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계절의 체온

단비가 내렸다. 봄의 체온이 달라지고 푸슬거리며 흙먼지가 날리던 대지가 촉촉해졌다. 드디어 기다리던 꽃씨를 뿌릴 때가 되었다. 얼마 전에 잠들어 있던 씨앗들을 깨워 놓고 비가 내릴 때를 기다리던 중이었다. 먼저 원두막 아래 밭을 정리하고 꽃밭 여기저기 돋아난 '캐모마일' 모종들을 뽑아 한 이랑에 옮겨 심었다. 그리고 씨앗 바구니를 들고 양지쪽 마당에 펼쳐놓았다. 살펴보니 종류도 다양하다. 마리골드와 과꽃, 맨드라미 씨앗과 제주 여행 중 공원에서 받아온 범부채, 금관화, 먼나무 씨앗까지 나를 반긴다. 사실 먼나무는 추운 곳에서는 월동할 수 없는 나무지만 나무의 수형이 예쁘고 빨간 열매가 인상적이어서 내 욕심으로 받아온 것이다. 혹시라도 싹을 틔워 자라주기만 한다면 겨울은 베란다에서 잘 지내게 해주면 되지 않을까 싶어서이다.
흙을 평평하게 고르고 작고 까만 씨앗을 조심스레 순서대로 대지 위에 뿌렸다. 새싹이 잘 돋아나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토닥토닥 흙 이불을 덮어주고 일어서니 어느새 점심때가 지났다. 원두막으로 올라와 한시름 돌리고 나니 그제야 쉬어家의 나무들이 눈에 들어온다. 쉬어가의 나무들은 지금 계절의 체온을 순하게 받아들이는 중이다. 먼저 길가의 산수유가 노랗게 봄의 빗장을 열자 우리 집 목련이 몸을 부풀리다 터트리고 언덕 위의 개나리가 화답하는 듯 노랗게 피어났다. 벚나무를 올려다보니 한창 꽃망울을 부풀리며 제 순서를 기다리고 있다. 아마도 며칠 후면 환하게 원두막을 빛나게 해줄 것이다.
계절의 체온은 자연이 모두에게 전하는 메시지이다. 그중 가장 먼저 식물들이 그 메시지를 읽는다. 식물들은 계절의 변화와 계절의 체온을 알아채는 데는 선수다. 그래서 각자 자기들이 새싹을 올리고 꽃을 피워야 할 때를 잘 알고 있다. 그런데 갑자기 더워진 기후 탓일까. 아니면 회색 콘크리트 도심 속에 겨울을 머물러 사는 사람들의 봄을 향한 간절한 마음의 열기가 닿은 탓일까. 며칠 전 다녀온 무심천은 목련, 개나리, 벚꽃이 한꺼번에 피어나 그야말로 꽃 천지였다.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앞다투듯 꽃을 피워 사람들의 발길을 불러 모았다. 해마다 뒤서거니 앞서거니 하면서 눈부시게 빛나는 봄을 선물하던 무심천의 꽃나무들이었다.
작년에도 그랬다. 갑자기 따듯해진 날씨에 나무들이 때를 놓쳤나 싶었는지 한꺼번에 꽃을 피우더니 갑자기 영하로 떨어진 날씨에 속수무책 냉해를 입고 말았다. 쉬어가의 백목련은 피어나다 검게 얼어서 떨어져 버리고 측백인 '에메랄드그린'은 가지가 군데군데 냉해를 입어 잘라 내야 했다. 가장 황당한 일은 삼복더위에 목련꽃이라니 얼어버린 자목련꽃이 한여름인 7월에 아름답게 피어나 지니 가는 사람들 눈을 의심하게 했다. 이제는 속절없이 변해가는 환경에 적응하느라 계절의 체온을 느끼며 꽃을 피우고 새싹을 올리는 그 순서라는 것이 의미가 없어져 버린 것은 아닐까.
며칠 후면 오늘 뿌린 씨앗들은 기지개를 켜고 일어나 새싹을 올릴 것이다. 그러면 내 발길은 지금보다 더 분주해지고 쉬어가 전체를 돌아다니며 모종을 옮겨 심고 돌보느라 정신이 없을 것이다. 올해는 제발 모든 것이 적당했으면 좋겠다. 비도 적당히, 날씨도 계절의 체온에 맞게 적당히, 봄은 봄 날씨답게, 여름은 여름답게, 가을은 가을다워 세상을 살아가는 모두가 힘들지 않았으면 좋겠다. 나도 더불어 꽃을 가꾸는 일이 조금은 수월하고 그 꽃으로 차를 덖어 내가 바라는 기쁨을 누릴 수 있다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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