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트북 너머] '유령 코인' 뒤에 숨은 유령 감독…제도권인데 왜 더 불안한가

지난 2월 한 가상자산 거래소에서 이례적인 사고가 발생했다. 랜덤박스 이벤트 당첨금을 지급하면서 '원' 단위를 '비트코인'으로 잘못 입력한 것이다. 1인당 2000원이 아니라 2000비트코인(당시 약 1900억원)이 240명에게 지급됐다. 오지급 총액은 약 62조원. 이 거래소의 실제 비트코인 보유량 13배에 이르는 '유령 코인'이 전산상에서 만들어진 셈이다. 30~40분 만에 거래가 차단됐지만 그 사이 비트코인 가격은 10% 넘게 급락했고, 패닉셀과 저가 매도로 제3의 투자자들까지 피해를 입었다.
사고 직후 금융감독원은 특별검사에 착수했고, 금융위원회·금융정보분석원·닥사(DAXA)가 합동 긴급대응반을 꾸려 주요 5대 거래소를 전수 점검했다. 그 결과가 지난 6일 나왔다. 5개 거래소 중 3곳은 이용자 자산 잔고대사를 하루 1회만 실시했고, 대규모 불일치 시 거래를 즉시 자동 차단하는 킬스위치도 갖추지 못한 것으로 확인됐다. 수작업 거래에서는 담당자 1인 승인만으로 지급이 이뤄진 사례도 드러났다. 당국은 앞으로 모든 거래소에 5분 주기 상시 잔고대사 시스템 구축과 금융회사 수준의 내부통제를 요구하기로 했다.
필요한 조치다. 다만 한 발 떨어져 보면, 이 조치 자체가 그간의 감독 수준을 되돌아보게 한다. 금융당국은 2021년부터 2025년까지 해당 거래소를 6차례 점검·검사했지만, 단위 오입력 하나로 62조원이 쏟아질 수 있는 전산 구조를 걸러내지 못했다. 가상자산이용자보호법이 2024년 7월부터 시행 2년을 앞두고 있지만, 정작 잔고를 실시간으로 대조하는 기본적인 안전장치는 사고가 난 뒤에야 본격적으로 논의되고 있다.
혼란은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2027년 1월 시행 예정인 가상자산 과세를 두고 국민의힘은 아예 폐지 법안을 발의했고, 5대 거래소 대표들도 한자리에 모여 폐지 필요성을 제기했다. 한편 디지털자산기본법, 이른바 '2단계 법'은 거래소 내부통제 보강 필요성이 커진 가운데 스테이블코인과 지분 규제 등 쟁점까지 겹치며 입법 논의가 늦어지고 있다. 과세는 밀어붙이거나 폐지하거나 갈피를 못 잡고, 시장의 기본 규칙을 정할 법안은 뒤로 밀린다. 투자자 입장에서 보면 세금 낼지 말지도 모르겠는데, 내 자산이 안전한지도 확신할 수 없는 상황이다.
가상자산이용자보호법이 시행된 지 2년 가까이 됐다. 거래소는 사업자 신고를 마쳤고, 불공정거래를 규율하는 제도적 틀도 마련됐다. 겉으로만 보면 시장은 분명 제도권 안으로 들어온 듯하다. 그런데 정작 시장 안에 있는 투자자는 더 불안해졌다. 제도가 생겼다는 안도보다, 사고가 터질 때마다 비로소 허점을 메우는 현실이 더 또렷하게 다가오기 때문이다.
제도권 편입이란 결국 약속이다. 내 자산이 이제는 법과 규칙의 울타리 안에서 보호받을 수 있다는 약속. 그 약속이 사고가 터질 때마다 뒤늦게 보수되고, 그때그때 기준이 새로 세워지는 방식이라면 투자자에게 '제도'는 신뢰의 이름이 되기 어렵다. 제도는 보호장치가 아니라 또 하나의 불확실성으로 받아들여질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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