빨간 나라의 파란 옷 출마자들, 그 마음 드나든 ‘휴먼코믹다큐’
“경북 지역 보수정당 아성에 맞서, 절망이 아닌 희망을 ‘극복’한 사람들 이야기”

“휴대폰이나 노트북도 5년, 10년이 지나면 바꾸는데, 정치는 왜 바꾸지 않습니까?”
40여 년 동안 특정 보수정당이 거의 모든 선거를 독식하는 경상북도에서 더불어민주당 간판을 걸고 출마하는 사람들이 있다. ‘험지’를 넘어 ‘사지’라 불리는 경북에서 이길 확률이 거의 ‘제로’(0)에 수렴하기에 이들은 자칫 억대가 넘는 선거비용을 떠안아야만 한다. 이렇게 ‘달걀로 바위 치기’ 같은 일에 뛰어든 사람들의 이야기를 담은 다큐멘터리영화 ‘빨간 나라를 보았니’가 2026년 4월15일 개봉한다. 6·3 지방선거가 두 달 앞으로 다가온 시점에, 어찌 보면 당파적이기까지 한 영화를 용감하게 들고나온 홍주현 감독을 3월31일 국회 앞 한 카페에서 만났다.
경북 바깥 사람에 한해 10% 정도 서프라이즈
홍 감독은 제목마저 지극히 ‘정치스러운’ 이 영화의 장르를 ‘휴먼코믹다큐’라고 정의했다. “밖에서 보면 가당찮은 일에 도전하는 거잖아요. 그런데 후보도, 선거운동원들도, 지지자들도 굉장히 진지해요. ‘이번엔 이길 것 같아’라고 하거나, (당연한 결과로) 졌을 때도 ‘도청 공무원이 사는 구역에서는 우리가 이겼어’라는 미시적 차원의 의미 부여를 해요. 계속 따라가다보면 너무 바보 같아서 눈물도 나긴 해요. 정해진 결말(선거 패배)을 향해 달리기 때문에 긴장감도 거의 없죠.” 그래서 영화 소개에도 ‘휴먼·코믹이 51%, 정치 39%, 경상북도 바깥에 사는 사람에 한해 10% 정도의 서프라이즈가 있는 작품’이라고 돼 있다. 고개가 끄덕여지는 설명이다.

홍 감독은 왜 하필 ‘경북’에 관심 갖게 됐을까? 경북의 정치 지형이 8 대 2라면, 9 대 1에 가까운 호남도 있는데 말이다. “경북은 늘 섬같이 소외된 큰 땅덩어리란 생각을 많이 했어요. 제가 방송작가 일을 오래 했는데, ‘한국인의 밥상’ 촬영을 하러 경북 봉화 같은 아름다운 산골 마을에 갔어요. 소박하지만 정성이 가득한 밥상을 차려줘요. 인생 얘기 들어보면 눈물이 나요. 그런데 조상 사진 옆에 박정희·육영수 사진이 걸려 있어요. 과거에 전국체전 같은 걸 하면 경북은 수도권과 경합하는 엄청나게 힘센 지역이었지만, 소리 소문 없이 과거의 영광이 다 사라졌어요. 경북이 가진 소외와 배제의 정서가 있죠. 인구도 많고 땅도 넓은데 척박하고 화석화돼가는 곳, 거기서 과거의 향수를 붙들고 사는 사람들에 대한 궁금증이 컸다고 할까요?”
물론 더 직접적인 계기도 있었다. 2022년 3월 대선에서 “검찰 권력을 기반으로 대권에 도전했던 윤석열이 0.73%포인트 차이로 승리한 결과에 망연자실”하던 홍 감독은 전화를 한 통 받았다. “서울에 살다가 결혼해 경북 구미시 선산읍 생곡리로 간 친구가 경북도지사 후보로 전략 공천된 임미애라는 정치인에게 후원을 좀 하라는 권유 전화를 한 거예요. 그 친구가 이렇게 말했어요. ‘서울에 사니까 넌 몰라. 경북에서 민주당 지지자로 사는 게 어떤 건지’라고. 선거 11일 전이었어요. ‘빨간 나라에서 파란 옷을 입고 선거에 나선 자들에 대한 궁금증’에 카메라 감독과 함께 무작정 경북으로 향했죠.” 이렇게 아무 계획 없이 시작된 “사소한 일”은 다큐멘터리 개봉이라는 “거창한 일”로 이어졌단다.
설움 겨워 후보도 울고, 운동원도 울고
영화는 2022년 경북도지사에 출마한 임미애 후보와 그의 남편으로 2024년 총선에서 구미(을)에 출마한 김현권 후보를 중심으로 민주당 간판을 달고 선거에 출마한 여러 후보, 선거사무소, 선거운동원들의 이야기를 담아낸다. 명함을 주면 ‘우린 1번은 싫다. 2번이 좋다’며 거절하고, 인사하면 눈도 마주치지 않은 채 외면하고, 선거유세 차량에 쫓아와 ‘시끄럽다’며 타박하는 지역주민들을 향해 후보들은 연신 “잘 부탁드린다”며 인사하고 절을 한다. 자원봉사를 하는 선거운동원들은 좋은 자리를 선점하기 위해 새벽부터 주요 교차로에 출동하고, 아무도 들어주지 않는데도 목이 터져라 ‘기호 1번’을 외친다.

“제가 임미애 의원(비례대표)을 처음 만났을 때 ‘혹시 (선거에 출마한 것을) 후회하지 않느냐’고 물었어요. 그가 ‘다들 이기는 선거에만 나가야 한다고 생각하나봐요. 지는 선거에도 나갈 수 있어요. 반장 될 사람만 반장 선거에 나가나요?’라고 되묻더군요. 바둑판에 검은 돌과 흰 돌만 있다고 생각했는데, 다른 색이 있다는 거예요. 그럼 그 색이 다른 바둑돌로 어떤 집을 어떻게 짓지? 그게 이 다큐의 방향성이 됐어요.”
영화는 장면 장면마다 눈물 바람이다. 지역주민의 외면이 거듭될수록 서러움에 후보도 울고, 선거운동원들도 운다. 영화를 보는 사람들도 암담하고 ‘노답’이긴 매한가지다. “저는 이 다큐가 누군가의 영웅담이 되는 걸 경계했어요. 앞자리가 3이나 2가 나오면 승리했다고 자위하는 사람들, 거기서 지푸라기 같은 희망을 보는 사람들, 밖에서 보면 가당찮은 싸움을 계속하는 사람들이 선거운동 과정에서 마주하는 배제와 무시, 소외에 관해 이야기하고 싶었어요. 남북 대립보다 더한 좌우 대립을 해결할 실마리에 대해 얘기하고 싶었습니다.”
김부겸 당선돼도 더 큰 반동 대비해야
후보들은 계속해서 말한다. “지금 꽃을 피우지 못해도 거름이 되고 싶다”고. 이들이 말하는 희망은 대체 무엇일까? 그리고 가능성이 있는 희망일까? “거름이 되고 싶은 사람이 있을까요, 모두가 꽃이 되고 싶지. 이 사람들에게 경북은 삶의 터전이고 정주 공간이에요. 임미애·김현권 후보만 해도 의성에서 30년 가까이 한우를 사육한 농민 출신이거든요. 내 집, 내 앞마당에 거름을 뿌리는 거니까 이 마당에 뛰어놀 다음 세대를 생각할 수 있는 게 아닐까요? 스타벅스도 없고, 멀티플렉스도 없는 척박한 공간이지만 내가 나고 자랐고 다시 돌아올 수밖에 없는 곳을 가꾸는 사람들이죠.”
그래서 감독은 이들에 대해 ‘절망이 아닌 희망을 극복한 사람들’이라고 정의한다. 절망을 극복하기보다 희망을 극복하는 일이 더 어렵다는 것이 감독의 소회다. “지금은 절망스럽지만, 앞으론 좋아지리라는 기대를 가질 수 있으면 다행이죠. 그런데 희망을 극복하는 건 ‘앞으로도 좋아지지 않는다는 걸 알아. 그렇지만 난 현실에 최선을 다할 거야. 장밋빛 미래에 경도되지 않고 이 순간, 이 자리가 소중해. 한발 나아가는 게 승리야. 답보해도 후퇴하지 않았잖아. 후퇴해도 넘어지지 않았잖아’라는 태도를 갖는 게 희망을 극복한 사람들의 자세거든요. 얼마나 어려운지 가늠도 안 되는 거죠.”

그럼 감독이 생각하는 경북 사람들이 바뀌지 않는 이유는 무엇일까? “굉장히 조심스럽지만, 결핍이 있으면 소외되고 소외된 사람들은 이상한 자기 신념이 생기는 것 같아요. 결핍을 신념으로 채운달까. 과거의 영광은 거기에 불을 붙이죠. 경북은 과거 산업의 역군이었고, 대통령을 배출했고, 새마을운동의 시작점이었고…. 뭐랄까. 국민의힘으로 대표되는 보수정당에 정치적으로 납치돼 고립됐는데, 스톡홀름증후군처럼 거기에 동화된 듯 보인달까? 근데 본인이 납치됐다는 걸 인정하면 그 거대한 상실감을 채울 수 없는 거죠.”
그래서 희망은 있을까? 균열의 조짐이 보이는 듯하다. 2026년 지방선거를 앞두고 민주당 김부겸 후보가 대구시장 출마를 선언했고, 여론조사만 보면 국민의힘 후보들을 압도하고 있다. 김부겸 후보는 2016년 총선에서도 정통 야당 출신으로는 1985년 이후 31년 만에, 소선거구제하에서는 1971년 이후 45년 만에 민주당 후보로 대구 수성갑 국회의원으로 당선된 바 있다. 홍 감독은 이를 두고 “그냥 돌발적인 사건일 뿐”이라고 잘라 말했다. “물이 들어오는 건 맞죠. 하지만 아무리 센 물이 들어와도 배가 없으면 항해를 못해요. 민주당에는 준비된 인물이 거의 없고, 그들의 활동을 지원할 시스템도 거의 없어요. 김부겸이 처음 당선됐을 때를 생각해보세요. 그때도 물은 들어왔지만 이후 더 큰 반동이 왔어요. 그 반동을 넘어설 준비된 혜안이 필요한데 없었거든요. 경북에서 국민의힘이 크게 고인 물이라면, 민주당은 작게 고인 물이에요. 사람을 키우지 않고 경북을 늘 버린 카드 취급하니까요. 영화에서 보듯 준비된 후보군이 거의 없으니 부부(임미애·김현권)가 출마하고, 모자(배영애·황태성)가 대를 이어 출마해요.”

그렇다면 견고한 지역주의를 극복할 방법은 무엇일까? 홍 감독이 내놓은 답변은 조금 황당하게도 ‘사랑’이었다. “바뀔 거라는 ‘믿음’ 말고, 당선됐으면 하는 ‘소망’ 말고 사랑. 믿음·소망·사랑 중에 제일은 사랑이라잖아요. 두 번의 탄핵을 겪은 경북의 마음을 끌어안고 다독이고 위로하고 함께 안타까워하는 마음 말이에요. 대놓고 ‘2찍들’ ‘막대기만 꽂아도 당선’ 운운하며 비난하지 말고요. 그런 과정에서 존중과 조화를 통해 ‘민주주의의 근육’을 키워나가야겠죠.”
이 영화가 설화처럼 느껴지는 날이 오길
영화는 또 다른 ‘험지’이자 ‘사지’인 호남에서 고군분투하는 국민의힘 후보들을 찾기 위해 홍 감독이 국민의힘 전남도당에 전화하는 것으로 마무리된다. ‘왜 경북에 출마한 민주당 후보들만 담았느냐’는 비판에 대한 감독의 알리바이로 느껴지기도 한다. 다음번 다큐를 기대해도 좋은 걸까? “이번에 민주당 외 진보정당 후보들의 얘기를 담지 못한 것은 전적으로 물적·인적 한계가 분명한 제 개인의 문제였어요. 치밀한 준비가 없는 상태에서 카메라를 들었고, 제작비도 너무 부족했습니다. 저는 당적을 가진 적이 없고 성향상 중도보수인데, 아버지는 국민의힘 지지자예요. 충남 서산 출신인 아버지가 ‘뭐 이런 영화를 찍었냐’고 못마땅해하시다가 부산국제영화제 와이드앵글 부문에 출품됐을 때 직접 보시고 ‘파란 나라를 보았니’를 찍으면 도움을 주겠다고 하시더라고요. 하하하. 제 다음 목표는 아버지와 아버지 주변에 있는 정치적 보수 성향의 분들에게 제작 지원을 받는 겁니다.”

사비를 몽땅 털어 어찌어찌 제작했고, ‘정치 다큐’라는 이유로 영화진흥위원회의 개봉지원 신청조차 하지 못한 탓에 영화는 텀블벅 크라우드펀딩을 받고 있다. 첫 시사를 국회에서 연 것도 시사회 장소를 섭외하지 못한 까닭이었다.
“천만 영화인 ‘왕사남’(왕과 사는 남자)만 가족관람 하란 법 있나요? 국힘 지지자인 부모님과 중도 성향인 아들딸이 멱살 잡지 않고 함께 볼 수 있는 영화, 감정적 공유가 가능한 영화입니다. 작은 바람이라면, 대한민국이 빨간 나라, 파란 나라 말고 ‘우리나라’가 된 어느 날에 평론가나 관객이 ‘옛날에 이런 영화가 있었어. 지금은 상상도 안 되지? 그런 때가 있었어’라고 언급하는 영화가 됐으면 하는 겁니다.”
유선희 기자 duck@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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