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컬크리에이터] 연주자 숨결·악기의 떨림, 아이들에게 선물할래요

조은별 기자 2026. 4. 8. 05: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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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컬크리에이터] (56·끝) 마을에 음악 선사하는 조연호 챔버홀·알프홀 대표 <충남 공주>
코로나로 아내 고향 공주 내려와
클래식 낯선 주민에 놀란 지휘자
시장 옆에 소공연장 ‘챔버홀’ 열어
첫 공연 넘친 인파에 자신감 솟아
‘알프홀’ 기획…오케스트라 창단
음악회에 인문학·철학 강연까지
청년 음악가와 협업 무대도 공유
충남 공주시 유구읍에 클래식 전문 연주홀 ‘바드 챔버하우스 알프홀’을 연 조연호 대표. 공주=백승철 프리랜서 기자

아스팔트 틈에 핀 민들레를 보면 경이롭다. 뜻밖의 장소에서 샛노란 희망을 피웠구나 싶어서다. 낯선 공간에서 꿈을 이뤄낸 사례는 충남 공주시 유구읍에도 있다. 정겨운 시골 마을에 경쾌한 클래식이 꽃핀 것이다. 푸릇푸릇한 밭 옆에서 오케스트라가 모여 교향곡을 연주하는 장면을 상상해보자. 왁자지껄한 전통시장 옆에 섬세한 바이올린 선율이 울려 퍼지는 모습은 또 어떤가.

공주에 사는 최성흠씨(62)는 2021년부터 펼쳐진 이 진귀한 조합의 열성팬이다. 그는 “우리 마을에 클래식 전문 공연장이 생긴 건 처음”이라며 “연주를 직접 들을 수 있다는 소식에 무척 기뻤다”고 말했다.

소공연장 ‘바드 카페 챔버홀’은 유구전통시장 앞에 있다. 클래식 악기의 선율과 전통시장의 활기찬 소음이 어우러진다. 공주=백승철 프리랜서 기자

공연이 펼쳐진 곳은 2021년 문을 연 소공연장 ‘바드 카페 챔버홀(이하 챔버홀)’과 2025년에 생긴 클래식 전문 연주장 ‘바드 챔버하우스 알프홀(이하 알프홀)’이다. 여기서 펼쳐진 거의 모든 공연을 봤다는 최씨는 “유일하게 놓친 건 첫 무대였다”며 “유구전통시장 바로 옆에 공연장이 있을 거라곤 상상도 못하고 지나쳤다”고 웃었다.

이쯤에서 궁금증이 생긴다. 누가 이 마을에 ‘클래식의 격조’를 퍼뜨리는 것일까. 바로 조연호 챔버홀·알프홀 대표(46)다.

“악기의 떨림을 가까이서 들어본 적 있나요? 그 소리를 마을 아이들에게 선물하고 싶었습니다.”

지휘자로 세계를 누비던 조 대표는 코로나19 시기에 귀국했다. 아내의 고향인 유구읍에 머물던 그는 깜짝 놀랐다. 클래식을 한번도 접하지 못했다는 주민을 만난 것이다. 그는 “취향 문제도 있겠지만 마을에 클래식 공연장이 없다는 점도 영향을 미치지 않을까 싶었다”며 “오케스트라를 실제로 본 적 없는 아이까지 만나니 결심이 섰다”고 힘줘 말했다. 그길로 시장 입구 옆 연탄가게 자리에 챔버홀을 열었다.

첫 무대는 바이올린이 장식했다. 바이올리니스트 김민희씨와 함께한 날이었다. 조 대표는 김씨에게 관객이 별로 없을지 모른다고 귀띔했는데, 공연 당일 예상 밖의 일이 벌어졌다. 66㎡(20평) 남짓한 작은 공간에 발 디딜 틈 없이 사람이 들어찼다. 결국 공연을 1회 더 늘리기까지 했다. 조 대표는 “잊을 수 없는 날”이라며 “멘델스존의 바이올린 협주곡을 듣겠다며 수십명이 찾아왔다”고 회상했다. 그날 생전 처음으로 실제 현악기 소리를 들은 관객도 있었단다.

알프홀을 무료로 대관 받은 지역 청년 음악가는 자신이 하고 싶던 음악을 연주한다. 바드 챔버하우스 알프홀

뜨거운 반응은 꿈을 키울 자양분이 됐다. 조 대표는 챔버홀에서 도보로 6분 거리에 더 넓은 알프홀을 세웠다. 연주 공간은 132㎡(40평) 정도로 소리가 풍부하게 울리도록 목재로 마감했다.

그중 가장 눈에 띄는 건 무대가 없다는 점이다. 바닥을 평평하게 만들어 연주자와 관람자의 경계를 지워버렸다. 조 대표는 “음악을 코앞에서 보고 듣고 느낄 수 있는 곳”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무대 구성도 자유롭다”며 “때론 연주자가 한가운데에 서고 그 둘레를 청중이 에워싸기도 한다”고 덧붙여 말했다.

“꿈이 이뤄졌다고 느낀 건 오케스트라 창단식 날이었어요.”

2025년 8월, 충남에 거주하는 연주자 35명이 알프홀에 섰다. 보기 드문 오케스트라 공연에 학부모와 아이들이 속속 찾아왔다. 악기 소리를 하나하나 들어보고 곡에 얽힌 사연도 풀어내는 순서를 마련했다. 조 대표가 서양 악기를 처음 만나는 아이들에게 건네는 선물이었다. 한 아이는 “콘트라베이스가 이렇게 큰지 몰랐다”며 감탄을 내뱉기도 했단다.

오케스트라의 협주도 인상적이었다. 현장을 찾았던 최씨는 “충격적인 순간”이었다며 “연주자의 숨결과 떨림이 그대로 전해지니 마치 음악 속에 온몸이 잠긴 기분이 들었다”고 소감을 전했다.

알프홀은 더 많은 주민에게 문화·예술을 나눌 예정이다. 새해마다 무료 음악회를 여는데, 올해는 첼리스트 이현정씨가 무대에 섰다. 50명 넘는 관객을 불러 모을 정도로 인기가 많았다. 음악은 물론 인문학·철학·역사·문학을 아우르는 강연도 이어간다. 2월엔 동양철학, 3월엔 서양 음악을 톺아봤다. 4월엔 미국 역사를 주제로 관객과 소통할 계획이다.

지역 청년 음악가와도 협업한다. 알프홀을 무료로 대관해주고 이들의 무대를 주민과 나눈다. 성악가부터 잉글리시 호른 연주자까지 다양한 음악가가 자신이 하고 싶던 음악을 자유분방하게 선보인다. 마음껏 예술을 실험하고 표출하는 하나의 장이 된 셈이다.

“지방에서 못할 게 있나요? 사막에서도 선인장은 꽃을 피우는 법입니다. 꿈이 있다면 포기하지 말고 내 마음의 소리를 믿고 실천해보면 어떨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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