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도훈의 엑스레이] [115] 그림 대신 말빨로 산다

미술학원에 다녔다. 1980년대에는 동네마다 미술학원이 있었다. 요즘 필라테스 학원만큼 많았다. 아이들을 보낸 이유는 단순했다. 취미활동으로 교양 좀 쌓으라는 것이다. 1997년 이후 한국 교육관은 바뀌었다. 밥 먹여 주지 못하는 취미와 교양은 사치가 됐다. 미술학원은 입시학원이 됐다. 모든 학원은 입시학원이 됐다.
나는 미술에 재능이 있었다. 동네 미술학원에서는 에이스였다. 빈 종이만 보이면 그림을 그리는 내향적인 아이였다. 그림이 아이를 내향적으로 만든다고 생각했던지 어머니는 나를 웅변학원에도 보냈다. 웅변에도 재능이 있었다. 나는 미대는 못 가고 웅변은 잘하는 어른으로 성장했다. 독일 지도자가 된 한 오스트리아 남자가 떠오르는 것은 오해일 것이다.
데이미언 허스트 전시에 갔다. 국립현대미술관 블록버스터 전시다. 허스트는 논쟁적인 영국 현대 미술가다. 현대 미술을 모르는 사람도 작품은 익숙할 것이다. 다이아몬드 박힌 해골과 죽은 상어가 든 수조가 대표작이다. 그런 걸 잘도 팔아치워 한때 자산이 1조원이 넘었다. 회화는 거의 없다. 아이들에게 ‘그림 못 그려도 예술로 부자 되는 법’ 가르치기 좋은 전시다.
전시는 성황이었다. 모두 상어를 담은 수조 앞에 몰려 있었다. 작품 제목은 ‘살아있는 자의 마음속 죽음의 물리적 불가능성’이다. 벽에는 허스트의 명언도 적혀있었다. “모든 것에는 삶과 죽음이 있다. 그렇지 않은가?” 사춘기 늦게 온 늙은 동네 철학가가 홀로 횟집에 앉아 만취한 채 수조 속 죽은 광어에게 버럭버럭 화내는 소리 같았다.
현대 미술은 점점 더 모르겠다. 꽃이 좋아지는 나이라 그런가 요즘은 그냥 예쁜 그림이 좋다. 예전에 한 미술 평론가가 말했다. 미술 포기한 게 아쉽다는 나의 지나가는 사교성 발언에 답했다. “쇼맨십 있으시고, 영어도 하시고, 갤러리 사람들이랑 사교도 잘하실 것 같은데, 하세요.” 그림 잘 그리냐는 소리는 하지도 않았다. 어쩌면 그 말이 현대 미술에 대한 가장 솔직한 정의가 아니었나 싶다.
Copyright © 조선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