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민택칼럼] 내 이야기를 조금만 들어준다면

한민택 2026. 4. 7. 18: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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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힘들고, 외로워질 때, 내 얘길 조금만 들어 준다면..."

노사연 씨가 부른 '바램'의 한 소절이다. 삶이 버겁고 힘겨울 때 종종 외로움을 느낀다. 마음속 근심과 걱정, 고민거리 등이 마음을 꽉 채워 한 치 앞을 내다볼 수 없게 만들기도 한다. 그럴 때 나에게 힘이 되어주는 건, 거창하고 특별한 해결책이 아닌, 내 마음속 어려움과 고민거리를 들어줄 누군가가 아닐까.

미래 사제를 양성하는 일에 종사하면서, 학생들이 겪는 어려움에 관해 이야기를 나눌 때가 종종 생긴다. 이야기를 듣다 보면 대부분 자연스럽게 겪게 되는 어려움들임을 알게 된다. 그런 경우 딱 부러지는 해결책이 있기보다 살면서 자연스럽게 넘어가는 것들이다. 중요한 것은 그러한 마음속 이야기를 누군가에게 털어놓는 것이며, 놀랍게도 누군가에게 속마음을 털어놓는 것만으로도 이미 그 어려움을 딛고 앞으로 나아가는 자신을 발견하게 된다. 결국 삶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우리 마음에 공감하고 고민을 함께 나눠줄 누군가의 현존임을 깨닫게 된다.

문득 '되찾은 아들의 비유'(루카 15, 11-32)를 떠올려 본다. '돌아온 탕자의 비유'로도 알려진 이 이야기에서, 작은 아들은 아버지 재산 가운데 자기에게 돌아올 몫을 청했고, 가진 것을 모두 챙겨서 먼 고장으로 떠난다. 그곳에서 방종한 생활을 하며 재산을 허비하던 그는, 때마침 기근이 들어 먹고살 길이 막막해진 나머지, 그 고장 주민을 찾아가 매달려 돼지 치는 일로 연명하게 된다. 그때 그의 심정은 어땠을까? 성경은 전한다. "그는 돼지들이 먹는 열매 꼬투리로라도 배를 채우기를 간절히 바랐지만, 아무도 주지 않았다." 부유했을 때는 주위에 사람들이 많았지만, 가진 것이 없는 신세가 되니 모두 떠나가고 홀로 남겨진 것이다. 그제야 제정신이 든 그는 아버지의 집을 떠올리게 된다. 아버지의 넓은 품만큼이나, 품팔이꾼들조차도 먹을 것이 남아도는데 자기는 이방인 지역에서 돼지를 치다 외롭게 죽게 되었음을 깨닫게 된 것이다.

이 이야기는 작은 아들의 배고픔이 물질적인 것만이 아니었음을 강조한다. 누군가 그의 딱한 처지를 알아보고, 무언가 먹을 것을 주었을 때 비로소 채워질 수 있는 것, 그것은 관심과 사랑에 대한 배고픔이다. 그가 지금까지 살아올 수 있었던 것은 아버지 집의 물질적 풍요가 아닌 아버지의 넓은 마음과 사랑이었음을 깨닫게 된 것이다.

살아가면서 그러한 깨달음을 얻는 것은 큰 축복일 것이다. 그것은 단순히 듣고 동의하는 것만으로 얻어질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몸소 겪어보아야 얻을 수 있는 그러한 깨달음은 존재를 변화시키고, 사람을 새로 태어나게 한다. 그래서 아버지는 그가 돌아왔을 때 마음이 굳게 닫힌 큰아들에게 이렇게 말했던 것이다. "너의 저 아우는 죽었다가 다시 살아났고 내가 잃었다가 되찾았다. 그러니 즐기고 기뻐해야 한다."

우리는 크고 작은 고민과 갈등, 근심과 걱정을 안고 살아간다. 일확천금을 꿈꾸기도 하지만, 사실 우리가 살아갈 힘은 물질이 아닌, 바로 누군가에게서 나온다. 나의 마음속 이야기를 들어줄 누군가, 나의 처지를 공감하고 고개를 끄덕이며, 얼마나 힘들었을지 묻고 함께 있어 줄 누군가, 그리고 따뜻한 위로의 말 한마디 건네줄 누군가. 그런 사람 한 명이라도 있다면, 앞의 노랫말처럼 "사막을 걷는다 해도 꽃길이라 생각할" 수 있을 것이다.

여기서 한 걸음 더 나아가자면, 용기를 말할 것이다. 마음속 이야기를 꺼내놓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다. 그러나 용기를 내어 마음속 이야기를 꺼내놓을 수 있을 때, 그동안 근심, 걱정으로 만들어놓은 세계에서 벗어나, 새로운 삶을 향해 나아갈 수 있게 된다.

다행히도 인공지능 챗봇은 그러한 대상이 될 수 없다. 나의 처지를 공감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스스로에게 물어보면 어떨까. 내가 진정으로 이야기를 꺼내놓을 수 있는 누군가가 나에게는 과연 있는가? 내가 어떤 이야기를 해도 판단하거나 비난하지 않고 나의 마음에 공감하며 나의 편이 되어줄 누군가가? 반대로 나는 그런 이야기를 들어 줄 수 있는 '누군가'인가?

우리가 서로에게 그런 존재가 되어준다면 얼마나 좋을까 생각해 본다.

한민택 수원가톨릭대학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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