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트바젤 홍콩’에서 랜드마크 장식한 이 전시

입구부터 별천지가 펼쳐졌다. 천장에서 내려온 와이어에 달린 별빛 같은 조명. 중앙에 입구처럼 설치된 작품 ‘Souterrain’(지하실) 안을 관람객들이 몸을 굽혀 통과한다. 고개를 들면 보이는 것은 마치 SF 영화 풍경 같은 작가 이불(62)의 미래 세계다.
지난달 말 홍콩은 아시아 최대 규모 아트페어 ‘아트바젤 홍콩 2026’의 열기로 뜨거웠다. 전 세계 미술계 관계자와 컬렉터들이 모여든 이때, 홍콩의 대표 랜드마크이자 가장 주목받는 미술관 중 하나인 M+가 한국 작가 이불의 작품으로 채워져 눈길을 끌었다.
한국의 리움미술관과 공동 기획한 이불의 대규모 개인전 ‘Lee Bul: From 1998 to Now’는 아트페어를 앞두고 지난달 14일 M+에서 개막했다. 조각, 설치, 평면 작품 등 200여 점을 통해 작품 세계 전체를 조망한 이불의 역대 최대 규모 개인전이 8월 9일까지 펼쳐진다. 리움미술관에서 작년 9월부터 올해 1월까지 먼저 진행했던 전시에서 볼 수 없었던 작품들을 포함해 또 다른 이불의 면모를 확인할 수 있는 전시다.

전시를 관람한 세계 각국 큐레이터들 사이에선 “이불의 세계가 이렇게 넓은지 처음 알았다”는 평가가 쏟아졌다고 한다. M+에서 이번 전시를 공동 기획한 정도련 예술감독은 본지에 “그동안 M+에선 일본 작가 구사마 야요이나 중국계 건축가 이오밍 페이 등 90대 작가나 돌아가신 분들의 개인전을 해왔다”면서 “그다음 세대로 지금 활발하게 활동하는 작가 중 리더 격은 누구인가 생각했을 때 이불 작가가 자연스럽게 떠올랐다”고 했다. 정 예술감독은 뉴욕 현대미술관 최초의 한국인 큐레이터였으며, M+ 설립 작업에 참여해 2024년까지 부관장을 지냈다.
전시는 미래 도시 풍경을 표현한 강렬한 최근작에서 시작해, 분해되고 변형된 모습의 신체를 만든 초기작, 탈을 쓰고 행위 예술을 하는 젊은 작가의 모습까지 이불의 역사를 낱낱이 보여준다. 2005년부터 최근까지 해오고 있는 ‘Mon grand récit’(나의 대서사시) 시리즈는 산업 재료를 활용해 화려하고도 황폐한, 유토피아인지 디스토피아인지 구분할 수 없는 독자적인 미래 도시의 모습을 펼친다. 전시장 중앙에 샹들리에처럼 떠 있는 도시, 천장 높이까지 솟은 송전탑, 거울과 빛을 활용해 환상적으로 조성한 ‘태양의 도시’까지 공상과학 소설 속에 들어온 듯한 몽환적인 체험을 선사한다.

우리의 산업화 시기 건설된 고속도로 모습을 형상화한 조각이나, 욕조 안 물의 형태로 백두산 천지를 연상시키는 작품 등 한국적 색깔이 들어간 작품도 있다. 이불을 처음 국제적으로 알린 ‘사이보그’ ‘애너그램’ 시리즈 작품이 둥둥 매달린 생체 실험실 같은 공간도 이어진다. 이불은 1990년대 후반부터 2000년대 초반까지 인체를 소재로 삼아 미래적인 인체 조각상, 자연과 융합한 하이브리드 생명체 등을 만들었다. 전시장을 찾은 이들 사이에선 “아이디어부터 재료를 쓰는 방법까지 작가의 폭이 무척 넓다는 것을 새삼 알게 됐다”는 흥분된 반응도 나오고 있다.
최근 한국 미술에 대해 쏟아지고 있는 큰 관심도 확연하게 느낄 수 있었다. ‘아트바젤 홍콩’에선 첫날부터 이불 작품을 비롯해 국내 작가 작품 판매가 크게 호조를 보였다. 정 예술감독은 “‘K팝’ ‘K무비’에 이어 ‘K아트’의 영역까지 관심이 이어지고 있는 것은 사실”이라며 “한국 미술에 대한 국제적인 관심이 엄청나게 높아지기 시작했다”고 했다. 세계가 한국 문화의 모든 면에 집중하고 있다는 것. 그는 “단순한 흐름이 아니라 이걸 계기로 많은 분이 한국 미술에 깊고 오랜 토양이 있었음을 인지하고 찾아오기 시작했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는 것 같다”고도 했다. 그는 “한국 미술에 대한 관심이 커지며 서울의 미술 시장도 굉장히 빨리 바뀌어 가는 것이 보인다”며 “서울이 홍콩과 아시아 미술계의 ‘쌍봉’으로 함께 성장해 가면 좋겠다”고도 했다.

이불의 작품은 끊임없이 변화하며 새로운 시도를 해오고 있다. 미래와 기술은 그에게도 중요한 키워드. 전시 마지막에 만나는 영상에서 이불은 “기술(발전)은 인간의 운명”이라고 말한다. “이게 긍정적이냐 부정적이냐보다, 어떻게 사용하느냐가 중요해요. 성공이라는 단어를 쓰기 위해선 그대로 있으면 안 되잖아요. (10년 전이 아니라 지금 이 전시를 하는 것도) 시기적으로 적절합니다. 어떤 시도를 했는가보다, 그 시도를 얼마나 계속해서 밀어붙였는가가 더 중요하다는 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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