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보윤의어느날] 어긋남에 대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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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책길에 유난히 좋아하는 구간이 있다.
넓고 환한 길이 조금씩 좁아지다가 모퉁이를 돌면 한 사람이 간신히 걸을 수 있을 만큼 좁아지는 길목으로, 벚나무와 목련 나무가 지그재그로 서 있는 곳이다.
봄이 되면 제일 먼저 백목련이 피고, 기름한 꽃잎이 툭툭 떨어질 즈음 벚나무가 봉오리를 올리고, 봄비에 벚꽃잎이 한바탕 쓸려나가면 자목련이 벌어지기 시작한다.
가지마다 빼곡한 겹벚꽃과 두툼한 목련 봉오리가 어우러진 게 보기엔 좋았는데 마음 한구석이 영 심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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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자 아이돌 노래에 맞춰 춤을 추고 있는 건 듬직한 체형에 벙거지를 눌러쓴 남자였다. 여자는 남자 주변을 돌며 휴대폰을 복잡하게 흔들어 촬영 중이었는데, 그들이 부부라고 생각한 이유는 간단했다. 어린아이 둘이 그들 옆에 바짝 붙어 칭얼대고 있었기 때문이다. “엄마, 이제 집에 가자.” 아이들은 점퍼를 휘두르기도 하고 고무공을 내던지기도 하며 짜증을 냈다. 부부는 아랑곳하지 않고 한 곡을 끝낸 뒤 머리를 맞대고 서서 영상을 돌려보았다. 애들 목소리 들어가지 않았어? 남자가 물었고, 음악 소리 크게 해놔서 괜찮아, 여자가 답했다. 그들은 다른 노래를 켜고 새로운 영상을 찍기 시작했다. 아이가 방해할 요량으로 뛰어들자 여자가 잽싸게 몸을 돌렸다. 넘어진 아이가 잔디밭에 그대로 드러누웠다. 몸을 떼굴떼굴 굴리고 있는 아이들에게 여자가 말했다. “5시 반에 집에 가자, 그때까지 잠깐만 기다려.” 부부가 다시 영상을 찍기 시작했다. 여자가 말한 때까지는 한 시간 남짓 남아 있었다.
나는 얼굴을 찌푸린 채 그들 옆을 지나쳤다. 우렁우렁한 음악 소리도 방치된 아이들도 모두 마음에 들지 않았다. 쇼츠를 찍느라 벌어진다는 위험하거나 무례한, 기만적이거나 우스꽝스러운 사건들이 머리를 스쳤다. 놀이터와 꽃나무 밑에도 아이들이 제법 있었다. 비눗방울을 불고 꽃잎을 잡으러 다니는 아이들은 대부분 어른의 시선 속에 머물렀다. 놀이터로 내달리려는 아이를 여자가 붙잡았다. “너희끼리 가면 다쳐서 안 돼.” 아이들이 잔디밭에 도로 주저앉았다. 나는 방향을 바꿔 잔디밭과 멀리 떨어진 길로 들어섰다. 우선순위가 뒤바뀐 것 아닌가. 저들이 지금 하고 있는 게 뭔지 알 길은 없지만 그래도 뭔가, 뭔가 좀 이상하지 않나. 좋아하는 길목으로 돌아갔는데도 좀처럼 마음이 풀리지 않았다.
나는 느리게 오래 걸었다.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보니 그들은 여전히 촬영 중이었다. 음악 소리가 조금 작아졌고, 아이들은 잔디 위에서 완전히 잠든 것처럼 보였다. 여섯 시가 훨씬 지난 시간이라 나무 그늘이 한층 깊어져 있었다.
안보윤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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