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폴로·아르테미스 달 탐사 뒤엔 ‘메이드 인 스위스’ 최첨단 기술

“1969년 7월 21일 아폴로 11호의 우주비행사들이 달에 착륙했을 때, 달 표면에 가장 먼저 꽂힌 깃발은 미국 성조기가 아니었습니다. 스위스 베른대학의 물리학자들이 만든 태양풍 측정기(旗)였죠.”
인류 최초로 달에 발을 내디딘 ‘아폴로 미션’부터 최근 유인 달 탐사 ‘아르테미스 프로젝트’에 이르기까지, 반세기 이상 계속된 인류의 우주 여정 한켠에는 인구 900만의 작은 나라 스위스가 있다. 미국·러시아·중국 같은 강대국들이 우주 공간에서 ‘체급 싸움’을 벌일 때, 스위스는 특유의 정밀한 기술력을 앞세워 우주산업의 대체 불가능한 파트너 국가로 자리잡은 것이다.
◇아폴로에서 아르테미스까지

스위스 베른대학교는 인류 우주 탐사 역사의 ‘숨은 공로자’로 꼽힌다. 현재까지 우주로 보내진 정밀 분석 장비 중 베른대 연구진이 관여하지 않은 것을 찾기 힘들 정도다.
지난달 25일 베른대에서 만난 니콜라스 토마스 실험물리학 교수는 “(베른대학 연구진은) 약 60년동안 50개 이상의 우주 비행 장비 개발에 참여했고, 수성 탐사선 베피 콜롬보, 목성 위성 탐사선 주스(JUICE)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우주 탐사 임무를 이끌어왔다”고 했다.
특히 아폴로 11호의 달 착륙 당시 요하네스 가이스 베른대 물리학 연구소장 등은 태양이 방출하는 입자 성분을 분석하기 위해 달 표면에서 태양풍을 포집하는 알루미늄 측정기를 함께 보냈다. 인류 최초의 달 탐사 임무에서 미 항공우주국(NASA)이 이례적으로 허용한 과학 실험이었다. 당시 우주선에서 내린 버즈 올드린은 이 태양풍 측정기를 성조기보다 먼저 달 표면에 꽂았다.

스위스는 최근 ‘아르테미스’ 프로젝트에서도 중대한 역할을 맡고 있다. 스위스 우주항공 부품 기업 ‘비욘드 그래비티’는 이번 아르테미스 2 프로젝트에서 우주선에 탑재되는 태양전지판 구동 장치(SADM)를 공급했다. 우주비행사들이 탑승한 우주선 ‘오리온’이 비행하는 동안 태양으로부터 전력을 확보할 수 있도록 만드는 장치다.
스위스 국영 방산그룹 루아그(RUAG)의 우주사업부에서 출발한 비욘드 그래비티는 2022년 민영화 후 유럽 최대 독립 우주 부품 공급사로 성장했다. 현재 전세계에서 만들어지는 위성 3대 중 1대에 이 회사 부품이 탑재될 정도로 우주 산업 공급망에서 독보적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 이 회사는 내년 예정된 아르테미스의 후속 프로젝트에서도 우주발사시스템을 위한 핵심 부품을 공급할 예정이다.
◇중견국만의 ‘틈새’ 찾아야
스위스는 미국이나 중국처럼 천문학적 예산이 투입되는 독자적 대형 발사체(로켓) 개발에 매달리는 대신, 그 로켓에 반드시 들어가야 하는 초정밀 부품과 소재 기술에 집중했다. 완제품 로켓은 다른 나라가 쏘아 올리더라도, 그 로켓이 스위스의 기술력 없이는 작동할 수 없게 만드는 방식이다.

이 같은 전략은 우주 산업의 진입 장벽이 급격히 낮아진 오늘날 중견국이 선택할 수 있는 가장 효율적인 성장 모델로 꼽힌다. NASA에서 제임스웹 우주망원경, 화성탐사선 ‘퍼시비어런스’ 등 우주 탐사 임무를 총괄했던 토마스 주르부헨 취리히연방공대 교수는 본지에 “이제 수익은 로켓이 아니라 (위성 데이터, 통신, 이미지, 우주 컴퓨팅 등) 서비스에서 나온다”며 “우주 산업의 중심이 ‘발사’에서 ‘활용’으로 이동하고 있다”고 했다. 로켓이라는 운송 수단이 흔해질수록, 그 안에 탑재되는 정밀 부품과 위성 데이터를 처리하는 소프트웨어의 몸값이 더욱 높아질 수밖에 없다는 의미다.
주르부헨 교수는 “(한국·스위스와 같은) 중견국은 미국이나 중국처럼 규모의 경쟁을 하기보다 자신만의 ‘니치(niche·틈새)’를 찾아야 한다”고 했다. 그는 “한국은 세계적으로도 손꼽히는 첨단 기술 인프라를 갖춘 나라이고, ‘우주 컴퓨팅(위성 데이터를 지구로 보내지 않고 우주에서 AI로 처리하는 차세대 우주 산업 핵심 기술)’을 발전시킬 수 있는 전세계 2~3곳 뿐인 국가”라며 “앞으로 10년 안에 이 분야에서 막대한 부가가치가 창출될 수 있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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