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코퀸 다음은 호러퀸…“공포영화, 어두운 극장서 함께 떨어야 제맛”

정시우 객원기자 2026. 4. 7. 18: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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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살목지’ 김혜윤

- 저수지라는 장소 얽힌 괴담 소재
- 이성적인 호러물 여주인공 독특
- “좋아하는 공포장르 캐스팅 설레”

- 단역부터 계단식 성장해 온 배우
- 영화·드라마 등 줄줄이 공개예정
- ‘선재’로 세계적인 인기 얻었지만
- “연기 자존감 여전히 낮다”며 겸손

김혜윤이 공포영화 ‘살목지’(감독 이상민)를 제안받은 건, 그를 로코퀸 반열에 올린 ‘선재 업고 튀어’(2024) 방영 시점과 맞물린다. 엄밀히 말해 공포물은 충무로에서 그리 각광받는 장르는 아니다. 신인 감독-신인 배우의 등용문 성격이 강한 만큼 제작비도 그리 넉넉하지 못하다. 그런 점에서 김혜윤의 ‘살목지’ 선택은 의외라는 반응이 있었던 게 사실. 지난 2일 서울 삼청동에 위치한 한 카페에서 그가 여러 선택지 중 ‘살목지’를 선택한 이유를 들을 수 있었다.

▮“작품을 선택한 이유? 좋아서”

영화 ‘살목지’의 주연 배우 김혜윤이 포즈를 취하고 있다. 그는 작품에서 로드뷰에 포착된 정체불명의 형체를 촬영하기 위해 살목지를 찾은 PD 수인 역을 맡았다. 쇼박스 제공


‘살목지’는 정체불명의 형체가 포착된 저수지를 둘러싸고 벌어지는 일을 그린 공포물이다. 살목지라 불리는 저수지 인근 로드뷰에 알 수 없는 형체가 찍히자, 이를 재촬영하기 위해 현장을 찾은 촬영팀이 물속의 무언가와 마주하면서 이야기가 전개된다. 김혜윤은 극 중 로드뷰를 다시 촬영하기 위해 살목지를 찾는 온로드미디어 PD 수인 역을 맡았다.

실제 장소에 얽힌 괴담을 소재로 한다는 점에서 ‘살목지’는 정범식 감독의 영화 ‘곤지암’(2018)과도 비교된다. 다만 ‘곤지암’이 파운드 풋티지(Found footage·‘우연히 습득한 영상’이라는 설정을 내세워 마치 실제 기록처럼 보이게 구성하는 페이크 다큐멘터리 장르의 일종) 방식으로 공포감을 조성했다면, ‘살목지’는 고스트 박스·모션 디렉터·로드뷰 같은 특수 장비를 동원해 마치 관객이 저수지 한복판에 있는 듯한 공포감을 구현한다.

김혜윤이 연기한 수인은 기존 공포영화에서 보아 온 여주인공들과 결이 살짝 다르다. 비명을 지르거나 겁에 잔뜩 질린 대개의 공포물 주인공과 달리 ‘이성의 끈을 마지막까지 놓지 않는 절제되고 침착한 인물’로 그려진다. 주인공을 추동하는 에너지가 공포가 아니라 죄책감과 트라우마라는 것도 차별점이다. “수인은 죄책감 때문에 계속 눈치를 보는 인물이다. 물에 대한 트라우마, 그리고 선배에 대한 미안함이 맞물리며 점점 무너진다.” 김혜윤은 그런 수인을 연기하면서 “덜어내는 방법을 배웠다”고 힘주어 말했다.

김혜윤이 ‘살목지’를 선택한 가장 큰 이유는 간단했다. “좋아(하는 장르라)서”다. 이보다 강력한 이유가 있을까. 공포영화 마니아라는 김혜윤은 “마침내 좋아하는 장르에 직접 뛰어들 수 있게 되어 설레는 마음이 컸다”고 말했다. 물론 좋아한다는 이유로만 선택한 것은 아니다. “물귀신이라는 흔치 않은 소재가 주는 신선함이 있었고, 끝날 때까지 끝나지 않는, 내가 믿는 게 현실이 아닐 수 있겠다는 공포감이 매력적”으로 다가왔단다.

공포영화 예찬을 늘어놓는 김혜윤에게 구체적으로 어떤 공포물을 좋아하는지 물었다. 공포영화 안에도 여러 장르(오컬트·미스터리·스릴러 등)가 있어서인데, 그녀가 꼽은 영화는 아리 에스터의 ‘유전’(2018)과 데이비드 F. 샌드버그 감독의 ‘나이트 아웃’(2016). 즉 일상생활에서 벌어지는 공포물이었다. “누구에게나 벌어질 수 있는 공포에 관심이 많다. 저는 귀신이 있다고 믿는 편인데, 귀신이 없다고 믿는 분들도 ‘현실감이 있다’고 느끼게끔 연기하려고 노력했다”고 전했다. 문득 궁금해진 것. 귀신이 있다고 믿는 김혜윤은 신점이나 사주에도 관심이 있을까. 이 질문을 받아 든 김혜윤은 “놀랍게도 저는 기독교인”이라고 말하며 웃어 보였다.

▮‘부족함’은 나의 원동력

영화 ‘살목지’의 한 장면.


배우는 캐릭터를 통해 여러 인생을 산다. 그리고 대리 인생을 살며 자기 안에 숨어있던 또 다른 나를 발견하기도 한다. 김혜윤은 ‘살목지’를 통해 자신이 겁이 없는 스타일이라는 걸 처음 알았다고. 반면 영화 ‘불도저에 탄 소녀’(2022)를 찍을 땐 자기 안에 ‘화’가 많이 없음을 깨달았단다. “‘불도저에 탄 소녀’에서 연기한 혜영은 시작부터 끝까지 화가 나 있는 아이였다. 그런 혜영을 연기하며 화가 많아서 힘들 수도 있다는 걸 처음 알았다. 지쳐 포기한다는 말이 있는데, 실제의 나였다면 지쳐 포기했을 거다. 화 많으신 분들은 진짜 에너지가 대단하신 것 같다. 이렇게 작품을 통해 나를 알아가는 게 배우라는 직업의 묘미 같다.”

김혜윤은 단역에서부터 주연으로 거듭난 ‘계단식 성장형’ 배우의 전형이다. 2013년 KBS ‘TV소설 삼생이’로 데뷔한 후 여러 작품에 문을 두드렸지만, 열리지 않았다. 7년간 단역으로만 50편을 출연하며 무명 생활을 견뎠고, 소속사 없이 홀로 촬영장을 오갔다. 그런 김혜윤의 터닝 포인트는 200:1 경쟁률을 뚫고 합류한 드라마 ‘스카이 캐슬’(2018). 전교 1등에 꼭 의대에 가야 한다는 강박에 시달리던 예서를 맡아 대중에게 깊이 각인됐다. 2019년 MBC ‘어쩌다 발견한 하루’의 은단오로 멜로 배우로서도 가능성을 인정받은 김혜윤은 모두가 알다시피, 신드롬급 인기를 얻은 ‘선재 업고 튀어’로 주연 배우 자리를 공고하게 다졌다. 각종 시상식 신인상을 섭렵한 ‘불도저에 탄 소녀’ 역시 그녀의 필모에서 빼놓으면 섭섭한 작품이다.

차곡차곡 길을 닦아온 자신이 자랑스럽지 않을까. 그러나 김혜윤은 “여전히 연기에 대한 자존감은 낮다”고 말한다. “노력하는데 항상 부족하다고 느낀다”고. 그러나 걱정할 필요는 없어 보인다. “연기 자존감이 낮다는 얘기를 대학교 때 교수님께 말씀드린 적이 있는데, 그때 교수님이 그러시더라. ‘이 마음을 평생 갖고 연기를 해라. 본인이 만족하는 순간 거기서 그친다. 부족함을 알아야 앞으로 발전한다’고. 그 말을 잊지 않고 있다. 부족함을 앞으로 내가 더 발전할 수 있는 원동력이라고 생각한다.”

김혜윤이 연기에 대한 낮은 자존감을 메우는 또 하나의 방법은 과거에 얽매이지 않고, 미래로 나아가는 것. “모니터를 볼 때마다 이때 이렇게 할 걸하고 후회한다. 하지만 거기에 매몰되지는 않는다. 후회를 통해 배웠으니까. 오늘 한 것을 내일 더 나아지는 에너지로 쓰는 편”이라고 말하는 김혜윤의 목소리에서 강단이 느껴졌다.

‘선재 업고 튀어’로 많은 것이 바뀌었지만, 가장 큰 변화는 ‘시선’이다. 자신을 응원해 주는 팬들의 시선. 그 시선은 김혜윤에게 힘을 주는 동시에 부담이기도 할 테다. “작품 선택 과정에서 전과는 다른 모습을 팬들에게 보여드려야 한다는 생각을 많이 한다. 촬영에 들어가면 캐릭터에 최대한 집중하려고 한다. 이 인물로 보였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강하다. 새로운 모습을 많이 보여드리고 싶어서 소처럼 일하고 있다!”

새로운 모습을 보여주기 위한 김혜윤의 발걸음은 빠르다. ‘살목지’에 이어 영화 ‘랜드’, 드라마 ‘굿파트너2’, 예능 ‘언니네 산지직송 in 칼라페’가 차례로 관객을 만난다. 팬들의 사랑을 원동력 삼아 더 열심히 달리겠다는 김혜윤 다짐이 기분 좋게 공간을 채웠다. 마지막으로 김혜윤에게 ‘살목지’ 관전포인트를 부탁했다.

“학창 시절 친구들과 모여 공포영화를 보며 비명을 지르고 서로 놀리던 추억이 다들 있지 않나. 이번 ‘살목지’ 시사회에서 동료들과 극장에서 봤을 때도 그렇더라. 어두운 상영관 안에서 모르는 사람들과 같은 타이밍에 놀라고 감정을 공유하는 짜릿함. 이런 유대감은 극장에서만 누릴 수 있는 특권이라고 생각한다. 그 느낌을 즐기기 위해서라도 꼭 극장에서 보셨으면 좋겠다.”

정시우 객원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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