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사일언] 우리가 언제부터 옷방이 필요했나요

베튤 준불·배우 겸 작가 2026. 4. 8. 00: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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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리정돈과 청소를 좋아하는 나로서는 가장 이해할 수 없는 문화가 ‘옷방’ 문화다. 아무리 생각해도 일반 가정집에 옷방은 필요 없다. 생각해보면 불과 20년 전까지만 해도 옷방이라는 이름의 방은 존재하지 않았다. 고급 주택에 사는 최상위 계층은 백화점 쇼룸 같은 분위기로 꾸며놓은 방에 명품 옷, 가방, 시계 등을 보관하고 관리하기 위한 목적으로 드레스룸을 만드는 일이 흔했겠지만 계층을 불문하고 집에 옷방이 생기기 시작한 것은 20년 전쯤으로 체감된다. 이 또한 독신 가정이 많아지고 결혼을 했더라도 아이를 낳지 않거나 외동으로 키우면서 생긴 문화일 것이다.

물론 설계 단계에서 자투리 공간을 활용하기 좋은 드레스룸으로 만드는 것은 별개의 이야기지만 이미 지어놓은 멀쩡한 방 하나를 온전히 옷을 위해 할애하는 것은 기능적인 측면에서도 달갑지 않다. 아무리 빨래를 열심히 해도 ‘옷’은 먼지를 뿜어낸다. 다른 한편으로는 먼지를 흡착한다. 옷에서 뿜어진 먼지는 다른 옷에 붙어 쌓여간다. 옷을 잘 관리하려고 설치한 옷걸이(행거)가 오히려 옷을 망치는 셈이다.

투명한 유리창이 있는 행거가 선택지가 될 수 있다. 장이 없는 행거보다 수납력이 떨어지겠지만 말이다. 그렇게 옷이 점점 더 빽빽해지다 보면 아무리 잘 개어 놓고 걸어 놓아도 생김새와 길이, 색깔이 모두 달라 눈에 거슬리기 시작한다. 옷을 한눈에 보기 위해 만든 시스템인데, 어느새 길을 잃게 된다.

무엇보다 큰 문제는 다양한 용도로 활용할 수 있을 소중한 공간이 그저 옷을 위한 창고로 전락한다는 점이다. 사람이 머무르고 관계를 만들며 삶을 채워야 할 자리가 물건을 보관하는 기능으로 대체되는 순간, 집은 더 이상 삶의 공간이 아니게 된다. ‘옷방’이 대중화되면서 공간이 사람을 위해 존재해야 한다는 가장 단순한 원칙이 흐려진 것이다. 그렇게 우리는 우리도 모르는 사이에 주인의 자리를 조금씩 내어주고 있다. 결국 ‘옷방’은 옷을 정리하는 공간이 아니라, 삶의 자리를 밀어내는 방식으로 확장된 욕망의 방일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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