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보낸 한철] 호랑지빠귀

강현국 시인·시와반시 주간 2026. 4. 7. 17: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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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강현국 시인·시와반시 주간

숲은 언제나 침묵으로 말을 건넨다. 꽃 피는 봄 사월 돌아오면 먼 산 숲속에서 들려오는 침묵의 기척, 호랑지빠귀가 운다. 감추기 위해 부는 휘파람 같은, 사라지기 위해 나타나는 실금 같은 단음절, 휘이잉, 휘이익, 휘잉 호랑지빠귀가 운다. singing(노래하다)은 더더욱 아니고 crying(울부짖다)이 아닌 weeping(눈물 흘리다)이다. 이른 새벽 홀로 깨어 있는 자의 외로움 같은, 닿지 않는 먼 곳을 향한 간절한 그리움 같은, 감추고 싶은 내면의 불안 같은, 들리는 순간보다 멈춘 뒤가 더 또렷해지는 소리의 주인공, 그가 호랑지빠귀라는 것을 안 것은 지난 해 봄이었다. 맑고 길게 이어지다가 흔적 없이 잠적하는 울음소리는 가고 없는 날의 기억처럼 부재의 방식으로 내 마음에 스몄다. 조류도감을 뒤적였다.

호랑지빠귀(White's thrush)는 지빠귀과 에 속하고 학명은 Zoothera aurea 이다. 몸길이 약 27cm로 깃은 황금색을 띤 갈색이고, 몸에는 검은색 초승달 모양의 반점이 있다. 날개 밑면에 검은색과 흰색 띠가 가로질러 있어 호랑이의 털과 같은 색을 띤다. 암수의 털 색깔이 같다. 고산지대 삼림에서 번식하고 곤충, 지렁이 등을 잡아먹는다. 암컷은 3-5개의 알을 낳고, 알은 엷은 녹청색 바탕에 엷은 적갈색 반점이 있다. 한국, 중국, 러시아, 일본 등지에 분포한다. White's thrush란 명칭은 영국의 박물학자이자 조류학자인 길버트 화이트 (Gilbert White)에서 유래했다. 깃털의 무늬가 호랑이를 연상시키는 지빠귀라고 하여 호랑지빠귀라는 이름이 붙었다. 슬픈듯한 가느다란 소리로 '히이 호오'하고 지극히 조용하게 운다.

지극히 조용한 울음의 여운은 이승의 숲에 닿기 전에 여백으로 남은 기별인 듯 나를 사로잡았다. '전생'이란 말이 떠올랐다. 전생(前生)이란 지금의 삶 이전에 존재했다고 여겨지는 삶, 지금의 나를 형성한 보이지 않는 생의 연속성이다. 이유 없이 마음이 머무는 대상, 설명할 수 없이 슬퍼지는 순간, 그 모든 것이 한 번 더 살아본 나의 그림자일지도 모른다. 그러므로 전생은 실제 과거라기보다 현재의 나를 이해하기 위한 서사적 장치, 현재의 나를 이루고 있는 보이지 않는 인연의 층위이겠다. 처음 만난 사람에게서 느끼는 기시감이나, 설명할 수 없는 강한 정서적 유대를 '전생의 인연'이라 한다면 호랑지빠귀가 그랬다. 숲이 침묵으로 말 건네는 짧은 기척, 지극히 조용한 울음이 그랬다. 호랑지빠귀의 전생이 궁금했다.

그는 끝내 완성하지 못한 한 편의 시이거나, 못다 한 이야기를 남기고 떠난 시인이었을 것이다. 그렇지 않고서야 "산산이 부서진 이름이여!/ 허공중에 헤어진 이름이여!/ 불러도 주인 없는 이름이여!/ 부르다가 내가 죽을 이름이여!"(김소월) … '초혼'의 애절함을 어찌 저렇듯 절제된 울음으로 노래할 수 있겠는가. 호랑지빠귀의 전생이 시인이면 어떻고 시인의 전생이 호랑지빠귀이면 또 어떻겠는가. 누군가에게는 슬픈 전설로, 누군가에게는 고요한 명상의 소리로 다가오는 호랑지빠귀는 우리의 무의식 속에 잠들어 있는 애환의 그림자를 일깨운다는 사실이 중요하다. 겨울을 오래 견딘 시간이 드디어 자기 목소리를 되찾는 봄 숲에 들거든 침묵의 기척에 귀 기울여 보라. 그의 울음은 한지에 번지는 먹물처럼 형태를 갖추기 전에 마음에 닿고, 의미를 갖기 전에 정동(Affect)의 잔물결로 출렁인다. 정동의 잔물결에 얼비치는 어떤 기억의 내면풍경, 바로 그곳에 호랑지빠귀의 전생이 있겠지만, 시는 전생의 한 맺힘이 현생의 문장으로 치환된 것만은 분명해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