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두율 칼럼]바깥의 전쟁, 안쪽의 위기

송두율 전 독일 뮌스터대 사회학 교수 2026. 4. 7. 20: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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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란에서 시작된 전쟁은 미국의 힘이 더 이상 정당한 질서의 형성으로
전환되지 못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징후에 가깝다
전쟁은 이란에서 벌어지고 있으나, 그로부터 드러나는 보다
근원적 위기는 미국 내부서 심화되고 있다
오늘의 중동은 미국 이후 세계가 도래하는 방식을,
그것도 가장 불안하고 위태로운 형태로 미리 보여주는 역사적 전조다

미국과 이란의 충돌은 오늘의 세계정치가 더는 군사적 우위의 언어만으로 설명될 수 없다는 사실을 다시 보여주고 있다. 전쟁은 여전히 수행될 수 있다. 압도적인 군사력을 가진 국가는 상대의 핵심 시설을 타격하고, 지휘체계를 흔들며, 물리적 역량을 약화시킬 수 있다. 그러나 파괴의 능력이 곧 질서의 능력을 뜻하지는 않는다. 오히려 현대의 전쟁은 폭력의 효율성과 정치적 해결의 가능성 사이에 놓인 틈을 더욱 또렷하게 드러낸다. 미국은 이란을 타격할 수는 있을지언정, 그 폐허 위에 자신이 원하는 지속 가능한 질서를 세울 수는 없다. 한국전쟁과 베트남전쟁, 이라크와 아프가니스탄이 남긴 경험은 이 점에서 여전히 유효하다. 전쟁을 시작하는 일과 평화를 구성하는 일은 처음부터 같은 차원에 속하지 않는다. 군사적 우위와 정치적 해결 능력은 더는 하나의 연속선 위에 놓여 있지 않다.

칸트가 말했듯이, 평화는 단순히 전쟁이 멈춘 상태가 아니다. 그것은 법과 제도, 그리고 상호 승인 위에서만 성립할 수 있는 정치적 상태다. 그런 점에서 오늘 미국이 직면한 문제는 단지 힘이 예전 같지 않다는 데 있지 않다. 더 본질적인 변화는 그 힘이 더는 자신을 보편적 질서로 번역하지 못한다는 데 있다. 폭격은 가능하지만, 정당성은 취약하고, 개입은 가능하지만, 책임은 불완전하다. 상대를 응징할 수는 있어도, 그 이후의 질서를 설득할 수는 없다. 미국이 마주한 것은 단순한 전략적 난관이 아니라, 패권이 질서로 기능하던 시대의 균열이라 해야 할 것이다.

미국은 이란을 크게 흔들 수는 있어도 중동 전체를 안정시킬 수는 없다. 공습은 적의 역량을 약화시킬 수 있지만, 그 뒤에 지속 가능한 정치적 공동체를 세우는 데까지 나아가지는 못한다. 하버마스의 말로 바꾸면, 체계의 전략적 합리성이 생활세계의 규범적 통합을 대신할 수는 없다. 군사행동은 효율과 계산의 논리 속에서 수행되지만, 평화는 신뢰와 승인, 소통과 예측 가능성의 구조 위에서만 유지된다. 폭력은 공간을 비워낼 수는 있어도, 그 빈자리를 정당성으로 채우지는 못한다. 바로 이 점에서 미국의 힘은 자기 한계와 마주한다. 그것은 강력하지만 전능하지 않으며, 개입할 수 있으나 질서를 창출하지는 못하는 힘이다.

전쟁과 질서 사이, 미국의 한계

이번 충돌은 따라서 단순한 군사적 사건을 넘어, 제국의 자기모순을 드러내는 징후로 읽힐 수 있다. 제국은 바깥을 관리함으로써 안의 안정을 유지하려는 정치적 형식이다. 그러나 바깥을 향해 행사된 힘은 언제나 안으로 되돌아온다. 전쟁이 길어질수록 미국이 감당해야 할 것은 전장의 비용만이 아니다. 유가 상승과 공급망의 교란, 금융시장의 동요, 동맹국들의 부담, 재정 압박, 그리고 미국 사회 내부에 쌓여가는 피로와 냉소가 함께 증폭된다. 전쟁은 결코 국경 바깥에만 머무르지 않는다. 그것은 국내 정치와 세계경제를 동시에 흔드는 사건이다. 바깥의 적과 싸우는 동안 안쪽의 균열은 오히려 깊어진다. 제국의 전쟁이 민주주의의 피로로 되돌아오는 역설이 여기에 있다.

호르무즈 해협을 둘러싼 긴장은 이번 충돌이 이미 중동이라는 지역적 경계를 넘어섰음을 보여준다. 에너지 수송로의 불안은 유럽과 아시아 경제를 동시에 압박하고, 세계시장의 불확실성을 심화시킨다. 미국이 전장에서 얻는 군사적 성과보다 세계가 치러야 할 경제적·정치적 비용이 더 커질 가능성도 적지 않다. 이 지점에서 오늘 미국의 힘은 하나의 역설로 드러난다. 상대를 타격할 수는 있지만, 사태를 통제할 수는 없는 힘, 개입할 수는 있지만, 끝까지 책임질 수는 없는 힘, 적을 약화시킬 수는 있지만, 그것을 질서로 수렴시키지 못하는 힘. 이것이 오늘 미국 패권의 한계다.

한때 미국의 패권은 단순한 군사력 이상의 의미를 지니고 있었다. 그것은 동맹이 주는 신뢰였고, 시장의 개방성이었으며, 자유주의 규범에 대한 최소한의 보편적 믿음이었다. 미국은 자기 이익을 세계의 안정과 겹쳐 보이게 만들었고, 바로 그 점에서 패권은 단순한 지배가 아니라 질서로 기능할 수 있었다. 그러나 오늘날 그 질서의 정당성은 빠르게 약화하고 있다. 미국은 여전히 세계 최강의 군사대국이며, 기술과 금융, 달러의 위상 또한 쉽게 대체되지 않는다. 하지만 힘만으로 패권은 유지되지 않는다. 신뢰와 예측 가능성, 그리고 자기 절제가 함께할 때 비로소 패권은 질서가 된다. 지금 세계가 목격하고 있는 것은 바로 그 조건들의 침식이다.

하버마스가 말한 정당성의 위기는 이제 더는 국가 내부에만 머물지 않는다. 그것은 세계질서의 차원으로 확장되고 있다. 유럽은 안보를 미국에 무기한 의존할 수 없다는 사실을 다시 절감하고 있으며, 동아시아에서도 미국의 존재가 앞으로 어떤 방식으로 작동할 것인지에 대한 불안이 커지고 있다. 글로벌 사우스에서는 미국이 말해온 보편적 가치의 선택성과 이중성에 대한 회의가 깊어지고 있다. 팍스 아메리카나의 퇴조는 한 국가의 쇠퇴만을 뜻하지 않는다. 그것은 세계가 더는 하나의 중심 아래에서 자신의 불안을 관리할 수 없게 되었음을 의미한다. 우리는 지금 헤게모니 이후의 시대, 그러나 아직 새로운 규범적 중심은 도래하지 않은 전환기의 한복판에 서 있다.

전환기 공백서 비롯된 불확실성

문제는 그 공백을 메울 새로운 중심 또한 아직 충분히 형성되지 않았다는 데 있다. 중국이 부상하고 있지만 새로운 세계질서의 중심이 될 보편적 정당성을 아직 충분히 보여주지 못하고 있다. 유럽 역시 경제력과 비교하면 지정학적 의지와 군사적 역량이 부족하다. 그 결과 세계는 새로운 질서로 재편되기보다 중심 없는 경쟁이 지속되는 다극화의 시대로 들어가고 있다. 규칙보다 힘이, 제도보다 거래가, 보편적 가치보다 각자도생의 논리가 앞서는 시대다. 낡은 질서는 무너지고 있지만 새로운 질서는 아직 태어나지 않았다. 오늘의 불확실성은 바로 이 전환기의 공백에서 비롯된다.

이란은 상처를 입겠지만 쉽게 굴복하지는 않을 것이다. 미국 역시 군사적 목표의 일부를 달성하더라도 그 이후의 정치적 질서까지 설계하지는 못할 가능성이 크다. 그렇게 남는 것은 평화가 아니라 유예된 불안정이다. 언제든 다시 타오를 수 있는 정지된 위기, 그것이 지금의 중동을 가장 정확하게 설명하는 말일지 모른다. 미국이 마주한 것은 승리의 문턱이 아니라 제국의 한계다. 더 깊은 문제는 이 전쟁이 미국 내부의 위기를 외부로 돌리는 해법이 되지 못한다는 데 있다. 냉전기의 미국은 세계질서의 수호라는 이름 아래 개입을 정당화할 수 있었고, 그에 상응하는 국내적 동의도 어느 정도 조직할 수 있었다. 그러나 오늘의 미국에서 시민이 먼저 체감하는 것은 국가적 사명의 고양이 아니라 생활비와 에너지 가격, 재정 불안과 사회적 피로다. 전쟁은 내부의 균열을 잠시 덮을 수는 있어도 그것을 치유하지는 못한다. 오히려 바깥의 적과 싸우는 전쟁이 안쪽의 분열을 더 깊게 만드는 역설이 나타난다.

이러한 질서의 균열은 중동에만 머물지 않는다. 세계질서의 단층선 위에 놓인 한반도 역시 그 파장을 비켜갈 수 없다. 서울은 확전의 위험과 에너지 불안정을 우려하며 위기관리와 외교적 해법의 언어를 택하지만, 평양은 이를 미국 패권의 폭력성과 서방 질서의 위선을 드러내는 사례로 읽는다. 같은 전쟁을 두고도 남과 북이 전혀 다른 언어를 사용하는 현실은, 한반도가 여전히 세계질서의 균열을 압축적으로 반영하는 공간임을 보여준다.

이란에서 시작된 전쟁은 결코 중동만의 국지적 사건이 아니다. 그것은 미국의 힘의 범위를 입증하는 계기라기보다, 그 힘이 더 이상 정당한 질서의 형성으로 전환되지 못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징후에 가깝다. 전쟁은 이란에서 벌어지고 있으나, 그로부터 드러나는 보다 근원적인 위기는 미국 내부에서 심화되고 있다. 이 때문에 오늘의 중동은 미국 이후의 세계가 도래하는 방식을, 그것도 가장 불안하고 위태로운 형태로, 미리 보여주는 역사적 전조라 할 수 있다.

송두율 전 독일 뮌스터대 사회학 교수

송두율 전 독일 뮌스터대 사회학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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