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교 103년 만에 처음 방한한 영국 총리… 11년 집권 마거릿 대처

이한수 기자 2026. 4. 8. 05: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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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문에서 찾았다 오늘 별이 된 사람]2013년 4월 8일 88세
마거릿 대처 영국 총리.

영국 첫 여성 총리 마거릿 대처(1925~2013)는 1986년 5월 2일 방한했다. 영국 총리의 방한은 1883년 조영(朝英) 수호 통상 조약 이후 103년 만에 처음이었다. 한 달 전 전두환 대통령의 영국 방문에 대한 답방 성격이었다. 당시 신문은 ‘백년 만의 영국 총리 방한’에 더 큰 의미를 두었다.

“영국의 마거릿 대처 수상의 방한은 특별한 현안 해결을 위한 방문이라기보다 전두환 대통령의 방영(訪英)에 대한 답방이며 1883년 이래 양국 수교 1백 년 만의 영(英) 수상 방한이라는 역사·외교적 의미를 더 갖고 있다는 데 그 특징이 있다.”(1986년 5월 2일 자 조간 2면)

1986년 5월 3일자 1면.

대처는 도착 성명에서 “방한하는 첫 영국 수상이 된 것을 영광으로 생각한다. 양국의 훌륭한 관계를 입증하는 이번 교환 방문을 기반으로 한·영 양국이 정치뿐 아니라 통상·경제 분야에서도 동반자 관계를 구축해 나가기를 바란다”(1986년 5월 3일 자 1면)고 밝혔다.

1979년 5월 5일자 1면.

1979년 5월 보수당 당수 대처는 총선에서 승리하고 영국 역사상 최초로 여성 총리에 취임했다. 당시 신문은 대처를 ‘신보수 항로의 여 선장’ ‘자력으로 정상 오른 미모 주부’라고 소개했다.

1979년 5월 5일자 2면.

“보수당의 승리로 다음 선거 때까지 대영제국을 이끌어 나갈 마거리트 대처 여사(53)는 영(英) 사상 최초일 뿐 아니라 유럽 초유의 여 수상이 된다. 인도의 인디라 간디 여사가 부친의 후광을 등에 업고, 그리고 스리랑카의 시리마보 반다라나이케 여사가 부군의 덕에 수상이 된 것과 비교할 때 자력으로 권력의 정상에 올라 선 세계 최초의 여성 정치인이다. (…) 대학 재학 시에도 보수파 학생 클럽의 회장을 맡는 등 정치에 관심을 보였던 그녀는 두 번 낙선 끝에 59년 의회에 진출, 70~74년 당시 히드 당수가 이끌던 보수당의 재야 내각에서 교육상을 담당했으며, 정치적으로 자기를 키워준 히드씨를 밀어내고 유럽 초유의 여당수로 당선됐다.”(1979년 5월 5일자 조간 2면)

대처는 세 차례 총선에서 보수당의 승리를 이끌며 11년간 총리에 재임했다. 20세기 최장기 집권이었다. ‘철의 여인’이란 별칭을 얻었다.

1990년 11월 23일자 1면.

1990년 11월 22일 전격 사임했다. 보수당 당수 2차 투표에서 패할 수 있다는 경고를 받아들였다. 대처는 사임 성명을 통해 “나는 동료들과 광범위한 협의를 거친 결과, 사임을 통해 당내 동료 각료들이 보수당 지도부 선출 투표에 나설 수 있도록 함으로써 당의 단합과 다가오는 총선 승리에 더 잘 기여할 수 있다는 결론을 내렸다”(1990년 11월 23일 자 1면)고 밝혔다.

사임 직후 당내 경쟁자는 물론 야당 노동당에서도 대처가 총리로서 수행한 공적을 칭송했다. 과도한 복지와 노조 영향력으로 생산력 저하를 빚은 이른바 ‘영국병’을 치유한 공로를 인정했다.

2013년 4월 9일자 A1면.

“대처가 이 같은 평가를 받는 것은 그녀가 제시한 ‘대처리즘’이 영국에 활력을 불어넣었기 때문일 것이다. ‘대처리즘’이란 대처가 79년 집권하며 ‘영국병(病)’에 대한 처방으로 제시한 정책이다. 이는 다름 아닌 자유시장 경제 원칙을 충실히 수행해 나가는 것을 의미한다. 대처는 이 원칙을 지켜나가면서 수도·전기·통신 등 주요 국영기업을 민영화했으며 사회보장 예산도 대폭 삭감했다. 이 때문에 그녀는 영국의 서민들로부터 크게 인기를 얻어본 적이 없다. 또 인플레를 잡기 위해 초고금리 정책을 펴 보수당의 지지 세력인 대기업의 반발을 사기도 했다. 그러나 그녀는 자신이 세운 원칙을 포기하거나 타협을 통해 수정하지 않았다. 대처리즘이 성공할 수 있었던 것은 10년 이상 대중이나 특정 집단에 영합하지 않고 원칙을 고수한 때문일 것이다.”(1990년 11월 24일 자 2면)

2013년 4월 9일자 A2면.

부음 기사는 영국병 치유와 함께 소련 공산주의 붕괴를 대처의 공로로 적시했다.

“대처(애칭 ‘매기·Maggie’)는 영국에서 윈스턴 처칠 이후 가장 위대한 지도자로 꼽힌다. 1979년 영국 역사상 첫 여성 총리에 당선된 후 1990년까지 11년 반 동안 다우닝가 10번지(총리 관저)를 지키며 파업과 과도한 복지 혜택 등 ‘영국병’에 시달리던 조국을 다시 일으켜 세웠다. 특히 그는 외교 무대에서 미국의 로널드 레이건과 협력해 공산주의를 무너뜨렸다는 평가를 받는다. 데이비드 캐머런 총리는 “대처는 단순히 이 나라를 통치한 것이 아니라 구원했다”고 애도했다.”(2013년 4월 9일자 A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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