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억할 오늘] 카를 슈미트의 화려한 귀환과 21세기 자유주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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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치의 '계관 사상가'였던 카를 슈미트가 패전 후 전범 재판에 회부되지 않은 까닭도, 연합국이 강제한 사상 개조작업, 즉 탈나치화를 끝내 거부하면서 교수직 영구 박탈을 감수한 까닭도 같은 맥락이었다.
또 슈미트의 적·동지 구분에 주목한 좌파 사상가 샹탈 무페는 파괴의 대상이던 슈미트의 '적'을 존중해야 할 '적대자'로 상정하고 토론·합의의 자유주의를, 갈등을 인정하고 제도화하는 '투쟁적 민주주의'로 대체할 것을 제안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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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어서)나치의 ‘계관 사상가’였던 카를 슈미트가 패전 후 전범 재판에 회부되지 않은 까닭도, 연합국이 강제한 사상 개조작업, 즉 탈나치화를 끝내 거부하면서 교수직 영구 박탈을 감수한 까닭도 같은 맥락이었다.
그는 총통(히틀러)을 긍정했지만 그건 학자로서 공화국 말기 권력·정치의 진공상태에 대응하기 위한 민주주의·법치의 ‘예외’를 학문적으로 적용한 것일 뿐, 전쟁범죄 등 나치의 악행과는 무관하다고 주장했다. 즉 의사가 전염병을 진단했다고 해서 전염병에 책임이 있는 것은 아니라는 게 그의 항변이었다. 맹렬한 반(反)의회민주주의자였던 그는 보편도덕과 국제법의 이름으로 행해진 뉘른베르크 재판 역시 승자의 정의일 뿐이라며 냉소했다. 슈미트는 숨질 때까지 고향 플레텐베르크에서 사실상 은둔하며 자신의 사상과 철학적 일관성을 지켰다. 요컨대 그는 위험한 사상가였지만 항간의 평판처럼 기회주의자는 아니었다.
도덕적 위선이라고 지탄받기도 하는 자유·의회민주주의의 한계에 대한 그의 차가운 통찰은 포스트모더니즘 이후 다시 주목받아 왔다. 사상가 조르조 아감벤은 대표작 ‘호모 사케르’ 시리즈에서 슈미트의 예외상태론('주권자는 예외 상태를 결정하는 자')을 재해석, 슈미트가 ‘비상시 한시적’으로 본 예외 상태가 9.11사태 이후 “더 이상 예외가 아니라 규범이 되었다”고 진단했다. 고대 로마의 호모 사케르처럼, 법의 보호망 바깥에서 영구적 예외 상태로 전락한 난민캠프 등을 그는 예로 들었다. 또 슈미트의 적·동지 구분에 주목한 좌파 사상가 샹탈 무페는 파괴의 대상이던 슈미트의 ‘적’을 존중해야 할 ‘적대자’로 상정하고 토론·합의의 자유주의를, 갈등을 인정하고 제도화하는 ‘투쟁적 민주주의’로 대체할 것을 제안했다. 라클라우는 동지와 적의 경계를 헤게모니 투쟁을 통해 끊임없이 재구성하는 과정으로 해석했다.
슈미트의 사상은 후퇴하는 민주주의에 대한 성찰의 도구로, 또 권위주의를 정당화하는 우파의 이념으로도 소환되고 있다.
최윤필 기자 proose@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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