(Rissai)'는 티베트 언어로 마을을 뜻한다. 리사이밸리는 골짜기 마을이란 뜻이다. 이름대로 리츠칼튼 리저브 리사이밸리는 중국 서북부의 칭하이 티베트 고원의 깊숙한 계곡 속에 둥지를 틀었다. 유네스코 세계유산이자 생물권 보호구역인 주자이거우 풍경구의 입구에 맞닿아 있다. 가지가 많은 나무가 무성하고, 산맥이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며 겹겹이 병풍을 이룬 계곡. 도착과 함께 중국 최초의 리츠칼튼 리저브가 왜 이곳이어야 했는지, 누구나 끄덕일 수밖에 없는 풍경이 펼쳐진다.

리사이밸리는 인도네시아 출신 건축가인 '자야 이브라임(Jaya Ibrahim)'이 디자인했다. 사실상 아만(Aman)이란 브랜드의 브랜드의 미적 정체성을 설계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 그는, 티베트 특유의 단단한 골격과 묵직한 형태감을 바탕으로 리츠칼튼 리저브를 하나의 '마을'로 번역해냈다. 주자이거우 지역은 전통적인 티베트 문화와는 사뭇 다르다. 티베트 문화권에 쓰촨의 창족(羌族) 문화가 혼재되었기 때문이다. 계곡이 깊은 산악 지형에 맞춰 작은 군집을 이룬 마을이 곳곳에 자리한다. 산 언덕에 계단식으로 저층가옥과 농막, 가축우리와 농지가 어우러져 있다.
리사이밸리는 하나의 작은 토착 마을과 같이, 산 한편의 언덕 위에 87개의 빌라를 계단식으로 구성했다. 석재와 목재로 뼈대를 쌓고, 내부 공간의 벽과 모퉁이까지 지역 문화를 담은 오브제로 채워 넣었다. 리조트 내에서 만나게 될 모든 작품들은 실제 이곳의 마을 사람들에게서 전해진 수집품인데, 이 양이 방대하다. 전통 가옥처럼 낮은 조도를 설정해 아늑한 느낌을 더했고 주자이거우 계곡의 오묘한 색, 그러니까 초록, 청록, 파랑의 조합을 포인트로 활용했다. 이 정교한 설계는 거대한 박물관이나 미술관의 큐레이팅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리조트의 공간에 익숙해질수록, 유별난 대칭적 프레임을 의식하게 된다. 로비는 신경증적일 정도로 대칭을 맞춰 두었다. 창, 기둥과 같은 공간의 규격은 물론이고, 가구나 예술품 등의 인테리어 요소를 모두 정밀하게 상하좌우 대칭을 맞췄다. 참고로 로비 정중앙을 차지한 나무 밑동은 석가모니가 그 아래에서 깨달음을 얻었다는 보리수나무인데, 치앙마이에서 가져왔다고 한다. 자세히 보면 안쪽에 나무 한 그루가 겹쳐서 자라 있다. 이 역시 자연적으로 만들어진 것이다. 빌라 내부 공간에서도 대칭적 배치를 수없이 많이 찾을 수 있다. 이 지독한 신경증의 궁극적인 근원은 자연적 질서 그 자체가 되려는 리조트의 열망이다. 리조트에서 바라본 오른편의 새하얀 설산은 마른 풀과 돌이 쌓인 왼편의 산과 마주 보고 있다. 본래 계곡이란 대칭의 성질이기 때문이다. 정면을 바라다보면 손에 닿을 듯한 거리에, 같은 눈높이의 건너편 마을이 보인다.

몇 채의 가옥이 계단식으로 놓인 마을, '보르(波日俄, Bo Ri)' 마을이다. '보르'라는 마을의 이름은 '빛(日)이 물결(波)치는 땅'이라는 의미다. 실제로 정오부터 늦은 오후까지 햇살이 따스히 스민다. 바로 그 반대편에 그와 똑 닮은 듯 계단을 이루는 작은 마을, 리사이밸리가 자리하는 것이다. 리사이밸리는 오전에 빛이 들어, 오후에는 그늘진 땅이다. 햇빛의 따사로움을 나눈 설계마저 계곡의 완전한 대응을 완성하기 위한 마지막 병치였다. 주자이거우의 푸른 수면 아래 잠든 나무가 있고, 수면 위로 움트는 나뭇가지가 있듯.

리사이밸리는 2023년 6월 오픈했다. 총 87개의 빌라로 구성된 객실은, 사실 좀 더 정확히 말하자면 이 호텔에는 객실이라는 개념이 무색하다. 가장 작은 객실이 158m2(48평)에 달하기 때문이다. 각 객실에는 개인 화로와 망원경을 둔 발코니가 있는데, 이곳에서 둘러보는 주자이거우의 풍경이 예술이다. 모든 빌라에는 '니에바(Nieba)'라고 불리는 전담 버틀러가 배정되어 투숙 중의 모든 과정을 전담해 관리한다. '니에바'는 고대 티베트어로 '개인 집사'를 의미한다. 고대 티베트 귀족 계층에는 '쉐겐 니에바(血根涅巴)'라고 불리는 전담 집사가 있었는데, 이들은 집에 방문하는 손님의 식사를 포함해 생활 전반을 돌보는 역할을 맡았다. 리사이밸리의 니에바는 바이젠(白)과 수오보(索波)로 명칭이 나뉜다. 이 명칭은 리조트 주변을 감싸고 있는 2개의 설산의 이름에서 유래했다고 한다. 니에바는 투숙객의 식사 취향이나 객실 내 컨디션 취향을 실시간으로 계속 업데이트해 반영한다.
도착시 제공되는 티베트식 환영 의식인 '자시 델레(Zhaxi Dele)', 이외에도 각종 민속춤과 노래 체험, 탕카 명상 체험, 하이킹 등 체험 프로그램도 다채롭다. 조식을 호텔 레스토랑에서 먹을 경우, 오전 11시까지 운영 시간을 제한한다. 하지만 객실에서 조식을 주문할 경우 24시간 내 원하는 시간에 1회 제공되는 점도 흥미롭다. 참고로 리사이밸리의 올데이 다이닝 레스토랑 이름은 반대편 마을의 이름인 '보르 빌리지(Bo Ri Village)'다. 호텔에서 주자이거우 국립공원까지는 차량으로 20분 정도가 소요된다.
한밤중에 깨어나 발코니로 나섰다. 건너편에는 불빛 하나 없이 새까만 보르 마을의 실루엣뿐이다. 달빛이 스치는 마을의 실루엣을 바라보다가, 또 구름 사이로 쏟아지는 별을 바라보다가. 수많은 여행길에서 만난 막연한 바람의 밤이 아마도 이런 풍경이었을 거라는. 삶과 다른 방식의 하루도 이따금 충분히 낭만으로 보낼 수 있다는 사실까지. 내가 기꺼이 안긴 주자이거우의 어느 마을, 리사이밸리가 내게 말했다.

마을을 바라보는 곳, 차이린쉬안
리사이밸리의 차이니즈 레스토랑이다. 차이린쉬안(Cai Lin Xuan)이라는 이름을 직역하면 '색채의 숲'이라는 뜻인데, 가을의 주자이거우 계곡을 뒤덮은 다채로운 숲의 풍경에서 유래한 이름이다.

이곳은 쓰촨 요리를 중심으로 한다. 다만 전통적인 마라의 강렬한 매운맛을 강조하기보다는 티베트의 식재료와 계절감을 세련된 방식으로 해석하는 데 초점을 두었다. 야크 고기와 산지 버섯과 나물, 신선한 지역 채소 같은 고원 식재료가 메뉴에 가득하다. 추천 메뉴로는 로브스터가 들어간 마파두부, 부드럽게 삶아 튀겨 낸 야크고기, 매운 고추와 볶아 낸 닭튀김 등. 낮은 조도의 조명과 단단한 석재가 어우러진 공간은 주자이거우의 고요함을 실내로 옮겨 놓은 듯하다. 창가에 앉으면 숲 너머로 건너편, 보르 마을(Bo Ri Village)이 바라다보인다.


글·사진 강화송 기자
Copyright © 트래비.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 홍콩의 맛은 단순하지 않다 - 트래비 매거진
- 국내선이 이 정도면 국제선은…5월 국내선 유류할증료 4배 폭등 패닉 - 트래비 매거진
- 청두 다운타운 완전 정복 리스트 6 - 트래비 매거진
- 몰라서 못 갔던 타이베이 도심 & 근교 스폿 4 - 트래비 매거진
- 내돈내산 삿포로 여행에서 다녀온 맛집 3 - 트래비 매거진
- 오로라 대신 만난 아이슬란드의 '3가지 로망' - 트래비 매거진
- 영국 북서부 소도시의 낭만 - 트래비 매거진
- '그날'이 남긴 흔적을 따라서···일본 나가사키 다크투어리즘 - 트래비 매거진
- 홍도 여행은 식탁에서 완성된다 - 트래비 매거진
- 해외여행 지금 준비해도 될까?···유류할증료 부담 줄이는 방법 찾았다! - 트래비 매거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