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경춘추] 그뤼에르와 나바호

2026. 4. 7. 17: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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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위스 제네바에서 지식재산 분야 외교관으로 근무할 당시, 주말에 짬을 내 알프스 자락의 작은 마을 그뤼에르를 종종 찾곤 했다.

그뤼에르 치즈는 '지리적 표시(GI)'라는 지식재산으로 보호되고 있다.

지역에서 생산된 신선한 재료, 오랜 기간 축적된 제조 기법과 장인의 기술, 중세 마을의 풍경과 이야기 등 고유 자산이 지식재산과 한데 묶여 강력한 브랜드가 되고 그 경제적 성과가 지역 공동체로 돌아가는 모범 사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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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용선 지식재산처장

스위스 제네바에서 지식재산 분야 외교관으로 근무할 당시, 주말에 짬을 내 알프스 자락의 작은 마을 그뤼에르를 종종 찾곤 했다. 스위스 3대 치즈 중 하나인 그뤼에르 치즈를 좋아해서기도 했지만, 중세의 고풍스러운 건물과 체험 시설, 향긋한 치즈 냄새가 퍼지는 식당 등이 자연환경과 어우러져 오감을 즐겁게 했기 때문이다.

그뤼에르 치즈는 '지리적 표시(GI)'라는 지식재산으로 보호되고 있다. 그뤼에르치즈협회의 엄격한 품질 관리 아래 전통 방식으로 생산된 치즈만이 이 이름을 사용할 수 있다. 세계 곳곳에서 수만 t 규모로 판매돼 많은 수익을 안겨주는 효자 상품이다. 지역에서 생산된 신선한 재료, 오랜 기간 축적된 제조 기법과 장인의 기술, 중세 마을의 풍경과 이야기 등 고유 자산이 지식재산과 한데 묶여 강력한 브랜드가 되고 그 경제적 성과가 지역 공동체로 돌아가는 모범 사례다.

비슷한 사례는 많이 찾아볼 수 있다. 미국 모뉴먼트밸리를 삶의 터전으로 하는 나바호 인디언 부족은 이름과 전통 문양을 상표권으로 보호하고 있다. 한 의류 브랜드가 'Navajo'라는 이름을 사용하면서 분쟁이 발생하자 부족은 상표권을 근거로 맞섰고 결국 권리가 인정되는 합의를 이끌어냈다. 이후 명칭과 문양을 라이선스 형태로 수익화하고 있으며 거기에서 나온 로열티 수익은 공동체 복지와 문화 보존에 요긴하게 쓰고 있다.

이런 사례를 접할 때마다 우리도 그뤼에르나 나바호처럼 지역의 이름과 전통이 세계적인 브랜드로 성장한 곳이 더 많았으면 하는 아쉬움이 든다.

최근 '지역 소멸'이라는 말이 일상이 될 정도로 인구 감소와 산업 침체가 심화됐지만, 역설적으로 지역 곳곳에는 아직 발견되지 않은 보석 같은 자산들이 남아 있다. 수백 년을 이어온 종가의 내림음식, 특정 기후에서만 자라는 특산물, 장인의 손끝에서 탄생하는 공예품, 고유한 마을 이름과 이야기 등이 바로 그것이다. 이러한 자산이 상표나 지리적 표시 등 지식재산권으로 제대로 보호될 때 비로소 시장에서 신뢰와 가치를 얻고 경제적 자산으로 이어질 수 있다.

다행히 국내에서도 고무적인 변화가 나타나고 있다. 전북 진안군은 '진안홍삼'을 '지리적 표시 단체표장'으로 등록해 품질을 규격화하고 공동 브랜딩을 추진함으로써 경제적 가치를 높이는 한편, 가공과 관광산업으로 사업 범위를 확장하고 있다. 미국, 중국, 베트남 등 글로벌 시장으로 수출도 확대하고 있다. 가장 한국적인 향토 자산이 세계 시장에서도 충분한 경쟁력을 가질 수 있음을 보여주는 사례다.

지식재산은 더 이상 제조업이나 첨단산업의 전유물이 아니다. 지역 주민들의 삶과 애환 속에서 축적된 향토 자산 역시 중요한 지식재산의 원천이자 가치를 창출하는 보고(寶庫)다.

지식재산처는 향토 자산이 국내외 시장에서 가치를 인정받을 수 있도록 역량을 집중하고자 한다. 지역 브랜드의 권리화를 지원하고 브랜드 보호 체계를 강화해 지역 경제에 활력을 불어넣을 것이다. 우리의 향토 자산이 그뤼에르 마을과 나바호 부족과 같이 권리로 보호되고 브랜드로 꽃피울 때 '지방 시대'의 길도 활짝 열릴 것이다.

[김용선 지식재산처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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